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

[우리도 가족입니다]'결혼·혈연만 정상가족' 인식 벗어야 '돌봄 사각지대' 줄인다

박송이 기자 입력 2018.01.02. 22:45 수정 2018.01.04. 09: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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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향신문] ㆍ1인 가구·고령화사회를 위해

노인 가정을 방문한 돌봄봉사자들이 할머니와 함께 미술활동을 하고 있다. 다양한 가족형태를 대상으로 한 사회안전망 및 돌봄 정책 도입이 시급하다는 목소리가 높다. 경향신문 자료사진

결혼을 해야 어른이 된다는 건 여전히 강고한 한국 사회 통념이다. SBS <미운 우리 새끼>는 나이가 아무리 많은 성인이라도 결혼하지 않으면 미성숙하게 바라보는 한국 사회의 시각을 담고 있다. 전통적으로 결혼, 출산, 양육으로 이어지는 생애주기가 일종의 가이드라인처럼 제시돼 왔고, 부모와 자녀로 이루어진 가족만이 정상가족처럼 여겨져 왔다.

부모와 자녀로 이뤄진 가족 유형 외에도 1인 가족, 동거 가족, 한부모 가족, 무자녀 가족 등 다양한 형태의 가족은 늘 존재해 왔고, 최근 들어 그 수는 증가하고 있다. 인구학 관점에서 한국 사회를 바라본 <정해진 미래>(조영태)에 따르면 더 이상 부모와 자녀로 이루어진 가족이 사회의 기본단위가 될 수 없다. “서울시만 떼어서 보면 2000년 서울시 전체 가구 중 4인 가구 비중이 32%였는데 2010년에는 20%로 줄었다. 통계청 예측으로는 2020년이면 17%, 2025년에는 14%로 줄어들 것이라고 한다. 과거에는 대가족이 핵가족으로 분화하면서 가구원 수가 줄었다면 이제는 결혼과 출산이 줄면서 생긴 결과다.” 나아가 2025년에는 3인, 4인 가구를 합쳐도 30%를 넘기 어려울 것이라고 전망한다.

또 결혼이 필수가 아니라 선택이라는 생각도 젊은 세대로 갈수록 강해지고 있다. 2016년 통계청이 발표한 사회조사 결과에 따르면 13세 이상 인구의 48%가 ‘남녀가 결혼을 하지 않더라도 함께 살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특히 20~30대에서는 “결혼하지 않고도 함께 살 수 있다”는 견해가 60%를 넘어섰다. 이처럼 가족 형태와 결혼관은 급변하고 있어, 다양한 형태의 가족에 대한 인식의 전환과 정책이 필요하다. 그러나 여전히 ‘정상가족’ 이데올로기는 강고하다. <이상한 정상가족>을 쓴 김희경 이주배경청소년지원재단 이사는 “사회가 근대화되면 가족이나 집단에 대한 의존도가 줄어들고 개인화도 같이 진행된다는 게 상식이다. 한국은 이만큼 사회가 복잡해지고 분화됐는데도 여전히 가족주의의 영향이 뿌리 깊다”고 말했다.

가족변화에 관련한 통계도 부족하다. 동거 가족의 경우 실태조차 파악하기 어렵다. 2016년 12월 한국보건사회연구원이 발표한 <다양한 가족의 출산 및 양육실태와 정책과제-비혼 동거가족을 중심으로>를 쓴 변수정 연구위원은 “캐나다와 미국에서는 동거가족을 인구센서스에서 조사하고 있다. 한국은 통계로 말할 수 있는 게 전혀 없다”고 지적했다. 변 위원은 “동거는 남녀가 함께 사는 것에 대한 또 다른 방법으로 미래학자들은 이를 가족 해체 혹은 붕괴가 아닌 결혼의 현대화, 다양화라고 이야기한다”며 “정책이 현실을 늦게 따라가게 되면서 사회적 약자가 생길 수 있는 상황이다. 통계와 정책적 개입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구체적 통계가 전무하다보니 정책도 미비한 상황이다. 무엇보다 ‘돌봄 사각지대’에 놓이는 가구가 늘어날 것이라는 우려다. 정상가족 이데올로기 안에서는 여전히 ‘돌봄’이 가족의 몫이다. 김희경 이사는 “부양의무제의 부작용이 많은데도 이 제도가 폐지되지 않는 이유는 아직도 가족이 부양을 책임져야 한다는 가족주의 전통이 남아 있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조영태 서울대 보건대학원 교수는 “30대 후반부터 1인 가구가 크게 증가하고 추세다. 이들이 노년이 됐을 때 가족이 해 오던 부분이 사라지는 건데 사회가 이들에 대한 건강관리를 어떻게 해줄 것인가를 준비해야 한다”고 말했다.

최근 정부 차원의 인식 변화가 조금씩 일어나고는 있다. 청와대는 지난달 28일 ‘일·가정 양립’이라는 표현을 지양하고 ‘일·생활 균형’이라는 표현을 사용하기로 했다. ‘일·가정 양립’이 부모와 자녀로 이뤄진 가족만을 ‘정상가족’으로 보는 측면이 있기에 다양한 형태의 가족을 배제할 수 있다는 지적에 따른 것이다. 또 동거 부부에게도 건강보험이나 연금 등에서 받는 차별을 완화해 법적 부부와 같은 혜택을 주는 방안도 검토 중이다. 변수정 위원은 “여전히 가족에 대한 관념은 생부와 생모, 자녀로 구성된 핵가족에 갇혀 있다. 정책도 다양한 상황을 고려해 이제는 바뀔 때가 됐다”고 말했다.

■생활동반자법이란 - 상속 효력은 없지만 동등하게 법률적 보호 받도록

“사회환경, 문화, 인식의 변화에 따라 기존 혈연 및 혼인 관계를 뛰어넘는 다양한 형태의 생활동반자 관계들이 등장하고 있다. 그러나 현행 법체계에서는 혈연 또는 혼인 외의 이유로 생활을 공유하는 관계에 대해 규율하고 있지 않아 새로운 형태의 생활동반자 관계를 형성한 사람들이 법률에 따른 보호를 받지 못하고, 기존의 가족관계에 비해 차별을 받고 있다.” 더불어민주당 진선미 의원은 지난 2014년 생활동반자관계법 발의를 준비하면서 제안 이유를 이같이 설명했다. 생활동반자 관계로 등록된 당사자 역시 기존의 가족관계와 마찬가지로 법률적 보호를 받을 수 있도록 하려는 것이 입법취지다.

생활동반자법 연구조사에 참여했던 류민희 ‘공익인권변호사모임 희망을 만드는 법’ 변호사는 “가족형태가 빠르게 변하고 있는데 돌봄 관계에 대한 선택지는 혼인제도가 유일하다. 혼인제도가 다변화된 가족 형태의 다양한 욕구를 담기는 어려울 것이다”라며 생활동반자법 발의의 필요성을 강조했다. 생활동반자법은 두 사람 간의 계약관계라는 혼인의 본질은 담되, 그에 따른 권리나 혜택은 혼인보다 가볍게 만들었다. 법적 효력으로 상대방 친족과의 인척 관계가 형성되지 않고 상속의 효력이 발생하지 않는다. 성립, 해소, 효력 면에서는 혼인보다 가볍다. 그러나 동거 및 부양·협조의 의무, 일상가사 대리권, 가사로 인한 채무의 연대책임 등 혼인에 준하는 권리와 의무를 부여한다는 점에서는 혼인과 유사하다. 이 밖에 두 사람 관계를 공적으로 인정해 주거, 세제, 공공보험, 사보험, 사후 연금 가정폭력으로부터의 보호 등에서 혼인과 차별을 겪지 않도록 한다. 생활동반자법은 아직 국회에서 발의되지 않았다. 류 변호사는 “조직화된 형태로 정책에 대한 요구가 나타나지 않는다고 해서 정책 욕구가 부족한 것은 아니라는 점을 국회와 정부가 이해할 필요가 있다”며 이에 대한 정치권의 논의를 촉구했다.

■프랑스 ‘시민연대계약’, 싱글 지위로 권리·의무 연대 부담 한국에서는 아직 생활동반자법안이 발의되지 않았지만, 프랑스를 비롯한 서구 국가에서는 이미 1990년대 이후부터 이와 유사한 시민결합(Civil union) 등록 파트너십(Registered Partnership) 등의 제도를 도입해 왔다. 현재 프랑스, 오스트리아, 스위스, 칠레, 콜롬비아, 호주, 베네수엘라, 크로아티아, 체코, 에콰도르, 에스토니아, 헝가리, 이탈리아, 슬로베니아, 미국 일부 주, 멕시코 일부 주 등이 시민결합 제도를 운영 중이며, 제도의 설계는 나라마다 조금씩 차이가 있다. 그러나 주거나 보험, 배우자 혜택, 기타 다른 사회서비스 등에서 결혼 관계와 파트너십 관계 사이에 원칙적으로 차별을 두지 않는다는 점은 유사하다. 프랑스는 1999년 11월 시민연대계약(PACS)을 입법했다. PACS가 체결되면 두 사람 사이에 재산상 효력은 발생하지만 신분 관계의 변동은 생기지 않는다. PACS가 체결되어도 싱글(single)이라는 법적 지위 자체를 유지하게 되며 혼인과 달리 혈족 및 인척 관계는 형성되지 않는다. 계약 관계의 종결 또한 이혼보다 훨씬 쉽다. PACS 신고와 동시에 연대 의무가 발생하는데 서로 경제적 부양 의무를 지고 가사와 공동의 주거에 드는 비용에 대해 연대 채무를 부담한다. 그러나 재산상 효력 또한 결혼에 비해 낮아서 유언장 없이는 법적 상속의 대상이 되지 않는다. 프랑스에서는 해마다 혼인 건수가 감소하고 있지만, PACS 건수는 증가 추세를 보이고 있다.혼외 출산은 1970년 10%대에서 2014년 60%에 육박할 정도로 증가했다.

<박송이 기자 psy@kyunghya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