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칼럼

[취재일기] 일본이 호시노를 보내는 방법

서승욱 입력 2018.01.08. 02:03 수정 2018.01.08. 06:48

"마지막까지 그는 투장(전투력이 뛰어난 대장)이었다."

일본 언론이 그에게 열광하는 건 강적에게도 겁 없이 맞서는 오기와 투지 때문이다.

그리고 동일본 대지진(2011년 3월)으로 쑥대밭이 된 지역 주민들의 열망을 담아 2013년 일본시리즈 제패를 일궈냈다.

자신은 1류가 아니라 2류라지만, 그런 2류까지도 영웅으로 만드는 게 바로 일본 사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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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승욱 일본지사장
“마지막까지 그는 투장(전투력이 뛰어난 대장)이었다.”

올해 첫 주말 내내 그에겐 이런 찬사가 쏟아졌다. 지난 4일 별세한 호시노 센이치(星野仙一·70) 전 라쿠텐 이글스 감독이 주인공이다. 우리에겐 ‘주니치 시절 선동렬의 스승’이자, 2008년 베이징 올림픽 때 “금메달 외엔 필요 없다”고 큰소리를 쳤다가 한국에 두 차례나 무릎을 꿇은 비운의 아이콘이다. 6일 라쿠텐 구단은 그가 1년 반 전부터 췌장암과 싸우다 사망했다고 발표했다. 일본의 유력 일간지 5곳은 7일자 1면에 사진과 함께 이를 주요 기사로 다뤘다.

‘타도 거인’을 외치며 호시노가 그토록 넘어서길 원했던 요미우리 자이언츠의 모기업, 요미우리 신문도 마찬가지였다. 또 아사히 신문 1면의 권위 있는 고정 칼럼 ‘덴세이진고(天聲人語)’의 주인공도 그였다. 1969년부터 14년간 주니치의 에이스 투수로 남긴 성적은 146승 121패 34세이브. 감독으론 주니치와 한신, 라쿠텐 3개팀을 이끌며 1181승 1043패였다.

취재일기 1/8
호시노는 자신을 ‘초(超)2류’로 불렀다고 한다. 1류는 아니었고, 그렇다고 2류라고도 할 수 없는 존재라는 의미였다. 실제로 그는 1등은 아니었다. 선수나 감독으로 일본시리즈 우승 반지를 낀 건 66세 때인 2013년 딱 한 해였다. 일본 언론이 그에게 열광하는 건 강적에게도 겁 없이 맞서는 오기와 투지 때문이다.

50년 전인 68년 신인 드래프트에서 자신을 물 먹였던 무적 자이언츠를 타도하는 게 일생의 목표였다. ‘1구 1구에 기합을 넣어 던졌다’는 자신의 말처럼 자이언츠를 상대로 통산 35승 31패를 거둬 결국 ‘거인 킬러’가 됐다.

‘감독 호시노’는 가시밭길을 마다하지 않았다. 2010년 10월 도호쿠 지방이 근거지인 만년 약체팀인 라쿠텐의 감독을 맡았다. 그리고 동일본 대지진(2011년 3월)으로 쑥대밭이 된 지역 주민들의 열망을 담아 2013년 일본시리즈 제패를 일궈냈다. 상대는 숙적 요미우리 자이언츠였다.

자신은 1류가 아니라 2류라지만, 그런 2류까지도 영웅으로 만드는 게 바로 일본 사회다. 문화예술·스포츠계에서 일본을 빛낸 이들에게 총리가 수여하는 ‘국민영예상’도 마찬가지다. 77년 1호 수상자인 오 사다하루(왕정치)를 비롯한 24명(한 번은 단체가 수상)이 그 상을 탈 때마다 국민적인 축복을 받았다. 그리고 국민을 하나로 묶는 힘이 됐다.

블랙리스트, 화이트리스트 논란으로 문화예술계까지 두 동강이 난 한국의 현실을 떠올리면 일본의 영웅 만들기는 그저 호들갑 떠는 것으로 여겨지지 않는다.

서승욱 일본지사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