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쓸신세]"임신한 여학생은 모두 체포하라"

이경희 2017. 12. 30. 0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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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고보면 쓸모있는 신기한 세계뉴스]
미국~아프리카, 10대의 임신과 결혼

━ 10대 출산 후 복학 금지한 탄자니아

13살에 결혼해 6개월짜리 아기 엄마가 된 시에라리론의 소녀.[사진=UNICEF]
"임신한 여학생은 모두 체포하라." 이달 초 탄자니아 북부 므완자 지역 당국은 교육구 위원들에게 이런 명령을 내렸습니다. 임신한 여학생을 체포해 범법자(임신시킨 남자)가 누구인지 법정에서 증언하도록 본보기를 보임으로써 다른 여학생들의 성행위를 막아야 한다면서입니다. 존 몽겔라 지역위원장은 교육 관계자들과 만나 "임신한 여학생은 임신시킨 사람 이름을 말하지 않는 경향이 있다"면서 "법정 증언이 필요한 상황"이라고 말했습니다.

마이클 루골라 므완자 교육담당관은 임신으로 학교를 떠나는 학생들 때문에 전국 초등학교 학업 성취도가 하락한다고 지적했습니다. 올해에만 33명이 임신 때문에 학교를 떠났다는 겁니다. 그렇다고 해도 임신한 학생을 체포하고 강제로 범인 이름을 증언하도록 한 결정은 인권의 기본 원칙을 위반하는 것이라고 아프리카 전문 매체 페이스 투 페이스 아프리카는 지적합니다.

탄자니아에선 2002년 임신한 여학생은 퇴학시키고 복학을 금지하는 법률이 제정된 바 있습니다. 지난 6월 존 마구풀리 탄자니아 대통령은 존폐 논란이 뜨거웠던 이 법안을 존속시키기로 결정했습니다. 그는 "수업 도중에 '애가 우니까 젖 먹이고 올게요'라고 할 것 아니냐"면서 "복학을 허용하면 다른 소녀들에게 나쁜 영향을 미칠 것"이라고 주장했습니다. 더불어 "여학생을 임신시킨 사람은 30년간 감옥에 가둬야 한다"고도 주장했습니다.

하지만 마구풀리 대통령은 막상 가해 남성에게는 가혹하지 않았습니다. 최근 아동 강간범 두 명을 사면했거든요. 사면 대상은 탄자니아의 인기 가수 응구자 바이킹(별칭 바부 세야)과 그의 아들 존슨 응구자(별칭 파피 코차)인데요. 두 사람은 2003년 6~8세 초등학생 10명을 강간한 혐의로 2010년 종신형을 선고받았지만 겨우 7년여 만에 가석방됐죠.

━ 10대 부모 일상 보여주는 리얼리티 쇼
아빠가 된 10대. 미국 케이블 TLC 채널의 리얼리티 쇼 '언익스펙티드'의 주인공 렉서스(15)의 남자친구 셰이든.
10대가 임신을 하면 인생이 꼬이는 건 만국 공통인 듯하지만 그걸 대하는 태도는 달라 보입니다. 미국 케이블 채널 TLC 방송은 '언익스펙티드(Unexpected·예기치 않은)'라는 리얼리티 쇼를 지난 가을부터 온라인에서 방영하고 있습니다. 갑작스레 엄마가 된 10대 소녀 셋과 부모들의 삶을 보여주는 프로그램인데요.

리얼리티 쇼의 출연자 중 한 팀인 릴리 베넷(17)과 제임스 케네디 커플은 9월에 딸을 낳은 뒤 학교를 그만두고 부모로서 책임을 다하려 애씁니다. 제임스는 풀타임으로 일하고, 릴리는 아이를 돌보며 검정고시를 준비하고 간호학교에 진학할 계획을 세우고 있습니다. 릴리는 인스타그램 계정에 다음과 같은 글도 올렸습니다.

"어린 엄마가 된다는 건 우리가 조금 일찍 만났다는 뜻이지만, 또한 너를 좀 더 오래 사랑하게 된다는 의미이기도 해. 너는 내 미래를 빼앗아가는 게 아니라 새로운 미래를 주고 있는 거야." 릴리 커플은 유튜브에서 육아 채널 '릴리와 아기'를 만들어 엄마로서의 일상을 올리고 있습니다. 하지만 이 채널에서 릴리는 10대들에게 다음과 같이 조언합니다.

"준비되지 않았다면, 하지 마. 그리고 누군가 (나를) 따라 하려는 걸 알고 있는데, 아예 시도조차 하지 마." ━ 74세 신랑과 14세 신부, 미국의 실화

TLC 채널은 10대 임신과 계획하지 않은 임신을 방지하자는 전국 단위 캠페인 '파워 투 디사이드(Power to Decide)와 손잡고 쇼를 시작했다고 합니다. 이 단체에 따르면 미국의 10대 출산은 꾸준히 줄었지만 아직도 한해 21만 명, 10대 소녀 100명 중 2명이 매년 임신합니다. 여학생의 자퇴 원인 3분의 1이 임신 혹은 출산이고요. 10대 엄마 40%만 고교 졸업장을 받고, 겨우 2%만 30세 이전에 대학을 졸업합니다.

임신에서 그치는 게 아니라 아예 결혼하는 10대들도 많은데요. 아동 결혼 근절 캠페인 '언체인드 앳 라스트'의 집계에 따르면 2000년부터 2015년까지 미국에서 만 18세 미만 미성년자 20만7468명이 결혼했습니다. 비록 2000년에 2만3583명에 비해 2010년 9247명으로 줄어들긴 했지만요. 대부분 어린 여성과 만 18세 이상 성인 남성 간 결혼입니다.

겨우 10살짜리 신부도 3명 있었고, 60세 이상 배우자와 결혼한 경우도 31명에 달했습니다. 나이 차가 가장 많은 커플 기록은 74세 신랑과 14세 신부였습니다. 어떻게 이게 가능할까요.

미국 대부분의 주에서 만 18세를 결혼 가능 연령으로 제한하지만 모두 예외 규정이 있습니다. 부모의 동의나 판사의 허락을 받으면 미성년자도 결혼할 수 있는 거죠. 연령 제한이 아예 없는 주도 26개에 달합니다. 기후변화 때문에 어린 딸 시집 보내는 부모들

아프리카 수단의 13살 소녀 엘리자는 35세 남편과 강제로 결혼했다. 아버지는 소를 받고 딸을 팔아넘겼다. 오랜 내전과 심각한 식량난이 조혼을 재촉한다. [AP=연합뉴스]
미국의 사례는 선진국도 10대 임신과 아동 결혼의 문제에서 자유롭지 않다는 걸 보여주고 있는데요. 형편이 어려운 후진국은 당연히 더 열악합니다.

기후변화 때문에 어린 신부가 늘어난다는 보고도 있습니다. 유러피언 저널리즘 센터의 기금 지원을 받은 '태양의 신부(Bride of the Sun)' 보도에 따르면 그렇습니다.

지구 온난화로 아프리카에 가뭄과 홍수가 늘고 기후 예측이 어려워지면서 농가 소득이 크게 줄어들었습니다. 빈곤에서 벗어나기 위해 어린 딸을 신부로 팔아 입을 줄이는 경우는 반대로 늘었습니다. 그리고 아홉달 뒤면 그 소녀는 작열하는 태양 아래 갓 태어난 아기를 품에 안은 엄마가 됩니다.

아프리카 말라위에서만 기후 변화의 영향으로 150만명이 어린 신부가 된 것으로 추정됩니다. 이를 조혼율이 높은 주변 9개 아프리카 국가에 대입하면 18세 미만 소녀 4100만명 중 1800만 명이 18번째 생일 전에 결혼하리라는 계산이 나옵니다. 기후 변화로 인해 이른 결혼을 택해야 하는 '어린 신부'가 대거 탄생했다는 것이 '태양의 신부' 프로젝트의 진단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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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경희 기자 dungle@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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