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

인구 줄면 수요도 줄어든다는 착각에 대하여

김규식 2017. 12. 29. 15: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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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구가 줄어들면 경제가 망할까 / 요시카와 히로시 지음 / 최용우 옮김 / 세종서적 펴냄 / 1만4000원
직관은 때때로 논리를 배신한다. 학술 용어와 일상 용어가 혼재할 때 이런 일이 주로 발생한다. 대표적인 사례가 바로 수요다. 일상생활에서 수요는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원하는지 머릿수를 나타낸다.

다이아몬드 반지를 예로 들어보자. 오래도록 빛을 잃지 않는 다이아몬드는 사랑의 상징이다. 모든 연인이 변치 않는 사랑을 약속하며 다이아몬드 반지를 건네는 꿈을 꾼다. 다이아몬드 수요는 지극히 많지만 공급이 워낙 적어 높은 가격을 형성한다. 경제원론 첫 시간에 배우는 이른바 수요와 공급의 법칙이다.

물론 다이아몬드 사례는 수요와 공급의 법칙에 부합한다. 하지만 조금만 깊이 들어가면 경제 용어와 일상 용어에 괴리가 발생한다. 단순히 많은 사람이 원한다고 수요가 많은 것은 아니라는 의미다. 같은 제품도 비싸게 산다면 수요가 늘어날 수 있다.

이를테면 일식 고급 라면과 분식집 라면이 있다고 치자. 어쨌든 한 끼 식사인 것은 마찬가지니 라면 하나당 수요는 한 명일 것이다. 여기까지는 직관적으로 이해하기가 쉽지만 본질로 들어가면 완전히 달라진다. 일식 고급 라면 가격이 분식집 라면보다 두 배 비싸다면 수요는 두 배다. 물론 가격이 높다고 사회 전체적으로 팔리는 라면 그릇이 줄어들지 않는다는 전제 아래서다. 다시 말해서 경제학에서 수요란 머릿수와 금액을 곱한 총액 개념이다. 단순히 많은 사람들이 원한다고 수요가 많은 것이 아니다. 오히려 적은 사람이 원해도 엄청나게 비싸게 팔리면 경제학적 수요가 많을 수 있다.

요시카와 히로시 일본 릿쇼대 교수가 펴낸 저서 '인구가 줄어들면 경제가 망할까'는 이 지점을 파고든다. 흔히 인구가 줄어들면 경제 규모가 쪼그라든다고 이해하기 쉽다. 일상 용어와 경제 용어를 혼동한 결과다. 냉정히 말해서 기업들은 가난한 소비자가 원하는 제품에는 관심을 꺼야 한다. 많은 사람이 소비해도 가격을 높게 매길 수 없다면 수요 총액이 낮기 때문이다. 적게 팔려도 부자들이 비싼 값으로 구입한다면 전자보다 수요 총액이 되레 클 수도 있다.

일본 경제학자 요시카와 히로시는 인구가 늘어가는 속도에 한계가 있다면 생각을 달리해야 한다며 시종일관 혁신이 수요를 만든다고 강조했다. 사진은 탑골공원 인근에서 노인들이 무료 식사를 기다리고 있는 모습. [매경DB]
국가 전체적으로 봐도 마찬가지다. 흔히 인구가 줄면 수요 총량이 줄어드는 것으로 오해하곤 한다. 물론 전체 머릿수가 줄면 수요 총액을 늘리기 쉽지 않다. 그렇다고 국가 총수요가 줄어든다고 단정할 수만은 없다. 경제가 성장해 국민의 지갑이 불어나는 속도가 더 빠르면 전체 구매력이 늘 수도 있기 때문이다. 인구가 줄어들면 경제가 망한다고 단정할 수 없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심지어 아이를 적게 낳아도 사람들이 오래 살면 절대적 인구는 늘어난다. 저출산·고령화로 경제가 어렵다는 논리는 한쪽 측면만 보고 하는 얘기다. 진짜 문제는 따로 있다. 소비자가 비싼 값을 주고 살 제품이 사라지는 것이다. 라면 얘기로 돌아가 보자. 물론 사람들이 많아 분식집 라면을 많이 먹는다고 해도 수요는 늘어날 수 있다. 하지만 인구가 늘어나는 속도에 한계가 있다면 달리 생각해야 한다. 고급 일식 라면을 만들어 사람들이 비싸게 사서 먹으면 수요는 더 빠르게 증가할 수 있다. 비싼 값으로 라면을 팔아 식당 주인이 돈을 많이 벌고 그 돈으로 또다시 좋은 제품을 사면 수요가 선순환한다.

반면 고급 일식 라면집에서 세금을 거둬 국민에게 푼돈을 쥐여주고 분식집 라면을 사먹게 한다고 가정해 보자. 분식집 주인은 싼 제품을 많이 팔아야 이윤을 남기기 때문에 가격경쟁에 돌입할 수밖에 없다. 인스턴트 라면 끓이는 기술이야 별다르지 않다. 분식집 주인들은 옆집보다 싸게 팔아야 하기 때문에 이윤율이 줄고 결국 돈은 많이 벌지 못한다. 아무리 많이 팔아도 가난을 면치 못한 분식집 주인은 결국 똑같은 과정으로 싸게 파는 제품을 살 수밖에 없다. 수요가 악순환하는 구조다.

요시카와 교수는 저서에서 시종일관 혁신이 수요를 만든다고 강조한다. 조지프 슘페터 이후 수없이 반복했던 얘기다. 식상할 법도 하지만 여전히 혁신은 찬밥이고 분배를 요구하는 목소리가 높다. 경제 전체가 악순환에 빠지는 것은 아닌지 돌아볼 때다.

[김규식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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