朴 정부, '위안부 합의 연내 타결' 고집했던 이유는..
<앵커>
어제(27일) 위안부 합의 검증 결과를 보면 박근혜 정부가 왜 연내타결에 그렇게 집착했을까 하는 의문도 생깁니다. 왜 굳이 시한을 정해 협상력을 스스로 약하게 했던 건지, 그 이유는 우리의 갈팡질팡했던 외교 정책에서 찾아볼 수 있습니다.
유성재 기자가 분석했습니다.
<기자>
박근혜 전 대통령은 취임 초, 위안부 문제에 강경했습니다.
[박근혜 前 대통령 (2013년 3·1절 기념식) : 가해자와 피해자라는 역사적 입장은 천 년의 역사가 흘러도 변할 수 없는 것입니다.]
중국과 대일 역사 공조라는 평가가 나올 정도였습니다. 그런데 2014년 즈음 상황이 바뀝니다.
한·일 관계 악화에 대한 미국의 부담이 뚜렷해집니다. 그 상징적인 장면이 2014년 3월 한·미·일 정상회담입니다.
한·미·일 공조로 중국을 견제하려던 미국으로서는 한일 관계를 중재할 필요성이 절실해진 겁니다.
실제 한·일 위안부 협상도 이 직후인 2014년 4월 본격화돼 1년 만인 2015년 4월 잠정 합의에 이릅니다.
그런데 넉 달 뒤인 2015년 8월, 북한이 목함지뢰와 연천 포격으로 도발합니다.
북한의 위협을 제어할 필요를 느낀 박근혜 정부는 이번에는 방향을 돌려 중국에 바짝 다가섭니다.
9월 초 시진핑 주석과 정상회담을 하고 중국의 전승절 행사에 참석했습니다.
미국 반응은 퉁명스러웠습니다.
[토너/미 국무부 부대변인(2015년 9월 3일) : 지역 내의 다른 국가와의 관계를 어떻게 할지는 한국 정부가 스스로 결정할 사안입니다.]
이어진 10월 한미, 11월 한일 정상회담에서 한·미·일 공조가 재차 강조되면서 정부는 미국 쪽으로 다시 방향을 바꿉니다.
[김현욱/국립외교원 교수 : '갈지자(之)' 외교를 하면서 미국에게는 한국이 중국에 치우쳤다는 잘못된 의심을, 중국에게는 한국을 끌어들일 수 있다는 자신감을 불러일으켰다는 거죠.]
다급해진 한·미·일 안보 공조를 위해 연내 위안부 협상 타결이라는 일종의 숙제를 받아들이면서 협상력을 잃었던 것으로 분석됩니다.
(영상편집 : 김진원)
유성재 기자venia@sb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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