"외주제작 불공정 개선" 방송업계·정부 약속, 현장선 작동 안 해
[경향신문] ㆍtvN ‘화유기’ 세트장 노동자 추락 등 잇단 사고 왜?
지난달 tvN 드라마 <화유기> 세트장에서 노동자 ㄱ씨가 작업을 하다가 추락하는 사고가 발생했다. 방송국과 외주제작사의 불공정 거래를 고발하던 박환성 독립PD가 EBS <다큐프라임> 제작 중 사고로 사망한 지 불과 6개월이 되지 않았다. 2016년엔 CJ E&M 소속 tvN <혼술남녀>의 이한빛 PD가 열악한 노동환경을 고발하며 스스로 목숨을 끊는 일이 일어났다. 세 사건은 서로 다른 상황에서 발생했지만, 비정규직과 하청으로 점철된 방송업계의 노동환경에서 비롯됐다는 공통점을 갖고 있다.
방송계는 이 같은 사건이 일어날 때마다 제작환경 개선을 약속했다. 지난달 19일 대통령 주재로 열린 국무회의에서는 ‘방송프로그램 외주제작시장 불공정 관행 개선 종합대책’까지 나왔다. 하지만 <화유기> 사고는 이 같은 대책이 나오고 4주 만에 발생했다. 이한빛 PD의 죽음 이후 방송 노동환경 개선에 나선 동생 이한솔씨는 “똑같은 상처와 고통이 재발하는 것을 보면서 아픔과 자책감이 든다”고 말했다.
■ 두 번의 죽음 후에도 변한 것 없는 현장
“몰랐다.” <화유기> 제작 현장에서 발생한 사고와 관련해 관계자들이 가장 많이 입에 올린 얘기다. 제작사는 현장 안전관리자 선임에 대한 정확한 지침을 사고 후에 알았다고 했다. 방송국과 제작사, 하청업체는 업무분장에 관해 명확히 정리된 게 없다며 서로 책임을 미뤘다. 전국언론노동조합은 정부에 ‘모든 드라마 제작 현장에 대한 집중 근로감독 실시’를 요구했으나 고용노동부는 여러 부처가 협의해야 할 사안이라며 현재로서는 감독이 어렵다는 입장이다.
“세트장이나 관련 공사를 외부에 맡기더라도 안전관리는 우리가 해야 하지 않는가라는 걸 이제는 생각하게 됐죠. 그런데 사실 전에는 몰라서 못했어요. 무지했던 거죠.” 최근에 만난 JS픽처스 관계자의 말이다. 그는 20인 이상 50인 미만 사업장은 안전보건관리 담당자를 선임해야 한다는 의무도 이번에 알았다고 했다.
JS픽처스는 전체 직원이 10명 안팎인 회사로 제작사 자체로만 보면 안전관리자를 선임해야 할 의무가 없다. 다만 실제 하청업체까지 함께 일하는 제작사의 드라마 제작 현장에는 50명이 훨씬 넘는 인원이 근무한다. 현재는 안전관리자를 원청인 JS픽처스가 선임해야 할지, 소도구 담당으로 하청을 맡은 MBC아트가 해야 할지도 명확한 법적 근거가 없는 상황이다.
이번 사건은 소도구팀 노동자가 전선을 들고 샹들리에를 설치하다 일어났다. 현장에 전기관리 업무를 전담으로 하는 전식팀 스태프는 없었다. 문제는 이 과정에서 전식 업무 담당에 대한 tvN, JS픽처스, 라온, MBC아트의 의견이 서로 엇갈린다는 데 있다. 제작사와 하청업체, 방송국은 ‘관행상 전식 업무는 명확한 담당을 두지 않고 촬영하는 경우가 많다’고만 하소연할 뿐이다. 그들은 업무에 대한 분장은 ‘정확하지 않다’고도 말한다. 다단계 수주와 도급 계약으로 이뤄진 복잡한 구조에서 책임자는 없었다. 두 번의 죽음 후에도 방송업계 노동의 외주화 문제는 여전한 것이다.
■ “방송국의 상생 노력 필요”
언론노조는 정부의 책임 있는 조사를 요구하고 있다. 최정기 언론노조 정책국장은 “방송업계의 근로환경과 관련해서는 노동부의 책임이 크다. 실제로 근로기준법이나 산업안전법을 현장에서 지키는 걸 감독할 의무는 노동부에 있다”고 말했다. 그는 “그러나 최근까지 방송사나 제작사에 대한 노동부의 근로감독이 전무했다. 이런 관행이 방송업을 노동법의 예외 지대처럼 만든 것”이라고 지적했다.
노동부 관계자는 이에 대해 “드라마 제작 세트를 만드는 게 건설공사에 해당한다면 건설공사와 관련해서 안전사고를 예방하는 건 노동부 소관이 맞지만, 방송업계의 다양한 노동환경 문제는 다른 소관부처들과 연관된 면이 많아 분야별로 다뤄야 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현재 언론노조는 지난 4일 <화유기> 제작사인 JS픽처스, 세트 담당사 라온, 소도구 담당사 MBC아트와 관계자를 근로기준법, 산업안전보건법 위반 혐의로 노동부 평택지청에 고발했다. 10일에는 첫 고발인 조사를 실시한다.
tvN의 운영사이자 JS픽처스의 모회사이기도 한 CJ E&M에 대한 철저한 조사 역시 요구한 상태다. 이한빛 PD 사건 후 조직된 사단법인 ‘방송노동환경 개선을 위한 한줄기의 빛, 한빛’과 공동대응 역시 모색 중이다.
이한솔씨는 “방송업계의 노동 구조가 복잡하게 얽혀 있어 환경을 단숨에 개선하긴 어려울 것이란 생각이 들긴 하지만 이렇게 기다려서는 해결이 요원하다. 방송사의 결단이 필요한 때”라고 말했다. 자회사나 하청업체의 안전 및 고용 문제를 직접 책임지거나 사전제작을 늘려 노동환경을 개선해야 한다는 것이다.
박환성 PD 사망 후 조직된 ‘방송사 불공정 행위 청산과 제도 개혁을 위한 특별위원회’ 한경수 미디어연대분과장은 “진정한 방송의 정상화는 내부 구성원들뿐만 아니라 비정규직, 외주제작사와 함께 상생할 때 이뤄질 수 있다”고 말했다.
<고희진 기자 gojin@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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