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옛 남영동 대공분실, 시민 품으로" 청원

곽동건 입력 2018. 1. 5. 20:34 수정 2018. 1. 5. 21: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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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데스크] ◀ 앵커 ▶

영화 1987로 다시 주목받고 있는 곳, 고 박종철 군을 포함해서 많은 민주화 운동 인사들이 고문당하고 목숨을 잃었던 서울 남영동 대공분실.

그동안 경찰이 맡아서 일반에 공개해왔었습니다.

최근에는 시민들이 운영하는 인권기념관으로 바꾸자는 청원이 늘고 있다고 합니다.

곽동건 기자가 취재했습니다.

◀ 리포트 ▶

영화 <1987> "'탁' 치니 '억' 하고… 어?"

최근 개봉한 영화 <1987>의 배경이 된 남영동 대공분실입니다.

한 번 들어가면 성해서 나오기 힘들다는 건물 쪽문.

몇 층으로 가는지조차 알 수 없는 녹슨 철제 계단을 오르면 작은 방들이 나옵니다.

고 박종철군을 포함해 민주화 운동을 했던 많은 사람들이 잡혀와 물고문을 받았던 곳입니다.

[경찰 관계자(지난 1987년)] "욕조를 왜 이렇게 만들었어요?" "여기 오래 있다 보면 땀이 나면 목욕도 할 수 있고…"

반대편을 볼 수 없도록 문을 엇갈리게 배치한 16개의 방, 이 가운데 유일하게 박종철 열사가 숨진 이 취조실만 그대로 보존돼 있습니다.

[김학규/박종철 열사 기념사업회 사무국장] "(고문 장소로 쓰인) 남산 안기부 터, 서빙고 대공분실…그런 곳은 다 사라졌고 여기 남영동 대공분실만 옛 모습 그대로 (남아 있습니다.)"

2005년까지 대공분실로 활용된 이곳은 이후 경찰 인권센터로 바뀌면서 몇 개 층이 일반에 공개됐습니다.

하지만 관람객을 안내하는 전문 학예사는 없고 표지판도 눈에 잘 띄지 않습니다.

[연성수/남영동 대공분실 고문 피해자] "이 방에 누가 있었다고 쓰여 있어요? 아무것도 없잖아요. 이 방에서 굉장히 많은 민주시민들이 고통받았고…"

10년 넘게 평일 낮에만 개방하다가 토요일 개방을 시작한 것도 작년 7월, 새 정부가 들어서자 경찰이 서둘러 바꾼 조칩니다.

영화에서 잇따라 다뤄지면서 이 건물을 인권 교육을 위한 시민 공간으로 바꿔야 한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습니다.

[박종부/고 박종철 열사 친형] "'박종철이 아직까지도 경찰의 손아귀를 벗어나지 못하고 있구나'하는 생각을 하면서 억장이 무너질 때도 많았죠."

경찰은 "그동안 운영에 최선을 다해왔고 청와대 국민청원에 대해서도 검토하겠다"고 밝혔습니다.

지난 5년간 이곳을 찾은 관람객은 2만 5천 명으로 하루 평균 10여 명.

지난 2일 처음 청와대 홈페이지에 올라온 청원에는 지금까지 2천2백여 명이 동참했습니다.

MBC뉴스 곽동건입니다.

곽동건기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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