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hy] 체한 줄 알고 온 60대, 진찰해보니 심장이 '시한폭탄'

송태호 송내과의원 원장·의학박사 2017. 12. 30. 03: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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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태호의 의사도 사람]
의사와 상의없이 혈압약 끊곤 싱겁게 먹고 운동한다며 자랑
"빨리 응급실 가라" 해도 꾸물

60대 남자가 며칠 전부터 자꾸 어지럽다며 보호자와 함께 병원에 왔다. 환자는 보호자의 참견을 못 견디고 자기 할 말만 하는 전형적인 가부장적 사람이었다. 몇 년 전 고혈압 진단을 받고 약을 복용하다가 2년 전쯤 운동과 식이요법을 병행하면서 약을 끊었다고 했다. 아침에 잰 혈압은 110/70㎜Hg 정도였고, 높아봐야 150/90㎜Hg 정도라고 했다. 꾸준히 운동하고 싱겁게 먹고 있으며 아직 특별한 일이 없다고 자랑 섞어 말했다.

며칠 전에 체한 것 같은 증상이 있더니 어지럼증까지 느껴져 병원에 오긴 했다며 아마도 체기가 안 내려갔거나 달팽이관 이상일 것이라고 스스로 진단까지 해온 상태였다. 혈압을 쟀는데 140/90㎜Hg로 약간 높은 상태였다. 그런데 청진기를 통해 들리는 맥박이 매우 느렸다. 맥박 횟수는 심장 박동 수이기도 하다. 정상은 1분에 60~80회 정도 뛰며 이보다 높거나 낮다면 심장에 문제가 생긴 것일 수 있다. 대충 들어봐도 1분에 40회 정도로 세계적인 마라톤 선수나 가능한 수치다. 환자에게 "혹시 마라톤을 열심히 하느냐"고 물었으나 그건 아니란다. 이쯤 되면 덜컥 겁이 나면서 맥박이 느려지는 심장 질환이 주르륵 머릿속을 지나가게 된다.

지체 없이 심전도를 찍어 보았다. 매우 심각했다. 심장은 전기신호로 움직이는 기계 장치다. 심방에서 시작된 전기신호가 심실로 전달되지 못해 심실이 어쩔 수 없이 천천히 뛰는 '완전 방실 차단'이었다. 게다가 심장 근육에 피가 가지 못하는 허혈성 이상(심근경색에서 주로 보이는 소견)도 보였다. 멀쩡히 걸어 들어와서 보호자와 다투기까지 했던 환자가 느닷없이 분초를 다투는 응급 환자로 판명된 것이다. 며칠 전 체한 증상은 심근경색이었을 것이고 심장 혈관이 막히면서 전기신호를 전달하는 신경 줄이 죽어 부정맥이 발생했을 것이다. 지금 내 앞의 환자는 언제든 심장 박동이 멈추는 심장마비 환자가 될 수도 있었다.

환자와 보호자에게 이런 일들을 설명하고 큰 병원에 즉시 가야 한다고 했다. 뭘 타고 왔느냐 물으니 걸어왔단다. 119를 불러주겠다고 했더니 119는 싫다면서 집에 잠시 들러 직접 운전하고 병원에 가겠다고 한다. 놀란 나는 절대로 걷지 말고 택시를 빨리 잡아타고 근처 큰 대학병원 응급실로 가서 치료받으라고 신신당부를 했다.

환자는 어지럼증이 있지만 내과에 온 덕에 심장 이상을 발견할 수 있었다(게다가 심장 전문의를 만났다). 청진은 기본적인 진찰 방법이지만 청진하지 않는 병원도 많기 때문이다.

한편 이 환자가 혈압약을 끊지 않고 꾸준히 복용하면서 운동과 식이요법을 했더라면 이런 상황까지 오지 않았을 수도 있다. 고혈압 환자들은 자기 혈압이 140/90㎜Hg보다 낮으면 대개 만족하는 경향이 있다. 하지만 이 수치는 성적으로 따지자면 낙제를 겨우 면한 수치다. 누구나 우등을 목표로 공부한다. 환자들도 마찬가지다. 120/80㎜Hg보다 낮은 혈압 수치를 목표로 노력해야 한다. 그 과정에서 제일 중요한 것이 바로 약물치료다. 약물치료 없이 식이요법과 운동요법을 하는 것은 코스 요리에서 물만 마시고는 코스 전체를 먹었다고 하는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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