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건표 교수의 연극이야기] 54. 소통의 부재, 불안과 분노의 욕망 '스프레이'

2018. 1. 3. 10: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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극단 초인은 2003년도 창단작품 <기차>를 출발로 <봉순이 언니>, <선녀와 나무꾼>, <기찻길>,< 궁극의 절정 그 전율 맥베스>, <뮤지컬 봄날>, <동화풍경> 등 올해로 15개의 작품을 올리면서 무대 언어는 극도로 절제되고 배우 움직임은 섬세한 표현으로 주목을 받아왔다.
소설가 김경욱 원작 <스프레이>를 한 인간의 결핍과 불안, 분노의 욕망이 사회로 전이되는 사회적 현상으로 그려냈다. 각색 연출을 한 박정의는 원작의 맛을 깊게 살려내고, 사회적 문제와 현상, 극중 인물의 병적증세의 내면성에 사회현상의 살점들을 끄집어내 장면과 메시지를 시각적으로 그려냈다. 이번 공연은 극단 초인의 2017년도 정기공연 작품으로 공연예술 창작산실 올해의 레퍼토리로 선정된 작품이다.

대한민국 이웃을 향하는 분노의 욕망

인간은 결핍과 콤플렉스를 느끼는 존재다. 치유되지 못한 내면의 결핍은 콤플렉스를 동반해 형성한다. 때로는 심리적 불안감과 분노의 욕망에서 쏟아지는 화기가 사회바닥으로 전이(轉移)되고 표출된다. 원인은 여러 가지 이유가 있겠다. 성장배경, 학력, 차별, 경제성, 열등감과 소외와 결핍, 혹은 ‘남과 다르다’ 는 이유로 성장기에 형성된 내면의 심리적인 장애는 불안과 분노의 욕망으로 확대 될 수 있다.

심리장애를 겪는 대인기피증은 은둔형 외톨이로 사회와 단절되고 고립되어 진다. 일본도 외부세계와 철저하게 고립되거나 차단된 채 살아가는 ‘히키코모리’ 증가는 사회문제로 인식하고 있다. 일부 일탈된 분노가 사회를 향한 공격적인 욕망으로 표출되는 묻지마 살인, 길거리 폭행, 방화, 도벽과 절도, 반려동물의 확대, 잔인한 고양이 살인, 관음증 등 다양한 심리적 증세로 나타난다.

이러한 사례는 뉴스를 통해 넘쳐나게 접할 수 있다. 전 검찰총장의 관음증을 동반한 행동은 사회를 충격적으로 강타한 적이 있다. 자살, 방화, 폭력, 살인사건 뉴스도 이제 웬만해서는 시청자가 자극을 받지 않는다. 층간소음 문제로 한 아파트에서 일어난 끔찍한 복수사례도 단순한 소통의 부재와 단절된 사회현상으로만 바라보기에는 힘겹다. 이들도 피해자일 수 있다는 시선으로 바라 볼 필요가 있다. 극단 초인에 의해 지난해 31일까지 공연된 ‘스프레이’(극장 오르다) 는 이러한 사회적 문제와 현상들을 한 아파트에서 살아가는 709호 남자와 109호 여자를 통해 묶어내고 있다.

김경욱 소설 ‘스프레이’ 박정의 연출 ‘스프레이’

김경욱 소설을 원작으로 하고 있는 <스프레이>는 백화점 숙녀화 매장 매니저 일을 하며 적십자 회비도 매달 챙기는 성실한 한 남자(309호 남자)의 강박증, 불안과 분노, 관음, 도벽과 분노의 내면의 욕망을 &#51922;아간다. 이 남자의 도벽은 709호에 사는 옆집 여자의 택배를 실수로 들고 오면서 출발된다.

택배상자 안에는 화장용품과 땀 냄새를 제거하는 라벤더 향의 스프레이가 들어 있다. 스프레이만을 남겨주고 상자는 버린다. 남자는 긴장을 하거나 감정의 상태가 변화되면 땀이 손바닥에 땀이 축축하게 젖는다. 이러한 이유로 신발 매장에서 손님을 응대할 때면 땀 냄새 나는 손을 내밀지 못하는 강박증과 불안감에 시달린다. 성장과정에서 남자가 실수를 저지르면 아버지로부터 “넌 대체 뭐하는 놈이냐? 축축한 놈”이라는 소리를 듣고 자랐다. 처음 만나 여자 친구로부터 헤어지자는 통보를 받은 이유도 ‘축축한 손’ 때문 일 것이라고 생각하는 소심한 인물이다.

그는 실수를 반복 하지 않기 위해 강박증에 시달리며 문자메시지도 퇴고해서 보낼 정도가 됐고 축축한 손을 들키지 않기 위해 남들 앞에서 자신 있게 손을 내밀지 못하는 기피증에 시달린다. 집과 백화점을 오고가는 단조로운 출·퇴근을 반복하며 생활용품도 온라인 홈쇼핑으로만 주문한다. 원작 소설도 이러한 한 남자의 내면상태와 원인을 친절하게 설명하고 있지 않다. 다만 이 남자의 강박증은 남과 다른 정상적이지 못한 ‘축축한 손’을 가졌다는 결핍된 심리상태와 실수를 포용하지 못하는 아버지의 존재, 그리고 여자 친구의 이별통보로 이 남자의 강박증과 심리적인 불안감은 증폭된다.

매일 새벽 5시면 어김없이 아파트 계단으로 들려오는 109호 여자의 구두소리와 그녀와 함께 지내는 고양이 울음소리로 잠을 설쳐야 하는 남자는 환영과 환청에 시달리고 고양이 소유주인 옆집여자를 향한 증오는 분노의 욕망으로 좁혀진다. 고양이 소리에 잠을 잘 수 없다고 인터폰으로 109호 여자한테 항의해도 마음은 소심하게 변화되고 손은 더욱 축축해 진다. 불안한 남자의 심리상태는 실수로 들고 온 택배상자로 나타난다. 반복적으로 이웃집 택배를 들고 올 정도로 도벽에 흥분과 쾌감을 느끼게 되고 벽면으로 들려오는 여자의 샤워 소리와 생활소음까지 듣는 관음증까지 보인다. 고양이와 여자를 죽이고 싶다는 착각과 욕망은 변태적인 욕구로 채워진다. 그 소리가 들리지 않으면 불안해 진다.

이 작품에서 여자를 향한 남자의 심리상태가 변화되는 것은 죽은 고양이 시체가 담겨있는 109호 여자의 택배상자를 훔쳐온 뒤부터다. 남자는 죽은 고양이가 담긴 택배상자는 돌려주면 되고 자신을 괴롭히던 고양이 울음소리가 더 이상 들리지 않아 잠을 푹 잘 수 있다는 생각을 한다. 고양이 시체가 담긴 상자를 우체국 택배로 돌려주기로 하지만 성공하지 못 한다. 남자에게 증오와 분노의 대상인 고양이는 타인에게 분신(分身) 같은 절대적 존재가 될 수 있다.

작품의 틈으로 들어가면 109호 여자는 자신의 택배를 이웃집 남자가 훔쳐간다는 사실을 알았다는 해석이 가능해 진다. 자신이 소중히 아끼는 고양이를 증오하고 있다는 사실에 109호 여자는 고양이 시체를 송장번호가 찍히지 않은 택배상자로 둔갑시켜 이웃집 남자에게 전달되는 복수극을 통해 남자에 대한 증오와 분노를 표출하고 있다. 축축한 손의 남자는 아버지와 헤어진 여자 친구로 형성된 내면의 결핍과 콤플렉스로 확장된 강박증, 도벽, 관음증 등 여러 심리적 불안감으로 증폭되고 옆집 여자를 증오의 대상으로 분노의 욕망은 표출한다.

이 남자의 내면상태의 반전은 109호 여자의 죽음과 마지막 인터폰 소리다. 분홍색 트레이닝복과 영어로(PINK) 라고 선명하게 새겨진 옷을 즐겨 입는 이 여자에게 간혹 아파트 복도와 엘리베이터 안에서 만나면 709호 남자는 천박하다고 생각한다. 여자 아파트로 매일 찾아오는 또 다른 트레이닝복 차림의 한 남자를 목격하고 벽면으로 들려오는 두 사람의 대화를 엿듣게 된다. 두 사람의 싸움, 욕설, 폭력, 반복되는 여자의 울음소리를 듣게 되고 옆집 여자의 생활을 목격함으로써 연민의 정을 느낄 정도로 감정이 동일화 된다.

이러한 인물의 심리변화를 체감할 수 있는 장면이 없었다면 고양이 시체를 돌려주기로 한 행동은 설명하기 어려워진다. 남자가 109호 여자얼굴을 처음 확인한 것은 아파트 베란다에서 떨어진 그녀의 죽음을 목격하면서다. 여자의 심리상태를 자신과 동일화시킴으로써 고양이 울음소리에 시달려온 남자에게 심리적 폭력의 가해자로 인식된 109호의 여자의 죽음은 그녀 또한 누군가에게 심리적 타격을 가격당한 피해자가 될 수 있고, 남자도 여자가 죽음을 선택 할 수밖에 없도록 한 가해자가 될 수 있다.

마지막 장면에서 남자는 옆집여자 집에서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는 불안감에 시달린다. 사회로 표출되고 있는 인간의 분노와 증오 현상은 국가도 가해자인 동시에 피해자가 될 수 있다. 한 인간의 틈으로 새어나오는 분노와 증오를 전소 할 수 있는 것은 삶의 불균형과 소외, 취업의 불안감, 양극화된 사회, 복지문제, 금 수저 사회 현상에서 틈이 생긴다. 안전한 사회적 제도와 국가 환경이 마련되지 못하면 709호 남자의 인터폰 소리는 대한민국 사회로 매일 울릴 수 있다. 분노의 욕망을 치유 할 수 있는 라벤더 향이 나는 사회적인 ‘스프레이’가 필요하다.

배우의 섬세한 표현과 공간 활용

무대는 직사각형 사각프레임 7개로 대칭과 평면구조로 이루고 공간을 분할하고 있다. 각 장면마다 프레임 면으로 투사되는 3D 프로젝션 맵핑 기술도입을 통한 첨단영상의 활용은 가상의 소설공간을 초현실적 무대로 대입시키고 변화시키는 역할을 한다.

소설 속 등장인물이 무대로 걸어 나온 삶과 생활은 초현실적이다. 배우의 언어는 극도로 절제된다. 배우는 움직임, 표정, 제스츄어, 배우걸음걸이로 인물의 내면과 감정을 확장한다. 배우들의 비현실적인 분장은 몽환적이며 그로테스크하다. 오히려 이러한 무대표현들이 언어가 절제된 무대 공간과 소설을 원작으로 하고 있는 이번 연극에서 소설의 텍스트를 시각적 효과로 극대화 시키고 있다.

특히, 극중 인물 709호 남자 역할로 분한 여배우 이상희는 인물의 내면을 움직임과 섬세한 동작으로 표현시켜 극의 몰입을 높이고 감정은 절제된 층을 이룬다. 이상희 배우의 섬세한 표현과 표정으로 달아오르는 감정의 절제성은 등장인물의 내면의 상태를 도려낸다. 스프레이는 무대장치가 없다. 백화점 숙녀매장, 거리, 지하철, 아파트입구, 경비실, 엘리베이터, 화장실, 아파트, 스크린도어 등 장면은 직사각형 사각 프레임 7개로 대비시켜 장면을 분할해 배우들이 사각프레임을 조합하고 속도감 있게 변형시키면서 장면의 활용과 원작 소설의 시각적 효과를 극대화 했다.

극이 이어지는 장면의 분위기와 장소의 변화는 투사되는 3D 영상으로 가상의 공간을 초현실적으로 변화시키고 장소와 장면의 환영을 만들어 내며 사회적 벽면과 경계를 그리고, 채우고, 지우면서 상상력을 자극한다.

극중 인물의 실제적인 대화와 대사는 109호 여자가 택배문제로 경비와 실랑이를 벌이는 경비실 장면과 고양이 죽음의 비밀을 밝히려고 709호 남자를 형사가 심문하는 장면을 제외하고는 내레이션과 움직임으로만 채워지고 있다. 소설의 지문과 극중 인물의 내면의 독백은 녹음된 내레이션으로 처리해 관객들은 무대로 흘러들어오는 인물의 소리와 배우들의 절제된 움직임만으로 강박증과 불안감에 시달리며 분노의 욕망을 표출하고 있는 인물을 발견하게 된다.

이상희 배우의 노련한 연기는 709호 남자의 불안한 심리 묘사를 동일 소설의 극중 인물과 각 장면과 상황으로 그려냈고, 연출은 소설이 연극무대로 걸어 나올 수 있도록 입체감 있게 시각화 시켰다.

박정의 연출은 이러한 한 인간의 분노의 욕망을 사회로 확장하면서 원작에서는 들어나지 않는 장면을 삽입한다. 극중 인물의 출·퇴근 전철에 탑승한 승객들을 일그러진 분노의 표정으로 일관되게 시각화 시키고, 장면사이에 퇴직 압박에 스트레스와 과로사한 모 기업 과장, 여학생의 투신, 학교폭력 등 사회현상을 뉴스로 증폭시켜 한 인간의 잔인한 분노의 욕망을 사회문제로 연결한다.

또한, 여자 친구와 헤어진 레스토랑 장소를 꿈꾸는 장면에서는 고양이 소리로 불안감과 환청에 매일 시달리는 남자의 심리상태의 지속성을 표현하기 위해 웨이터도 고양이로 희화화(戲畫化) 시켜 무거워 질수 있는 작품의 무게를 덜어냈다. 몽환적이고 그로테스크한 분위기를 배우들의 움직임으로만 기괴한 장면으로 연출하고 표현해 원작 소설의 틈새를 무대로 형상화 시켰다.

사각 프레임을 가변적으로 움직이며 장면의 결이 살아 날수 있도록 속도감 있게 공간화 시켜내는 배우들의 앙상블과 등장인물의 내·외면의 캐릭터와 심리상태를 움직임과 표정만으로 원작의 텍스트를 채우고 연출의 각색의 방향을 따라가는 배우들의 노련함과 활력이 돋보이는 무대라 할 수 있다. 이상희, 김정아, 김하진, 신은경, 최재형, 이보람, 김영건, 고종승 등이 스프레이의 흡수력을 높였다.


▶극단 <작은 신화>에서 조연출을 거친 박정의 연출은 극단 <초인>의 대표이자 상임연출가다. 초인의 작업과정은 연극만의 독특한 표현 방식을 탐구하고 그것을 찾아가는 상상력의 과정에 있다. 극단 단원들과 수십 차례 워크숍을 통해 공연 텍스트의 틀을 만들고 장면 하나, 하나를 섬세하게 붙이고 형상화 시켜 상상력과 확장한다. 배우들의 움직임과 공간 활용이 뛰어난 연출가다. 무대의 언어는 극도로 절제되고 움직임, 제스처, 파스쳐, 배우의 표정과 걸음으로 무대 풍경을 또렷하게 이미지화 한다. 극단 초인의 연기 메소드는 인물의 심리를 호흡으로 만들어내고 그 호흡을 움직임으로 발전시키는 과정에 있다.

▶소설가 김경욱은 1993년 ‘작가세계’ 신인상에 중편소설 <아웃사이더>가 당선되면서 문단에 데뷔했다. 장편소설로는 <아크로폴리스>, <모리슨호텔>, <황금사과>, <천년의 왕국>, <동화처럼>, <야구란 무엇인가>가 있으며 단편소설로는 <소년은 늙지 않는다>, <장국영이 죽었다고?> , <위험한 독서> 등이 있다. <천국의 문>으로 이상문학상과 <위험한 독서>로 동인문학상을 수상했으며 단편소설 <장국영이 죽었다고?>로 한국일보 문학상을 받았다.

대경대 연극영화과 교수(연극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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