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패 모르던 '엘리트 배구인' 김세진 감독의 시련

양형석 2018. 1. 9. 11: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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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드람 2017-2018 V리그] 지난 시즌에 이어 두 시즌 연속 최하위 위기

[오마이뉴스 양형석 기자]

반환점을 돈 V리그 남자부의 순위싸움이 그 어느 시즌보다 치열하다. '클래식 라이벌' 현대캐피탈 스카이워커스와 삼성화재 블루팡스는 승점 2점 차이로 1,2위를 달리고 있다. 삼성화재가 최근 4경기에서 1승3패에 그치며 주춤하고 있지만 챔프전 직행을 향한 두 팀의 치열한 순위싸움은 시즌 막판까지 이어질 가능성이 높다.

대한항공 점보스와 한국전력 빅스톰, 그리고 KB손해보험 스타즈가 벌이는 3위 경쟁도 흥미롭다. 특히 승점 1점 차이로 엎치락뒤치락하고 있는 대한항공과 한국전력은 경기를 치를 때마다 순위가 바뀔 정도로 우열을 가리기 힘들다. 이런 구도가 이어진다면 2015-2016 시즌에 이어 두 시즌 만에 준플레이오프가 열릴 가능성이 높다(V리그 남자부에서는 3,4위의 정규리그 승점 차이가 3점 이하가 되면 3~4위 간의 단판승부를 통해 플레이오프 진출팀을 가린다).

하지만 이토록 치열한 순위경쟁에서 외롭게 한 발 물러난 팀이 있다. 5승17패 승점17점으로 사실상 봄배구 진출이 힘들어진 최하위 OK저축은행 러시앤캐시다. 지난 시즌에도 승점 20점으로 최하위에 그쳤던 OK저축은행은 이번 시즌 부상 선수들이 대거 복귀했음에도 반등을 하지 못하고 있다. 특히 선수 시절부터 최고의 엘리트 코스만 걸어왔던 김세진 감독에게는 최근 두 시즌의 경험이 매우 낯설 것이다.

국가대표-실업배구-해설위원-감독으로 걸어온 최고의 길

 현역시절 삼성화재의 9연패를 이끌었던 김세진 감독은 OK저축은행도 창단 두 시즌 만에 우승으로 이끌었다.
ⓒ OK저축은행 러시앤캐시
김세진 감독은 중학교 시절까지만 해도 신장이 170cm가 채 되지 않는 단신 세터였다. 하지만 옥천고 입학 후 키가 20cm 이상 자라면서 공격수로 변신했고 고 송만덕 감독에 의해 배구 명문 한양대로 스카우트됐다(당시만 하더라도 김세진 감독의 목표는 배구 선수로 대성하는 것이 아니라 체육학과를 무사히 졸업해 고향에서 체육교사로 일하는 것이었다고 한다).

하지만 한양대 입학 후 김세진 감독은 놀라운 발전 속도를 보이며 국가대표에 선발됐고 1994년 월드리그에서 공격상을 받으며 일찌감치 '월드스타'라는 칭호를 얻었다. 김세진 감독이 대표팀 주포로 활약했던 1995년 월드리그에서 한국은 역대 최초로 6강 결선라운드에 진출하기도 했다. 그리고 김세진 감독은 치열한 스카우트 경쟁 끝에 신생팀 삼성화재에 입단했다(당시 삼성화재는 '김세진을 주지 않으면 창단을 철회하겠다'며 대한배구협회를 압박했다).

사실 김세진 감독의 삼성화재 입단은 남자배구의 재미와 발전이라는 측면에서 그리 바람직한 선택은 아니었다. 삼성화재가 김세진 감독을 시작으로 김상우, 신진식, 장병철, 최태웅, 석진욱, 권순찬 등 대학배구의 스타들을 싹쓸이하며 남자배구를 지배했기 때문이다. 김세진 감독은 매 시즌 팀 동료 신진식과 MVP 경쟁을 벌이며 삼성화재의 독주시대를 이끌었다. 1997년부터 프로원년까지 김세진 감독이 삼성화재에게 안긴 우승컵만 무려 9개에 달할 정도.

2005-2006 시즌이 끝난 후 현역 생활을 마감한 김세진 감독은 은퇴 후 KBS배구해설위원으로 활약하며 현역 시절의 경험들을 시청자들에게 잘 전달했다. 김세진 감독은 지금은 마이크를 놓은 허주, 유수호 같은 명캐스터들과 호흡을 맞추며 해설가로서 경험을 쌓았고 2010년대에 들어서는 오관영과 이세호의 뒤를 잇는 KBS의 간판 배구 해설위원으로 명성을 떨쳤다.

김세진 감독은 8년의 해설위원 생활을 뒤로 하고 2013년 창단한 OK저축은행의 초대 사령탑으로 선임됐다. 그리고 OK저축은행은 신생 구단 혜택으로 우수 신인들을 스카우트했고 '괴물 외국인 선수' 로버트 랜디 시몬의 맹활약에 힘입어 창단 두 시즌 만에 V리그 정상에 올랐다. 2014-2015 시즌에 이어 2015-2016 시즌까지 두 시즌 연속으로 챔프전 우승을 차지하면서 김세진 감독은 선수뿐 아니라 지도자로서도 최고의 길을 걸었다.

외국인 선수 제도 바뀐 후 두 시즌 연속 꼴찌 위기

 KB손해보험의 외국인 선수 알렉스 페레이라의 친형 마르코는 동생 만큼의 활약을 해주지 못하고 있다.
ⓒ 한국배구연맹
선수로서, 해설위원으로서, 그리고 지도자로서 한 번의 실패도 없이 최고의 길만 달려온 김세진 감독에게 위기가 찾아온 시기는 2016년. 외국인 선수에 대한 지나친 스카우트 경쟁으로 리그의 재미가 반감된다고 판단한 한국배구연맹에서 V리그에 외국인 선수 드래프트 제도를 도입한 것이다. 이는 곧 OK저축은행 전력의 절반 이상을 차지했던 시몬과 더 이상 함께 할 수 없음을 의미했다.

OK저축은행은 마르코 보이치와 모하메드 알 하차다디로 2016-2017 시즌을 치렀지만 시몬의 위력에 비할 수는 없었다. 설상가상으로 토종거포 송명근과 센터 박원빈이 부상으로 제대로 된 시즌을 치르지 못하면서 OK저축은행은 7승29패 승점 20점으로 최하위에 머물고 말았다(참고로 지난 시즌 6위 KB의 승점이 43점이었다). 물론 그 때만 해도 김세진 감독이 갑작스런 환경 변화에 적응하지 못해 시즌을 망친 것처럼 보였다.

OK저축은행은 이번 시즌을 앞두고 트레이드를 통해 '꽃미남 스타' 김요한을 영입하고 부상을 당했던 송명근과 박원빈도 돌아왔다. 외국인 선수 드래프트에서도 1순위 지명권을 얻어 프랑스리그 득점왕 출신의 벨기에 국가대표 브람 반 덴 드라이스를 영입했다. 두 시즌 전 우승을 차지했던 팀의 명예를 회복할 준비가 끝난 듯했다. 하지만 OK저축은행은 이번 시즌에도 변함 없이 최하위를 면치 못하고 있다. 

하위권을 전전하던 OK저축은행은 작년 12월1일시즌 개막 후 12경기 만에 외국인 선수를 마르코 페레이라로 교체했지만 OK저축은행은 마르코 합류 후에도 10경기에서 1승 밖에 챙기지 못했다. 마르코는 경기당 평균 11.8득점을 올리며 KB에서 활약하는 동생 알렉스(경기당 23.1점)의 절반 정도 밖에 득점을 올리지 못하고 있다. 여전히 무릎부상에서 완전히 자유롭지 못한 송명근의 불안한 몸 상태도 김세진 감독을 고민스럽게 하는 부분이다.

과거의 한국전력이나 상무처럼 아마추어 초청팀이 아닌 OK저축은행이 두 시즌 연속 최하위에 허덕이면 배구팬들은 감독의 지도력에 의문을 갖게 된다. 언제나 최고의 길을 걸어왔던 김세진 감독에게는 이런 평가가 익숙하지 않을 것이다. 14경기를 남긴 OK저축은행이 현실적으로 3위와의 승점 18점 차이를 극복하기란 쉽지 않다. 배구인으로서 한 번의 실패도 겪지 않았던 김세진 감독의 무술년 시작이 영 우울하기 그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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