버려진 컨터이너선 농사실험..혁신가, 도시를 바꾼다

파리(프랑스)=이해인 기자 2018. 1. 1. 03:55
음성재생 설정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테크시티 파리]'리빙랩' 프로그램
파리 13구에 위치한 아그리쿨의 콘테이너 농업 실험실 '쿨테이너'./ 사진=이해인 기자


#파리시 남동쪽 지하철 6호션 샤발레 역에서 10분 거리에 위치한 루 루이스 위에쓰가 26번지. 나무 판자로 포장된 거대 해상 컨테이너 하나가 거리에 놓여져 있다. 언뜻 보면 버려진 대형 쓰레기 혹은 커다란 환풍기 같아 보이는 이 컨테이너는 ‘쿨테이너’(Cooltainer)다. LED(발광다이오드) 빛을 사용해 친환경 딸기가 자라나는 도심속 ‘스마트팜’이다. 쿨테이너 안을 들여다 보니 딸기들이 책처럼 다닥다닥 꽂혀있다. 그 사이로 물을 주는 파이프와 LED 전구들이 줄지어 있다. LED가 태양 빛을 대신하고, 파이프가 구름을 대신해 비를 뿌려준다. 작은 생태계를 컨테이너 안에 재현한 것.

도시 농업분야 스타트업 아그리쿨의 제안으로 시작된 컨테이너 농장은 버려지는 사실 대형 쓰레기인 해상 컨테이너를 활용해 도시에서 직접 농산물을 생산해낼 수 있는 지 여부를 실험하는 리빙랩 프로젝트다. 리빙랩 프로젝트란 미국 MIT(메사추세츠공대)에서 시작된 IT 분야 혁신모델. 과학기술로 사회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진행되는 일종의 실험이다. 17일(현지시간) 현지에서 만난 개탄 가노텔 아그리쿨 매니저는 “쿨테이너는 도시에서 친환경 에너지를 이용해 농작물을 기를 수 없을까 하는 궁금증에서 시작됐다”며 “도시에서 농작물을 기르게 되면 운반에 드는 비용을 줄일 수 있는 뿐 아니라 이로 인해 탄소배출을 줄여 환경을 보호하고 소비자들은 더 신선한 과일을 저렴한 가격에 섭취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가노텔의 꿈은 이번 실험을 통해 도심 속 콘테이너 농업이 활성화되는 것이다. 앞서 파리의 유명 백화점인 갤러리라파예트 옥상에서 농작물을 기르는 실험도 진행했다. 도심 속 남는 공간인 빌딩 옥상을 농장으로 활용하겠다는 아이디어였다. 그러나 바람이 많이 부는 기후 때문에 실패했다. 하지만 두번째 도전인 쿨테이너는 비교적 성공적이다. 실제 딸기가 잘 자랐고 최근에는 레스토랑을 대상으로 품평회도 마쳤다. 수개월 내 인근 레스토랑에 납품도 시작할 계획이다.

(왼쪽부터)쿨테이너 내부에 딸기가 재배되는 모습과 수확하는 모습, 실제 재배된 딸기들.


파리에서는 이 같은 리빙랩 프로그램이 올 들어서만 100개 가량 진행되고 있다.
도시 전체가 하나의 거대한 실험실인 셈이다. 최근 가장 큰 호응을 받은 건 미니 전기 밴을 활용한 배달이다. 파리 시내는 대부분의 도로가 1차선 일방통행이다. 물품 수송을 위해 지방에서 온 대형 트럭들이 도심으로 진입하면서 많은 교통체증을 유발한다. 덩치가 큰 만큼 빨리 지나다니지 못하고 물품을 내리기 위해 잠시 정차라도 하면 뒤에 있는 차들은 하역 작업이 끝날 때까지 꼼짝없이 기다려야 한다. 이를 해결하기 위해 오토바이보다 살짝 큰 전기 밴을 이용해 물건을 수송하는 실험을 했다. 파리시는 미니 전기 밴 프로젝트는 3개월 가량의 테스트 기간을 끝내고 실제 도입하는 방안을 긍정적으로 검토하고 있다. 도심 교통 체증 해소에 도움이 되고 환경도 보호할 수 있다는 판단에서다.

파리의 리빙랩 프로그램은 두 가지 측면에서 큰 주목을 받고 있다. 하나는 도시 자체가 하나의 문화유산처럼 여겨져 고도제한 등 개발이 까다로운 파리에서 각종 파격적인 실험이 진행된다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파리시가 출자한 산하기관이 직접 프로그램을 주관한다는 점이다. 파리는 다양한 문화예술을 도시 자체에 품고 있다. 지하에 수백~수천년 전 만들어진 고대 무덤들이 위치해 땅을 파는 것조차 자유롭지 않다. 하지만 최근 혁신가들에게는 도시 전체를 하나의 실험실로 내어주고 있다. 앞서 바스티유에 200년 전 해당 거리 모습을 볼 수 있는 VR(가상현실) 머신 설치를 위해 돌을 깨 땅에 박는 실험도 허가했다. 프랑스 정부의 기술 혁신에 대한 갈증을 엿볼 수 있는 대목이다.

이들 프로젝트의 중심에는 ‘파리앤코(Paris&Co)’라는 정부 산하기관이 있다. 파리앤코는 파리시가 출자한 기관으로 리빙랩 프로그램인 ‘어반랩’과 스타트업 인큐베이팅을 진행한다. 파리의 ‘지속 가능한 발전’을 위한 솔루션을 찾아내는 게 파리앤코의 미션이다. 이를 위해 혁신가들이 아이디어를 펼칠 수 있도록 정부를 설득하고 대기업들의 관심을 이끌어내는 활동을 하고 있다. 혁신가들의 대변가인 셈이다. 다른 나라에서는 찾아보기 힘든 독특한 모델이다.

캐린 비다트 파리앤코 공동최고경영자./ 사진=이해인 기자


캐린 비다트 파리앤코 공동최고경영자(Co-CEO)는 “직접 도시에서 실험이 이뤄져야만 사업 가능성을 확인하고 고쳐야 할 점 등을 정확히 알 수 있다”며 “파리의 지속 가능한 발전을 위한 솔루션을 찾아내는 게 우리의 미션”이라고 말했다.
파리앤코는 매년 아이디어 대회를 열고 혁신가를 선발, 어반랩 프로그램을 진행한다. 내년도 사업은 1월12일까지 접수를 받은 뒤 어반랩 프로그램 참여 스타트업을 선발할 예정이다. 어떠한 참여 조건도 없지만 도심 내에서 환경오염과 물류, 라이프스타일, 재활용 4가지 카테고리 안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프로젝트여야 한다.

이제껏 어반랩 프로젝트 과제가 실험 후 실제 파리 시내에 적용된 경우는 총 14건. 바스티유 지역에서 테스트했던 스마트 안내 시스템이 대표적이다. 현재 파리 전역에 설치된 이 시스템에서는 버스나 인근 교통 정보를 비롯해 주변 맛집, 가게는 물론 축제 정보, 심장마비 등 응급 상황 시 필요한 대처 요령까지 많은 정보가 집약돼 있다. 스마트폰 이용자가 많은 만큼 휴대폰 충전 단자도 지원하고 휠체어에 앉은 장애인들도 쉽게 사용할 수 있도록 낮은 위치에 마우스 패드도 추가 설치돼 있다.

파리시와 파리앤코는 최근 더 많은 실험들이 이뤄질 수 있도록 파리 시내 13구역와 19구역에 ‘어반 이노베이션 디스트릭트’를 조성했다. 문화재 훼손 가능성이 낮은 신개발 지역을 어반랩 전용 실험실로 지정한 것. 이들 구역이 상대적으로 도로가 넓고 많은 기업들이 위치해 있으며, 유동인구가 많아 실험에 적합하다는 설명이다.

비다트 CEO는 “어반랩은 혁신이 일어나는 과정을 지켜보면서 일반인들도 자연스럽게 관심을 갖게 만드는 장점도 있다”며 “한 명의 시민이기도 한 혁신가의 손에서 창조된 새로운 사업들이 파리 뿐만 아니라 세계로 뻗어나가 지구를 변화시키는 게 궁극적 목표”라고 말했다.

한 파리지앵이 파리 오페라역 인근에 설치된 도시 안내 장치를 이용해 버스 도착정보와 주변 정보를 살피고 있다. 이 장치는 파리앤코의 리빙랩 프로그램 '어반랩'에서 실험된 후 실제 파리시에 도입됐다./ 사진=이해인 기자

파리(프랑스)=이해인 기자 hilee@mt.co.kr

<저작권자 ⓒ '돈이 보이는 리얼타임 뉴스' 머니투데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Copyright © 머니투데이 & mt.co.kr,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 기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