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르네상스 숙명여대]대한제국 '교육통한 구국애족' 정신으로 설립

2018. 1. 5. 03: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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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 창학 112주년을 맞이하는 숙명여대의 역사는 1906년 설립된 명신여학교에서부터 시작된다.

명신여학교는 1905년 을사늑약으로 민족의 명운이 풍전등화였던 시절, 대한제국의 고종 황제와 순헌 황귀비가 '교육을 통한 구국애족'이라는 정신으로 만든 여학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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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학 112년 역사

[동아일보]

고종 황제와 순헌 황귀비 존영.
올해 창학 112주년을 맞이하는 숙명여대의 역사는 1906년 설립된 명신여학교에서부터 시작된다. 명신여학교는 1905년 을사늑약으로 민족의 명운이 풍전등화였던 시절, 대한제국의 고종 황제와 순헌 황귀비가 ‘교육을 통한 구국애족’이라는 정신으로 만든 여학교다.

1906년 5월 18일자 황성신문엔 학생 모집 공고가 실렸다. “본교에서 금월 20일 개교식을 거행할 터이니 양반 가문 여자 중 입학 지원자는 개교 전에 와서 청하시오. 연령은 11세 이상 25세 이하인 자로 혼인 여부에 상관없이 입학을 허가함.” 이 공고를 보고 모인 양반집 규수 5명이 명신여학교의 첫 입학생이자 숙명여대의 첫 동문이 됐다.

명신여학교는 서울 종로구 수송동 80번지(당시 한성부 수진방 박동)에 위치한 용동궁 1587m²(약 480평) 대지에 지은 75칸의 한옥을 교사로 썼다. 정경부인(문무관의 처 중 가장 높은 위치) 이정숙 여사가 우리 교육사상 처음으로 한국인 여자 교장이 됐다. 1909년엔 교명을 숙명고등여학교로 바꾸고 이듬해 첫 졸업식을 열었다.

학교는 대한제국 황실의 보조금으로 운영됐다. 1912년엔 경선궁과 영친왕궁으로부터 받은 전국 농경지 1000만 m²가량을 기본 재산으로 삼아 재단법인을 설립하고 일제에 저항하는 구국교육을 실시했다. 선교사 등 외국 자본에 의지하지 않고 오직 우리 힘으로 일으킨 것이다.

숙명여대가 현재 자리인 용산구 청파동으로 옮긴 것은 1938년 숙명여자전문학교 개교 때다. 일제 말 ‘숙명여전 설립 운동’으로 모은 돈과 고종의 7번째 아들이자 대한제국 마지막 황태자인 영친왕이 하사한 효창원 토지를 기반으로 문을 열었다. 가정과, 기예과, 전수과 등에 130명으로 개교한 숙명여전은 우수한 교수진을 확보해 명실상부 최고의 여성전문교육기관으로 자리매김했다.

그로부터 80년간 숙명여대는 격동의 산업화, 근대화 시기를 거치며 여성 인재를 꾸준히 배출했다. 여성 최초 국립과학수사원장인 정희선 충남대 분석과학기술대학원장, ‘포브스 아시아’ 선정 파워 여성 기업인 조선혜 지오영 대표이사, 대형 포털업계 최초 여성 CEO인 한성숙 네이버 대표이사 등이 ‘숙명인’이다. 유리천장을 깨기 위한 숙명의 도전은 여전히 진행형이다.

조건희 기자 becom@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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