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재파일] 가상화폐, 블록체인, 채굴.. 2018년 당신의 마음에게

최우철 기자 2017. 12. 31. 09: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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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뉴스는 상식을 파생한다. '채굴'도 그렇다. 탄광보다 가상화폐가 떠올라야 상식이 있는 축에 낀다. 채굴은 영어 명사 'mining'의 번역어다. 의미가 분명한 기존 단어를 차용할 때는 이유가 있다. 이름을 붙인 누군가의 의지가 개입된 거다. 그는 광산에서 무언가 가치 있는 걸 캐내는 작업을 연상시키고 싶었을 것이다.

기자가 가상화폐 채굴의 정의를 물고 비트는 데는 이유가 있다. 본래 원리와 차용된 이름 사이에 간극이 꽤 크기 때문이다. 인위적인 건 대개 상업적이다. 이 긍정적이고 생산적인 느낌의 외래 신조어는 좀 차갑게 봐야 한다.

물론 비트코인 같은 가상화폐는 혁명적인 발명품이다. 이유는 단 하나, 기존 은행을 완전히 소멸시킬 수도 있는 잠재성을 지녔기 때문이다.

모든 가상화폐는 기존 은행 금융망을 거치지 않고도, 직접 주고받을 수 있다. 이 장점 덕에 거래 방식의 혁명으로 불린다. 은행은 본래 돈을 10원만 송금해도 수수료를 떼지 않으면 몸이 근질거리는 곳이다. 언제 누가 다른 누구에게 얼마를 보냈다는 기록을 남겨주는 대가다. 거래 기록도 보관해 준다. 기록은 장부에 하고 장부는 자기네가 망하기 전까진 보관한다. 이 모든 독점적 서비스의 사용료로 떼는 게 수수료다.

그래서 은행은 거래 장부와 보관 능력이 생명이다. 그러나 가상화폐는 존재가 곧 장부다. 은행에게 죽음이 닥쳐도 가상화폐는 삶이 있다. 그때그때 거래가 있을 때마다, 장부를 복사해 모든 가상화폐 사용자에게 뿌려 버리기 때문이다. 뿌릴 수 있으려면 연결돼 있어야 한다. 장부 연결망 즉, 영어로 블록체인 기술 위에서 존재하는 것이다. '블록체인 기술이란 장부기록 기술이다.'

블록은 수학으로 만든다. 블록은 암호를 풀어야 생성할 수 있다. 모든 가상화폐가 그렇다. 암호는 무엇으로 풀 수 있는가? 연산기계 즉, 컴퓨터가 할 수 있다. 명령이 실행될 때 컴퓨터는 혼자서 암호를 풀고, 블록을 만든다.

가상화폐는 자립적인 세계다. 블록도 사실상 스스로 만든다. 남의 손을 빌려서 만들어지게 한다고 표현하는게 보다 정확하다. 보상을 주기 때문이다. 블록을 만들면 가상화폐 자체를 주도록 돼 있는 것이다. 보상을 원하면 알아서 컴퓨터를 장만하고, 켜고 명령하게 만든다. 이게 채굴이다. 컴퓨터 주인은 '채굴꾼'이다.

블록체인 기술이 적용된 신종 거래수단(혹은 방식). 이것이 가상화폐다. 바꿔 말하면 블록체인 기술은 가상화폐 자체와는 아무런 상관이 없다는 얘기다. 가상화폐는 그저 블록체인을 통해 존재할 수 있는 수많은 발명품 가운데 하나다. 그리고 아직 이렇게 인기 있는 발명품이 나오지 않았을 뿐이다. 블록체인 기술의 발전과 가상화폐의 투자 가치를 혼동하는 건 그래서 위험하다.

심연을 너무 오래 보고 있으면, 심연이 그대를 바라보고 있다. 니체가 말했다. '보는 자'가 '주체'다. 보여 지는 쪽이 '객체'다. 무엇이라도 너무 심각하게 빠져들다간, 스스로 객체로 전락할 수 있다. 객체가 된 사실조차 모를 수도 있다. 주체가 권력을 휘두른다. 객체는 구경꾼이다.

현란한 시세 등락 곡선만 보고 종일 휘둘린다. 2017년 당신 주변 가상화폐 투자자들의 모습이 아니라고 말할 수 있는가. 투자 정보가 곡선을 그리는 게 아니었다. 곡선이 매 순간 심리를 만들었다. 심리는 경계가 희미했다. 투자인가 투기인가, 종이 한 장 차. 아니었나?

가상화폐도 심연이란 게 있을지 모른다. 그것을 주의 깊게 들여다보자. 내재가치란 없다. 심지어 전기일 뿐이다. 블록체인과 한 몸은 아니다. 교환된다. 그래서 교환가치는 있다. 쓰임은 아직 모른다. 사용가치란 얼마가 될지 가늠할 수 없단 얘기다. 가치가 완벽하지 않다. 2018년에도 그럴 것이다.

새해다. 다시 가상화폐를 보자. 단, 보는 자의 자리에서.

사족. 포털 영어사전에서 'mining'을 검색하니 본래 뜻이 세 개였다. 채굴, 광업 그리고 '지뢰 부설'. 언젠가 터지라고 만든 걸 '지뢰'라고 정의한다면, 그 의미가 깊고 함축성이 있다. 

최우철 기자justrue1@sb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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