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숙자도 사람 대접..무너진 삶 세워준 천국"

김찬호 기자 2018. 1. 1. 22: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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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향신문] ㆍ31년간 64만 ‘가난한 이웃’ 돌봐 온 요셉의원의 하루

지난달 14일 서울 영등포구 요셉병원을 찾은 환자들이 진료를 기다리고 있다. 권도현 기자 lightroad@kyunghyang.com

“새해에는 꼭 재기해서 요셉의원의 은혜에 보답하고 싶습니다.”

서울 영등포구에 있는 요셉의원은 ‘가난하고 아픈 이들의 천국’이라 불린다. 1987년 서울가톨릭사회복지회 부설 의원으로 설립된 요셉의원은 초대 고 선우경식 원장부터 현재 신완식 원장(68)까지 31년을 이어왔다. 정부의 지원 없이 자체 후원금만으로 운영되면서도 지금까지 약 64만명의 가난한 이들을 무료 진료했고 매년 1만여명의 사람들에게 무료급식도 제공한다.

노숙인이나 소외계층의 재활을 위해 미용, 목욕, 인문학 강의, 법률상담 서비스 등도 하고 있다. 요셉의원을 방문하는 이들은 대부분 노숙인, 쪽방촌 주민, 외국인 노동자 등 우리 사회의 약자들이다. 이들에게 요셉의원의 의미를 묻자 “무너진 나의 삶을 다시 세워준 곳”이라고 입을 모아 답했다.

지난달 14일 방문한 요셉의원은 입구에서부터 “고요한 밤, 거룩한 밤”하며 은은히 울리는 노랫소리로 가득했다. 노랫소리가 궁금해 4층 도서관으로 올라가보니 노숙인과 쪽방촌 주민 등 30여명이 핸드벨을 연주하며 합창을 하고 있었다. 김군자 이화여대 평생교육원 교수가 핸드벨의 박자를 한 음씩 짚어가며 반복해 설명했지만 어김없이 한두 박자씩 늦는 사람이 나왔다.

“거칠게 살아온 놈이 고운 음악을 연주하려니 손이 떨려부네잉.” 스스로 박자가 늦었다고 자백하고 나선 누군가의 농담에 도서관은 웃음바다가 됐다. 한동호 요셉의원 사무국장(48)은 “매주 목요일에는 음악치료 프로그램을 진행하고 있다”며 “처음에는 음악을 배우는 것을 꺼리던 사람들이 이제는 스스로 연습도 하고 서로 농담도 하며 즐겁게 한다”고 설명했다.

오후 2시가 되자 정문 앞에는 방한복이나 장갑 등도 제대로 갖추지 못한 사람들이 무료급식을 기다리며 줄을 서기 시작했다. 의원 측은 이들에게 목도리와 장갑을 무료로 나눠줬다. 한 사무국장은 “무료급식 시간이면 한꺼번에 150명 정도의 사람이 몰려 모두 건물 안으로 들일 수 없다”며 “추운 날 밖에서 떨고 있는 모습이 안타까워 방한도구라도 나눠주고 있다”고 했다.

총 4층 건물인 요셉의원 1층에는 무료급식을 하는 식당과 목욕탕, 상담실 등이 있다. 2층과 3층에는 내과, 정형외과, 치과, 약국 등 총 20여개의 진료시설이 있고 4층에는 음악치료, 영화 상영, 인문학 강의 등을 진행하는 다목적 도서관과 사무실이 있다. 병원에 상근하는 의사는 신완식 원장 1명뿐이지만 100여명의 전문의들이 요일을 정해 자원봉사를 한다. 의료진 외에도 연인원 2000여명의 자원봉사자가 청소, 안내, 무료급식 등을 돕고 있다.

쪽방촌에서 혼자 사는 유모씨(57)는 요셉의원 치과에서 틀니 치료를 받았다. 지적장애가 있는 유씨는 처음엔 자기 이름도 알지 못해 매일 다른 이름으로 자신을 소개했다고 한다. 이를 안타깝게 여긴 의원 측이 경찰과 협조해 유씨의 고향과 이름을 찾아줬다. 유씨는 “은혜를 갚겠다”며 매일 박스를 주워 판 돈을 요셉의원에 기부한다. 신 원장은 “의원을 찾는 사람들 중에는 도움을 받으면 반드시 갚아야 할 정도로 자존심이 센 이들도 많다”며 “의원 건물의 갈라진 벽 틈 사이에서 종종 돈이 발견되는데 무료로 치료를 받은 이들이 찾아와 치료비를 넣어두고 가는 것”이라고 말했다.

이만하씨(52)는 2012년 교도소에서 나와 영등포역에서 노숙을 하던 중 요셉의원을 알게 됐다. 한때 알코올 중독으로 정신병원에서 치료를 받기도 한 이씨는 요셉의원의 알코올 중독자 모임에 참여하며 금주에 성공했다. 이씨에게 요셉의원에 대해 묻자 그는 울먹이며 말했다. “노숙자도 차별 없이 사람 대접을 해줍니다. 선생님들을 보며 매일 ‘다시는 무너지지 말자’ ‘은혜에 보답하자’고 다짐합니다. 나를 따뜻하게 대해주고 다시 살고 싶게 만들어준 ‘천국’ 같은 곳입니다.” 이씨는 “새해에는 고시원을 나와 임대주택도 얻고 요양보호사 시험도 합격하는 것이 목표”라며 “앞으로 남을 도우면서 살고 싶다”고 소망을 밝혔다.

신 원장은 “새해에도 ‘가난한 환자를 돌보고 이들의 자립을 위해 최선을 다한다’는 병원 이념을 지켜나가겠다”며 “아프고 소외된 많은 사람들이 다시 세상에 뛰어들 수 있게 도울 수 있길 바란다”고 말했다.

<김찬호 기자 flycloser@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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