쇼핑 비서 '챗봇' 써보니.. 롱패딩은 알아도 인조모피는 몰라

김은영 기자 2018. 1. 8. 08: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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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죄송해요. 제가 아직 AI 신입이라…”... 다양한 패션 용어, 아직은 미숙로사, 사만다 등 이름 붙여 비서 이미지 강조… 구매전환율 획기적으로 높아져

유통업계가 챗봇 도입을 본격화하고 있다. 챗봇이란 문자와 음성을 통해 인간과 대화할 수 있도록 구현된 채팅 로봇이다./사진=롯데백화점

대학생 한지현(22) 씨는 올해 첫 배낭여행을 앞두고 있다. 여행을 간다는 설렘도 잠시, 여행 가방부터 옷가지까지 어떤 걸 챙겨야 할지 막막하기만 하다. 한 씨는 챗봇에 도움을 청했다. “여름 방학에 유럽으로 배낭여행을 가는데, 적당한 여행가방을 추천해 줄래?” 한 씨의 말이 끝나기 무섭게 챗봇은 여행 가방 리스트를 주욱 뽑아냈다. “고객님을 위한 추천상품이에요 ^-^”

유통업계가 챗봇(Chatbot·대화형 로봇)을 도입하고 있다. 챗봇이란 문자와 음성을 통해 인간과 대화할 수 있도록 구현된 채팅 로봇이다. 카카오톡이나 페이스북 메신저에서 대화를 나누듯 인공지능(AI)이 추천 상품, 최저가, 많이 팔린 상품 등의 정보를 제공한다.

챗봇은 새로운 기술이 아니다. 2002년 등장했던 대화봇 심심이를 비롯해 애플 시리, 아마존 알렉사도 챗봇의 일종이다. 최근에는 쇼핑 도우미를 자처하는 쇼핑 챗봇들이 속속 등장하고 있다. 롯데백화점 로사, 롯데닷컴 사만다, 인터파크 알프레도, 11번가의 디지털 챗봇 바로 등이 대표적으로, 사람처럼 이름을 붙여 비서라는 이미지를 강조한 것이 특징이다.

◆ IBM 왓슨 탑재한 로사… 질문에 최척화된 11개 상품 추천

가장 최근 나온 롯데백화점의 챗봇 로사와 쇼핑을 해봤다. 지난달 21일 롯데백화점이 출시한 로사는 IBM AI 왓슨 솔루션을 기반으로 한 쇼핑 챗봇이다. 채팅을 통해 쌓은 빅데이터를 기반으로 고객의 요청과 성향에 맞는 상품을 제안하는 AI 쇼핑 가이드를 표방한다.

“안녕하세요! 로사가 고객님의 쇼핑을 도와드릴게요!” 챗봇을 구동하자 로사가 반갑게 인사를 했다. “초등학교에 들어가는 딸에게 책가방을 사주려고 해. 추천해 줄래?” 로사는 어린이용 책가방을 늘어놨다. “고객님을 위한 추천 상품이에요. 다른 컬러로 더 추천해드릴까요?” 로사는 색상을 고를 수 있도록 객관식 형태로 세부 검색을 유도했다. 핑크를 선택하자, 핑크색 책가방 11개가 추천됐다. 추천된 상품들의 수준은 양호했다. 상품 이미지를 누르자 바로 구매가 가능한 상품 페이지로 연결됐다.

’초등학교에 입학하는 딸을 위한 책가방을 추천해 달라’는 말에 로사는 색상과 가격대 등을 고를 수 있도록 유도해 맞춤형 쇼핑을 시도했다./사진=엘롯데 챗봇 ‘로사’ 사용화면 캡처

여기까지 1분이 채 걸리지 않았다. 조금 빠르긴 하지만, 일반 검색과 다를 바 없다는 생각이 든다. 다시 앱 초기화면으로 넘어가 검색창에서 ‘책가방’을 검색했다. 2514개의 상품이 검색됐다. ‘초등학생 책가방’은 43개, ‘핑크 책가방’은 138개의 상품이 나왔다. 상품을 일일이 누르고 비교하다 보니 시간이 훌쩍 지났다.

로사는 이미지 검색도 가능했다. 요즘 유행하는 ‘에코 퍼(인조모피) 재킷’을 검색해 봤다. 올겨울 에코 퍼 재킷 붐을 일으킨 영국 패셔니스타 알렉사 청의 길거리 사진을 로사에게 보냈다. 엉뚱하게도 비슷한 색상의 패딩 재킷을 추천한다. “역시 무리였나?” 재킷만 나오게 사진을 잘라내 다시 시도해 봐도 결과는 마찬가지였다. 단어 검색을 해봤다. 인조모피 재킷, 에코 퍼 재킷, 페이 크퍼 재킷… 모두 원하는 답이 나오지 않았다. 로사도 과부하가 걸렸는지 울고 말았다. “죄송해요. 아직 제가 AI 신입이라.. 열심히 공부하겠습니다 ㅠ_ㅠ”

패션 상품의 경우 제품 명이 모호한 경우가 있다. ‘롱패딩’처럼 표준어는 아니지만, 자주 쓰이는 단어의 경우 정확히 상품을 제안했다. 하지만 에코퍼 재킷, 페이크퍼 재킷 등은 제대로 인식하지 못했다. 이 단어들은 최근 온라인 쇼핑몰에서 많이 사용되는 용어다.

로사는 오프라인에서도 유용했다. ‘데이트 맛집’을 검색하자, 원하는 백화점 지점과 음식 종류 등을 고르도록 해 식당 몇 곳을 추천해 줬다. 하지만 현재 위치를 기반으로 길을 안내하거나 인근 매장을 추천하는 건 불가능했다. 롯데백화점 관계자는 “시간이 지날수록 거대한 양의 데이터를 축적하고 자체적으로 분석할 수 있기에, 고객의 사용이 늘어날수록 제공할 수 있는 서비스의 범위도 진화할 것으로 예상한다”고 밝혔다.

◆ 11번가 디지털 챗봇, ‘디알못’도 이해하기 쉬운 디지털 쇼핑 정보 제공

롯데닷컴의 사만다는 롯데백화점처럼 IBM 왓슨 기술을 적용한 챗봇이다. 영화 ‘그녀(Her)’에서 주인공이 사랑에 빠지는 인공지능 체계와 이름이 같은 사만다는 얼굴(이모티콘)이 디즈니 만화의 주인공 같이 예뻐 쇼핑 챗봇 중 가장 호감이 갔다. “반가워요! 저는 사만다에요… 롱패딩, 부츠, 이렇게 간단한 단어만 보내도 상품을 추천해드려요!” 사만다는 처음부터 단어로 상품을 검색하길 원했다.

11번가 디지털 챗봇은 기기의 정보를 자세히 제공해 고객들이 필요한 기기를 구매할 수 있도록 했다./사진=11번가 ‘디지털 챗봇’ 사용화면 캡처

국내에 상용화되는 쇼핑 챗봇 대부분은 아직 자연어 처리 기술(사람과의 대화를 알아듣게 하기 위해 개발된 기술)에 한계가 있어, 단어 검색과 객관식 검색을 유도하는 편이다. 예컨대 ‘롱패딩’을 검색하면 거위털, 오리털, 점퍼, 재킷 등 하위 메뉴를 구성해 선택하도록 한다. ‘거위털’을 선택하면 또다시 가격, 색상 등의 하위 메뉴를 구성한다. 이런 식으로 계속 범위를 좁혀 사용자의 요구에 맞는 상품을 추천한다. 사만다는 이런 식으로 추천의 정확도가 높였다.

반면 자연어 처리 능력은 떨어졌다. ‘책가방’을 검색했을 땐 세부 검색과 함께 꽤 정확한 결과를 도출했지만, 로사처럼 “초등학교에 들어가는 딸을 위한 책가방이 필요해. 추천해 줄래?”라고 요구하자 사만다는 성인용 백팩을 추천했다.

11번가는 디지털 챗봇과 마트 챗봇으로 분야별로 특화된 서비스를 선보이고 있다. 이 가운데 디지털 챗봇은 꽤 전문적인 정보를 제공했다. 가령 ‘청소기’를 검색하면 청소기 찾기를 비롯해 베스트 상품, 최저가 검색 등의 항목을 선택할 수 있게 한다. ‘청소기 찾기’를 선택하면 일반 진공청소기, 스틱 청소기, 무선 청소기 등 세분된 항목이 뜨고, 항목별로 어떤 특징이 있는지에 대한 정보를 제공한다. 기자같은 ‘디알못(디지털 기기를 알지 못하는 사람)’에게 이런 방식은 꽤 도움이 됐다.

인터파크의 톡집사 알프레도는 간단한 상품 검색을 지원했다. ‘초등학교 책가방’이라는 단어를 검색하자, 인터파크에 파는 500여 개의 초등학교 책가방 상품 리스트를 모두 나열했다. 상품을 큐레이션 해 추천하지 못했고, 자연어에도 반응하지 않았다. 대신 깎아줘요(최저가 검색), 인간 상담사가 대응하는 상품문의, 자주 묻는 질문 등이 톡집사 서비스에서 가능했다.

◆ 맞춤형 개인화 쇼핑 선호하는 밀레니얼 세대 겨냥, 챗봇 서비스 확대

유통업계가 챗봇에 주목하는 이유는 구매전환율(상품 탐색이 구매로 이어지는 확률)이 높기 때문이다. 11번가의 경우 디지털 챗봇을 도입한 이후 상담 건수가 이전보다 6배 늘었다. 특히 상담원 근무시간이 아닌 오후 6시부터 9시까지 챗봇 이용자의 30%가 몰린 것으로 나타났다. 인터파크도 ‘톡집사’ 이용 시 구매전환율이 일반 구매 패턴보다 3배가량 높았다고 밝혔다.

노스페이스는 ‘다음달에 에베레스트 산에 간다’는 고객의 상황에 맞춰 최적화된 제품을 제안했다./사진=노스페이스 챗봇 사용화면 캡처

이런 성과가 뒤따른 이유는 밀레니얼 세대가 맞춤형 개인화 서비스를 선호하기 때문이다. 2017년 바로워 인사이트 조사(Borrower Insights Survey)에 따르면 밀레니얼 세대는 세 가지 특징이 있는데, 구매 전 상품에 대한 충분한 정보가 필요하고, 커뮤니케이션 도구로서 메신저 앱을 가장 선호하고, 맞춤화된 상품과 마케팅을 집행하는 브랜드에 호응을 건넨다. 챗봇은 이런 요구를 모두 만족시킨다.

고객 서비스 비용을 절감할 수 있는 것도 챗봇의 장점이다. 24시간 일대일 서비스를 하는 챗봇은 서비스의 질을 높이면서도 인건비를 최소화할 방법이다. 미국 경제 매체 비즈니스인사이더 조사에 따르면 기업의 80%가 2020년까지 챗봇을 구현할 것이라고 답했다.

국내 상용화된 챗봇의 수준은 아직 걸음마 단계다. 특히 자연어 처리 기술이 부족했다. 가령 롱패딩, 생수, 휴대폰 등의 단어를 입력하면 정확한 상품 추천이 가능했지만, “내가 다음주에 다낭에 여행을 갈건데, 현지 날씨에 맞는 재킷을 추천해줘”같은 요구는 맞추지 못했다.

우리보다 앞서 챗봇을 도입한 해외 쇼핑봇들은 꽤 높은 수준의 서비스를 선보인다. 미국 메이시스 백화점은 백화점 입구에서 챗봇에 “친구 생일 파티에 신고 갈 핑크색 구두를 찾아줘”라고 물으면, 고객이 좋아할 만한 구두를 추천해준다. 다른 앱을 통해 해당 매장으로 가는 길도 안내받을 수 있다. 아웃도어 브랜드 노스페이스는 고객이 “다음 달에 에베레스트산에 갈 거야”라고 입력하면 350여가지 재킷 중 현지 날씨에 맞은 재킷을 추천한다. 아메리칸이글의 여성 속옷 브랜드 에어리는 마치 속옷 전문가가 상담을 해주듯, 사용자의 체형에 맞는 브래지어를 추천해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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