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성전용당구장 르포]"당구치다 짜장면 시켜 먹어요. 호호"

2017. 12. 31. 0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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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구 100점대 50대 주부들 "호기심으로 시작했는데 이젠 취미"
파란색 핑크색 장갑에.. 바리바리 싸온 간식먹으며 수다도
남자 친구나 가족 외엔 '남자 출입금지'..예외도 있어
‘12‧3 당구장 금연’ 이후 여성 및 청소년들의 새로운 취미로 당구가 떠오르고 있는 가운데 ‘여성, 청소년’ 전용 당구장까지 등장했다. 사진은 서울 서초구 양재동에 위치한 여성 및 청소년 전용 "블루오션당구클럽"의 송년기념 당구대회 모습. 한 여성회원이 샷을 준비하고 있고, 다른 여성 회원이 그 뒤에 앉아 경기를 지켜보고 있다.
[MK빌리어드뉴스 이상연 기자]“당구장 짜장면이 버킷리스트 중 하나였어요”

담배를 이유로 당구장을 꺼려하던 여성, 청소년들이 ‘12‧3 당구장 금연’ 이후 새로운 취미로 당구를 주목하고 있다. 이 가운데 ‘여성, 청소년’ 전용 당구장까지 등장했다.  

지난 27일 오후 6시, 서울 서초구 양재동 ‘블루오션당구클럽’. ‘여성‧청소년 전용’이란 문구가 크게 적힌 입구를 통과하자 한 쪽 벽에 걸린 포스터가 눈길을 끈다. 자넷리, 차유람 등이 여성당구스타들이 커다랗게 담겼다. 그 옆엔 카페를 연상시키는 ‘티타임’용 테이블도 자리했다.

“지금부터 바빠질 시간대에요” 당구장 대표 유성모(62)씨가 분주해졌다. 분홍색, 빨간색, 파란색 등 알록달록한 그립의 당구큐를 손질하고, 작은 크기로 특별 주문제작한 여성용 당구장갑을 가지런히 정리했다.  

이윽고, 손님들이 하나 둘 입장했다. 그간 당구장에서 찾아보기 힘들었던 중년 주부들이 대부분이었다. 한 무리의 남성들은 “남자는 여성이 초대해야 입장 가능하다”는 설명을 듣고 발길을 돌려야 했다.

주부 당구동호인들의 당구장 첫 일과는 수다였다. 서로의 근황을 묻고, 자녀 이야기를 나누거나, 새롭게 배운 당구기술 등 이야기로 몸을 풀었다. 또 차를 나누며 추운 겨울날씨에 언 몸을 녹였다. 한동안의 ‘몸풀기’가 끝나자 이들은 자연스럽게 큐를 들고 테이블 앞에 섰다. 그리곤 간식메뉴를 정하기 시작했다. “지난번처럼 오늘도 짜장면?”

  지난 5월, 오픈한 블루오션당구클럽의 흔한 풍경이다. 현재 하루평균 평일 20~30명, 주말 20여명 수준의 여성 및 청소년들이 이곳을 찾는다. 20대 여성이 남자친구를 데려오거나, 주부가 남편과 자녀 등 가족전체를 데려오는 경우도 있다는 게 유성모 대표의 설명이다.

클럽 인근의 영동중학교 스포츠동아리와 탐사동아리 학생 30여명도 이곳을 통해 당구를 처음 접했다. 담당 교사의 인솔아래 현재까지 블루오션당구클럽에서 총 5회 당구수업이 진행됐다.

유성모 대표는 “3년 전 (직장생활)정년퇴직 후, 수십년만에 당구장에 갔는데 당구가 전국민적인 스포츠로 급부상하고 있음에도 여성, 청소년들은 보기 힘들더라”면서 “제가 그들(여성‧청소년)을 당구장으로 유입하는데 힘을 보태고자 이 클럽을 열게 됐다”고 말했다.   

블루오션당구클럽 요금은 정액제 중심이다. 하루 1만원, 일주일 4만원, 한 달 12만원 등이다. 정액이 아닌 일반 요금은 10분당 1,500원씩이다. 월 정액 회원에겐 평일 중 클럽에 상주하는 코치에게 언제든 무료레슨 받을 수 있는 기회가 주어진다.

당구장 제1호 회원인 추미애(59)씨는 “평소 테니스 등 스포츠를 즐기는 편이지만, 당구는 남성들의 전유물처럼 여겨졌기에 꺼려졌던 것이 사실이다”면서 “하지만 여성, 청소년 전용 당구장이 직장 근처에 생겨 호기심에 등록했고, 이제 당구가 저의 가장 큰 취미활동이 됐다”고 전했다. 또한 “지금 4구 수지 100점인데, 올해 안으로 120점까지 올리려고 매일 당구장에 오고 있고, 자기전엔 당구 동영상 보느라 새벽 1~2시에 자는 일도 흔하다”며 웃었다.

"뱅킹 하겠습니다" "블루오션당구클럽" 유성모 대표(맨 오른쪽)가 4구대회 경기에 앞서 뱅킹 시작을 알리고 있다. 뱅킹을 앞두고 수구를 바라보는 여성 회원들의 눈빛이 매섭다.
추미애씨는 기자와의 인터뷰가 끝나자마자 “빨리 연습해야 한다”며 테이블로 달려갔다. 기자가 방문한 이날은 클럽 회원 대상 ‘송년회 겸 4구대회’ 날이었다. 4구 수지 100~120점 회원 6명이 토너먼트로 대결을 펼쳐 우승자를 가리는 방식이다.

여성들 사이에 ‘청일점’ 이현수씨가 눈에 띈다. 50대 직장인인 그는 “시끄럽지 않고, 초보자들도 기초부터 실력을 쌓아갈 수는 이곳 분위기가 마음에 들어 (유성문 대표에게)사정해 월 정액 회원가입 조건으로 유일한 남성 회원이 됐다”고 전했다.

바리바리 싸온 간식거리를 나누는 등 훈훈했던 당구장 분위기는 대회 시작과 함께 순식간에 바뀌었다. 팽팽한 긴장감이 고조된 것. 이때 대회 심판인 유성모 대표에게 한 회원이 제안을 했다. 공을 테이블 끝에 놓고는 “우리도 이거 해요”라며 말했다. 뱅킹이었다.

선수들의 진지한 표정속에 대회 첫 번째 경기가 펼쳐졌다. 클럽의 모든 눈들이 테이블 위 볼들의 움직임을 정신없이 쫓았다. 간혹 멋진 2쿠션, 3쿠션 샷이 터지면 함께 환호했고, 경기를 앞둔 회원들은 남은 테이블에서 연습을 하며 전열을 불태웠다.

유성모 대표는 “현재 회원수는 당초 목표였던 평일 50명보단 적은 편이지만, ‘소셜 액티비티 플랫폼’(새로운 사회활동을 고객들에게 이어주는 온라인 서비스)과의 제휴로 110여명의 여성들이 저희 클럽에서 당구를 처음 접해보는 등 나름 의미있는 행보를 걷고 있다”면서 “앞으로 여성뿐만 아니라 학생 회원 유치에도 더욱 전념할 것”이라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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