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따라 멋따라] 세월 위에 앉다..삐걱이는 옛 여관, 슬로우푸드 말차(抹茶)

2018. 1. 6. 07: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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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백산맥 배경..전통 분말 녹차인 말차·전라도 정식 음미, '보성·벌교' 여행

(보성=연합뉴스) 성연재 기자 = "말차(抹茶)가 일본 거라고요? 아니요. 한국에서 만들어진 녹차 제조 방법이죠."

일본 자판기에서 마시던 녹차, 우리나라의 맛과 달랐다는 느낌. 이를 알고 보면 말차라고 한다.

쪄낸 찻잎을 그늘에서 말린 후 맷돌에 곱게 갈아 분말 형태로 타 먹는 차다.

녹차를 가공하는 또 다른 방법으로 고안됐다.

오전 일찍 보성 다원 가운데 가장 대표적인 대한다원을 방문한 사람들이 차밭 길을 걷고 있다(성연재 기자)

말차를 만드는 녹차는 재배부터 다소 다른 길을 걷는다.

수확을 앞두고 10∼15일 정도 햇볕을 가려 찻잎을 부드럽게 한다.

말차를 마시는 법도 살짝 복잡하다.

거품에 따라 차 맛과 향이 달라질 수 있으므로 고르게 거품이 일도록 솔로 저어야 한다.

말차는 일본에서만 발달한 차다?

아니다. 말차는 조선 초기까지 선조들이 흔히 마시던 녹차의 한 종류였다.

말차는 미세한 녹차 분말을 거품을 내서 마신다(성연재 기자)

가공 단계를 더 거쳐야 했기에 한국에서는 이후 사장(死藏)됐을뿐이다.

말차는 녹차로 말하자면 패스트 푸드가 아니라 슬로우 푸드였던 셈이다.

빠른 속도가 중요한 시대였다.

이제는 조금 늦게 가더라도 천천히 그 맛을 음미할 수 있는 방법이 중요한 시대로 다시 돌아왔다 하면 과장일까?

고려 시대까지만 해도 우리 조상들은 말차로 녹차를 마셨다고 한다.

최근 녹차의 고장 보성에서 말차가 복원됐고 마시는 차로 양산된다고 한다.

역시 녹차의 고향다운 움직임이다.

대한다원의 일출(성연재 기자)

◇ 녹차의 고장 보성

'녹차의 수도'라는 명칭에서 알 수 있듯 보성은 녹차의 메카다.

전국 차 재배 면적의 37%를 차지하고 있다.

보성은 산과 바다, 호수가 어우러진 지역으로 해양성 기후와 대륙성 기후가 만나는 지점에 있다.

이 때문에 일교차가 심해 차의 아미노산 형성에 큰 영향을 준다.

연평균 기온은 섭씨 13.4도, 연평균 강우량 1천400mm로 차 생육 조건에 더할 나위 없이 좋다.

여기에 가장 중요한 요소 하나가 더 숨어있다.

바로 안개다.

보성은 예로부터 안개가 끼는 날이 많았다. 이 안개가 차나무 성장기에 필요한 많은 수분을 공급하며 자연 차광효과 또한 높여준다.

이 안개가 차맛을 좋게 한다.

벌교에는 적산가옥이 많다. 사진은 금융조합건물(성연재 기자)

수많은 다원 중 가장 유명한 곳은 역시 대한 다원이다.

수없이 많은 영화 CF, 드라마의 배경이 된 곳이다.

◇ 보성 여행의 핵심 벌교

보성 여행은 보성읍과 벌교읍 두 군데로 나눠 봐야 한다.

한쪽은 녹차 밭을 중심으로 한 친자연적인 여행지라 볼 수 있다.

벌교 쪽은 역사가 살아있는 여행지라는 느낌이 더욱 강하다.

벌교에는 일제강점기에 금융조합으로 사용된 금융조합 건물 등 적산가옥들이 많다.

여자만으로 흘러드는 벌교천 한가운데 자리 잡고 있는 것이 소화다리다.

소설 태백산맥의 배경이 된 소화다리. 격동기였던 한국동란 때는처형장소로 쓰였다. 다리 아래 갈대밭이 피로 물들었다 한다.(성연재 기자)

1931년 건립 당시가 일제강점기인 쇼와(昭和) 6년이었다. 그래서 붙은 이름으로, 원래 이름은 부용교다.

이 다리는 여순사건의 소용돌이 등 한국동란의 격랑이 요동치며 남긴 우리 민족의 비극과 상처를 고스란히 품고 있는 곳이다.

양쪽에서 밀고 밀릴 때마다 이 다리 위에서 사형 집행이 이뤄졌다. 피로써 피를 씻은 다리인 셈이다.

지금도 당시의 치열했던 상황을 보여주는 총알 자국이 곳곳에 선명하다.

조정래의 소설 태백산맥에 묘사된 소화다리 구절은 당시의 처절함을 그대로 보여준다.

'소화다리 아래 갯물에고 갯바닥에고 시체가 질펀허니 널렸는디, 아이고메 인자 징혀서 더 못 보것구만이라…'

◇ 잘 곳

소설 태백산맥의 배경이 된 남도여관(보성여관)(성연재 기자)

보성에서 빠뜨리기 쉬운 곳이 바로 잘 곳에 대한 이야기다.

적산가옥을 개조해 여관으로 쓰인 곳이 있다. 보성여관이다.

이곳을 빠뜨릴 수 없는 것은 태백산맥의 배경이 된 곳이기 때문이다.

소설태백산맥문학기행길에 자리잡고 있는 이 옛 여관은 소설에서는 남도여관으로 묘사됐다.

등록문화재로 등재된 '보성여관'(성연재 기자)

'벌교의 지주들은 말할 것도 없고 보성의 지주들까지 남도여관의 뒷문을 드나들었다'

태백산맥 2부 민중의 불꽃 4권 43페이지에 나오는 문장이다.

당시 보성여관의 위치를 가늠케 할 수 있는 가장 대표적인 소설 속의 문장이라 할 수 있다.

보성여관은 2층 규모의 큰 여관이다. 해방 이후부터 한국전쟁까지의 시대적 상황을 보듬어 안은 근현대 삶의 현장이다.

보성여관에서는 차를 마실 수 있는 공간이 있어 숙박객이 아니더라도 차 한잔에 옛 정취를 느낄 수 있다(성연재 기자)

벌교는 일본인의 왕래가 잦은 곳이었으며 근현대 벌교의 역사문화환경을 형성하는 중요한 거점으로서 역할을 해 왔다.

이곳은 2004년 역사 및 건축사적 가치를 인정받아 '등록문화재 제132호'로 지정됐고 최근에는 '문화유산 국민신탁'이 운영을 맡고 있다.

작은 1층 객실에 여장을 풀고 역사의 소용돌이 속 주인공들이 고단한 삶을 내려놓고 잠시 쉬었던 공간의 의미를 느껴보는 것도 좋을 듯하다.

벌교 구도심 곳곳이 아름다운 벽화로 장식돼 있어 걷는 재미가 쏠쏠하다(성연재 기자)

이곳에서는 차를 마실 수 있는 공간이 있어 숙박객이 아니더라도 차 한잔에 옛 정취를 느낄 수 있다.

다만, 숙박비가 다소 비싼 점이 살짝 아쉽다. 하지만 우리 역사의 아픔을 가진 건물을 보존하기 위해서는 필요하지 않을까 싶다.

◇ 먹을 곳

'벌교 하면 꼬막'이라는 등식이 자리 잡은 지 오래됐다.

벌교는 인근 여자만 지역에서 나오는 꼬막이 모이는 집산지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최근 여행자들은 꼬막보다는 다른 음식을 찾기 시작했다.

떠들썩한 잔칫집 같은 맛집들보다 이름 없는 밥집에서 맛깔스러운 정식을 찾아내는 것이 남도 여행의 정수다(성연재 기자)

꼬막 하나 들어간 정식일뿐인데, 가격이 꽤 비싸기 때문이다.

보성여관 맞은편 길거리에 이름없는 작은 정식 집을 찾았다.

시원시원한 성격의 전라도 아주머니와 할머니가 함께 운영하는 이 집은 보성 일정 내내 찾았는데, 때마다 싱싱한 재료로 전라도 정식 특유의 맛깔스러움을 선사해줬다. 게다가 가격까지 저렴했다.

떠들썩한 잔칫집 같은 맛집들보다 이름 없는 식당에서 맛깔스러운 정식을 찾아내는 것이 남도 여행의 정수다.

polpori@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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