핀란드 기본소득 실험 1년.."사회적 윈윈" vs "아직은"

김신회 기자 2018. 1. 2. 13: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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핀란드, 실업자 2천명 월 72만원 지급.. 英가디언 "실업자 굴욕서 해방"
실업자 대상 한계 지적.. 배짱이 양산·세금폭탄·노동력 감소 등 우려도

#핀란드 제2도시 탐페레 인근 캉가살라에 사는 미카 루수넨은 2016년 11월 편지 한 통을 받았다. 핀란드 정부가 이듬해 1월부터 2년간 매달 560유로(약 72만 원)를 그냥 준다는 내용이었다. 당시 16개월차 백수였던 그는 지난 1년간 IT(정보기술) 재교육을 받고 관련 회사의 인턴을 거쳐 정규직으로 채용됐다. 전부터 꿈꾸던 사업도 구상 중이다.

미국 경제전문방송 CNBC는 1일(현지시간) 핀란드의 '기본소득' 실험 1주년을 맞아 루수넨이 맞은 변화를 성공 사례로 소개했다.

핀란드는 세계 최초로 지난해 1월1일부터 중앙 정부 차원의 기본소득 실험에 나섰다. 실업수당을 받던 이들 가운데 무작위로 선정한 2000명에게 2년간 아무 조건 없이 매달 560유로를 지급하는 방식이다.

2000명 가운데 하나로 뽑힌 게 도통 무슨 영문인지 몰랐다는 루수넨은 1년 만에 기본소득의 열렬한 지지자가 됐다. 그는 "기본소득은 시간제 일이든, 저임금 일이든 사람들이 일을 하도록 북돋는다"며 "사회에는 일종의 '윈윈'이 된다"고 말했다.

영국 가디언도 최근 핀란드의 기본소득 실험이 "실업자들을 굴욕의 삶에서 해방시킬 수 있음을 보여줬다"고 평가했다.

◇'선택의 자유' 보장하는 기본소득…"삶의 기본 플랫폼"

기본소득(basic income)은 재산이나 소득 수준, 노동 여부와 관계없이 모든 사회 구성원에게 조건 없이 지급하는 소득을 말한다. '보편적 기본소득'(universal basic income), '보장소득'(guaranteed income), '시민소득'(citizen's income)이라고도 한다. 기본소득의 재원을 상당 부분 공기업 수익에 의존한다는 점에서 '사회적 배당'(social dividend), '시민배당'(citizen's dividend)이라는 용어도 쓴다.

기본소득은 저성장 기조 속에 소득 불균형이 심해지고 기술의 발달로 사람의 일자리가 위협받고 있는 가운데 주목받게 된 대안적인 사회보장 제도의 하나다. 누구나 기본적인 생활을 영위하는 데 필요한 소득을 보장받아야 한다는 전제에 따른 것이다. 다만 핀란드의 실험은 대상이 실업자로 제한됐다. 궁극적으로 실업수당을 기본소득으로 대체하기 위한 것이다. 기본소득이 실업수당과 비슷한 수준에서 결정된 이유다.

기본소득 지지자들은 실업수당을 기본소득으로 대체하면 실업자들의 근로 욕구가 높아진다고 주장한다. 실업수당은 제한적인 조건에서만 받을 수 있지만 기본소득에는 아무 조건이 붙지 않기 때문이다. 기본소득은 일자리를 얻어도 계속 받을 수 있다. 생활비로 써도 되고 더 나은 일자리를 찾기 위한 재교육이나 창업 비용으로 써도 된다. 이미 충분한 소득이 있는 사람들에게 기본소득은 봉사 등 사회적 참여의 자극제가 될 수 있다.

영국 BBC는 기본소득이 개인에게 '선택의 자유'를 준다고 지적했다. CNBC도 핀란드 기본소득 실험의 주요 목표 가운데 하나가 복지 시스템의 관료주의를 해소해 정책 유연성을 높이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최근 기본소득 연구에 착수한 영국 왕립예술협회(RSA)는 기본소득을 '사람들이 제 삶을 구축할 수 있는 기본 플랫폼'이라고 규정했다. 이런 플랫폼이 있어야 돈을 벌든, 배우든, 누군가를 돌보든, 사업하든, 뭐든 할 수 있다는 것이다.

마크 저커버그 페이스북 CEO(최고경영자)와 일론 머스크 테슬라 CEO 등 IT 업계 거물들도 기본소득을 지지한다. 이들은 로봇에 일자리를 잃는 이들에게 기본소득이 새 일자리를 찾는 데 필요한 재교육 기회나 창업 기반을 만들어 줄 것이라고 주장한다.

◇'배짱이' 양산·세금폭탄·노동력 감소 우려, 이민·국경 문제도

기본소득의 허점을 지적하는 이들도 적지 않다. 핀란드 참여경제 싱크탱크 파레콘핀란드의 안티 야우히아이넨 회장은 핀란드의 기본소득 실험이 가진 한계를 지적했다. 실업자를 대상으로 한 기본소득이 자칫 저임금 일자리만 늘릴 수 있다는 것이다. 그는 보편적 기본소득이 기대한 결과를 내려면 기본소득이 말 그대로 모두에게 적용돼야 한다며 기본소득이 보통선거권과 같은 것으로 인식되려면 100년은 족히 걸릴 것으로 예상했다. 사회적 저항이 만만치 않다는 말이다.

BBC는 기본소득이 오히려 놀고먹는 이들을 양산할 수 있다는 우려와 재원 마련에 필요한 막대한 세금을 둘러싼 논란이 크다고 지적했다. 핀란드노동조합연맹(SAK)은 기본소득이 아이를 낳거나 은퇴가 가까워진 이들이 근로시간을 줄이게 하는 유인책이 돼 노동력 감소를 불러일으킬 수 있다고 우려했다.

기본소득에는 이민과 국경 개방 문제도 걸려 있다. 올해 예산안에 '시민소득' 연구 예산을 담은 영국 스코틀랜드 자치정부가 기본소득을 지급하기로 하면서 영국 다른 지역은 물론 유럽 대륙에서도 기본소득을 노린 이민이 몰릴 수 있다는 얘기다. BBC는 기본소득이 정부의 통제를 강화할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고 전했다.

기본소득 실험은 캐나다 온타리오주에서도 진행 중이다. 일부 지역 저소득 계층을 대상으로 소득에 따라 차등 지급된다. 스위스는 2016년 모든 성인에게 매달 2500스위스프랑(약 300만원)을 지급하는 기본소득안을 국민투표에 부쳤는데 75%의 반대로 부결됐다.

핀란드는 이번 실험이 성공하면 모든 성인을 대상으로 기본소득 프로그램을 확대할 계획이다. 성공 여부에 대한 자체 평가는 2년간의 기본소득 실험이 모두 끝난 뒤에 나온다.

김신회 기자 raskol@m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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