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J report] 가사도우미 특별법 딜레마 .. 일자리는 안정, 비용은 껑충
노동관계법 통해 근로자 권익 보장
이용자들은 비용 소득공제 받고
서비스업체에 손해배상 청구 가능
구체적 시행 방법 놓고 논란 커져
정부 '행정지침' 정책꼼수 보다는
파견법 네거티브 방식으로 바꿔야
가사도우미는 고용형태가 불안하다. 가정집에서 “더 나오지 말라”고 통보하면 일자리를 잃는다. 직장인처럼 실업급여가 나오는 것도 아니다. 가사는 보기보다 고되다. 일의 특성상 손목이나 허리 등을 다치는 경우가 많다. 그렇다고 하소연할 곳도 마땅찮다. 엄연히 일하는 사람이지만 노동관계법의 사각지대에 놓여 있다. 가사도우미를 보호하고, 고용시장의 관점에서 관리해야 한다는 지적이 계속된 까닭이다. 선진국은 가사도우미를 정식 근로자로 인정해 법으로 보호하는 경우가 많다.
가사도우미 문제를 부각한 건 박근혜 정부다. 박근혜 정부는 가사도우미를 공식 경제에 포함시켜 법으로 보호하는 방안을 강구했다. 그러나 가사도우미 시장이 사적 계약에 의한 비공식 경제 영역이어서 시장규모나 임금수준과 같은 관련 통계가 없었다. 정부가 수년간 시장 상황을 파악한 이유다.
하지만 개인의 사적영역에 대해 법률로 규율하는 데 따른 부작용이 없을 수 없다. 노조 결성에 따른 파업으로 서비스 이용에 제한을 받을 수 있다. 호출근로의 특성상 가사도우미는 주당 15시간 근로를 채우지 못하는 경우도 비일비재하다. 이렇게 되면 단시간 근로자로 분류돼 노동관계법의 적용에서 배제된다. 비용도 인상될 것으로 정부는 추산했다. 통계에 따르면 평균 월 60만원인 가사도우미 지출비용이 70만~80만원 정도로 오를 전망이다.
이런 우려와 논란에도 불구하고 가사도우미법이 불러올 긍정적 효과도 만만찮다. 가사도우미법이 제정되면 가사도우미는 공식경제에 포함된다.
따라서 가사도우미는 정식 근로자로 대우받는다. 고용보험을 비롯한 4대 보험을 적용받게 되고, 근로기준법과 같은 노동관계법의 권익도 누릴 수 있다. 보수에 세금도 매기게 된다(보수액이 크지 않아 세금을 내는 경우는 거의 없을 전망이다). 이용자는 가사도우미를 채용한 서비스기관을 상대로 손해배상을 요구할 수 있다. 보육도우미와 같은 영역에선 부모의 소득공제가 가능한 기반도 마련된다. 중년 여성을 중심으로 가사도우미 시장은 커질 전망이다.
정부도 이런 추세를 감안해 법으로 가사도우미를 보호하려는 것이다. 다만 핀란드처럼 법을 제정하되 지금처럼 직업소개소를 금지하지 않고 병행하는 방식이다.
문제는 시행 방법이다. 정부의 법률 안은 전형적인 파견체계에 가사도우미를 편입시키는 모양새다. 현행 파견법은 컴퓨터 관련 전문가나 음식·조리 업무 같은 32개 업종에만 파견을 허용한다. 가사도우미는 이 업종에 해당하지 않는다. 파견금지업종이란 얘기다. 정부의 법률안이 파견법 위반 논란에 휩싸인 이유다. 정부가 파견법을 개정하지 않고 특별법 형태로 법을 제정하려는 이유는 단순하다. 파견업종 확대와 같은 법 개정에 노조가 반대하고 있어서다.
정부도 법 제정을 추진하면서 이런 문제를 알고 있었던 것으로 확인됐다. 정부 내에서 “자칫하면 정부가 불법파견을 조장한다는 비판에 직면할 수 있다”는 걱정이 나왔다. 파리바게뜨와 같은 기업에는 무리할 정도로 불법파견의 잣대를 들이대는 정부로선 고민할 수밖에 없었다.
결국 정부는 처음 법안을 만들 때 ‘가사근로자·제공기관 사업주 및 이용자에 대하여는 파견근로자 보호법을 적용하지 아니한다’고 명시(제4조)했다. 파견법을 피할 수 있는 장치를 둔 셈이다. 그러나 법제처와 협의 과정에서 관련 조항이 삭제됐다. ‘파견’이라는 용어가 들어가면 불법파견 논란이 더 커질 수 있다는 우려에서였다.
하지만 법률 제정안이 의결된 뒤 불법파견 논란은 다시 불거졌다. 이렇게 되자 정부가 또다시 꼼수를 내놨다. 가이드라인(행정지침)을 만들어 계도한다는 것이다. 법률(파견법) 위반을 행정해석으로 무력화하려는 초법적 발상이다. 근로시간단축 문제도 정부가 행정해석을 잘못해 고용시장을 혼란에 빠뜨렸다. 혼란은 지금까지 이어지고 있다. 이런 정책꼼수를 되풀이하는 셈이다.
박지순 고려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파견법을 현행 포지티브(허용업종 나열) 방식에서 네거티브(금지업종 나열) 방식으로 바꾸는 것과 같은 정공법을 구사하지 않으면 자칫 정부가 파견시장을 무질서하게 만든다는 비판을 들을 수 있다”고 말했다.
가사도우미의 소득공개에 따른 부작용 해소 방안도 아직 없다. 예컨대 가사도우미 중에는 기초생활수급자가 제법 많다. 이들의 소득이 공개되면 국가가 제공하는 복지혜택 축소나 제외 같은 부담을 안아야 한다. 저소득층의 소득 증대를 위한 세제 연계와 같은 추가 보완책을 내놓지 않으면 법이 제정되더라도 효과가 반감될 수 있는 셈이다.
김기찬 고용노동선임기자 wolsu@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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