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카 뽑고 무시험 합격..지방공공기관 채용비리 '온상'

송이라 입력 2017. 12. 28. 12:01 수정 2017. 12. 28. 13: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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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별점검 결과 무더기 적발..지방공공기관 70%가 '비리'
102건 징계·24건 수사의뢰.."허술한 지도·감독 이용 채용"
정부, 채용비리 처벌 강화, 규정미비 보완 등 개선책 마련
검찰은 ‘채용비리’ 혐의로 우리은행 압수수색했다. 사진=연합뉴스
[이데일리 송이라 김보영 기자] 지방 공기업 A는 2015년 계약직 직원 1명을 뽑는 채용 공고를 냈다. 인사담당 팀장은 자신의 조카가 채용에 응시한 걸 알면서도 임용 및 인사 등 직무에 회피 없이 조카를 채용했고 1년 후 정규직으로 전환하는 등 특혜를 줬다.

또 다른 지방 공기업 B는 2016년 신입공개채용시 별도의 채용공고를 내지 않고 기관장과 친분이 있는 특정인의 아들을 특혜 채용했다. 채용자는 과거 예비합격자였지만 해당 기관은 이 예비합격 순위도 조작한 것으로 드러났다.

지방 공기업 C는 특정인을 선발하고자 경력이 많은 타 응시자의 점수를 하향 조정하고 특정인의 경력점수를 높게 평정해 부당 선발했다.

대다수 지방 공공기관들이 부정지시나 청탁, 서류조작 등을 통해 채용비리를 저지른 것으로 드러났다. 인사담당자가 자신의 조카를 부당채용하는가 하면 특정인을 뽑기 위해 채용 기준을 바꾸거나 성적을 조작하는 등 비상식적인 일들이 지방 공공기관 10곳 중 7곳에서 벌어졌다. 정부는 이번 점검을 계기로 향후 채용비리 근절을 위한 법·제도적 개선방안을 마련할 계획이다.

채용비리 특별점검 결과 (표=행안부)
◇10곳 중 7곳이 채용비리…허술한 감독 틈타 특혜 채용

행정안전부는 28일 지난 2개월간 824개 지방공공기관 중 최근 5년간 채용실적이 없는 165개 기관을 제외한 659개 기관을 대상으로 특별점검을 실시한 결과 475개 기관에서 1476건의 채용비리를 적발했다고 밝혔다. 이번 점검은 “공공기관 채용비리를 근절하자”는 대통령 지시에 따른 후속 조치로 최근 5년간 각 기관의 채용청탁이나 부당지시 여부, 채용업무 부적정처리 여부 등을 전수 및 심층조사했다. 중앙부처가 지방 공공기관의 채용 실태를 조사한 건 이번이 처음이다.

유형별로는 모집공고 위반이 294건으로 가장 많았고 심사위원 구성이 부적절한 곳이 216건, 규정미비 164건, 부당한 평가기준 125건, 선발인원 변경 36건 등으로 나타났다. 이에 정부는 102건은 문책 요구 등 징계하고 추가 수사가 필요한 24건에 대해서는 수사를 의뢰할 예정이다.

유형별로 보면 기관장이 응시자와 사전 면담하고 합격자 발표 전에 기관장 묵인 하에 사전 근무를 시킨 후 서류·면접심사를 한 후 최종 합격시키는 사례가 있는가 하면 심사위원에 이해관계자를 포함시켜 특정인을 채용하기도 했다.

또 특정인을 선발하고자 1위 득점자의 평가점수를 집계표에 낮게 기재해 불합격 처리한 후 2위 득점자를 부당 채용하거나 모집공고 때부터 인원, 절차 및 배점방식 등을 명확하게 적시하지 않고 특정인 채용에 악용하기도 했다. 선반인원을 변경해 15배수로 정한 채용방침과 다르게 20배수, 30배수 등으로 임의로 기준을 조정해 탈락 대상자를 최종 합격처리한 사례도 있었다.

행정안전부 관계자는 “지방 공공기관은 지도·감독 권한이 각 지자체에 있다보니 중앙에서 지금까지 단 한 번도 채용비리 실태를 조사한 적이 없었다”며 “필기시험 없이 서류와 면접 만으로 사람을 뽑는 경우가 많아 비리를 저지를 여지가 많은 구조”라고 설명했다.

정부는 지적사항에 대해서는 감독기관인 시도(시군구 포함)에서 지방공공기관에 문책 등을 요구하고 수사의뢰 건은 향후 수사결과에 따라 합격 취소 등 별도 처분을 요구할 방침이다.

◇취준생 “믿었던 공공기관마저…무력감 든다”

예상보다 더 심각한 점검 결과에 공무원 및 공공기관 취업을 준비해온 학생들은 허탈감을 토로했다. 공무원 시험을 준비하고 있는 강모(27)씨는 “공직 사회에서도 채용 비리가 아예 없을 리는 없다고 생각하긴 했지만 1000건이 넘는 수치에 경악스럽다”며 “심지어 서류 조작까지 일삼다니 이런 식으로 하면 어떤 청년들이 이 나라 시스템을 신뢰하면서 자신의 청춘을 맡기겠냐”고 분통을 터뜨렸다.

또다른 공무원 시험 준비생 여모(26)씨도 “수년간 공부하며 자신과의 싸움을 이겨내는 것도 지치는데 이런 소식을 들으면 더더욱 힘이 빠진다”며 “사후약방문식 대응보다 앞으로 이런 채용 비리는 어떻게 뿌리뽑을지가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한편 정부는 재발 방지를 위해 지방공기업법과 출자·출연법을 개정해 해용 비위자에 대한 처벌기준, 관리·감독을 강화하고 지방 공공기관 인사·채용 업무처리 지침을 제정해 보다 촘촘한 채용 시스템을 만들겠다고 밝혔다. 특히 일반 공무원 시험과는 달리 공공기관, 특히 각 지자체에 지도·감독 권한이 있는 지방 공공기관에 대해서도 관련 제도 전반을 정비할 방침이다.

또 내년 1월부터는 채용비리 신고센터를 상설화해 제보·신고사안은 적극적으로 수사의뢰하고 적발시 엄정 처리할 계획이다.

심보균 행정안전부 차관은 “이번 채용비리 특별점검 결과 나타난 절차적·제도적 미비사항을 개선하고 채용담당자의 역량 제고를 위한 교육과 함께 상시 신고 및 감독체계를 강화해 채용비리에 연루된 자에 대해서는 지위고하를 막론하고 엄중문책함으로써 채용비리를 발본색원해 나갈 것”이라고 말했다.

송이라 (rassong@edail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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