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방공무원 손해배상 면책, 최근 정부 반대로 무산됐다
- 최근 소방법 개정안 통과됐지만
정부 "민사 책임 면제해주면 소방활동 피해 손실보상 불가능"
형사 책임만 감경·면제로 축소
"화재 현장서 적극 활동 위해선 고의나 중대 과실 아닌 경우 민·형사 책임 모두 면책해야"
소방관이 불을 끄는 과정에서 인명·재산 피해가 생겼을 경우 지금은 책임을 하나하나 따져서 경우에 따라 소방관 개인이 배·보상을 하기도 한다. 이 때문에 소방관들은 몸을 사릴 수밖에 없다. 이를 개정해서 소방관 개인에게는 책임을 묻지 않도록 하는 법안이 국회에서 추진됐지만 정부 반대로 무산됐던 것으로 27일 알려졌다. 소방관 면책 규정 미비는 충북 제천 스포츠센터 화재 참사를 키운 원인 중 하나로 지목되고 있다. 소방관이 현장 인근에 불법 주차돼 있던 차량에 대한 피해 보상 걱정 때문에 견인을 하지 못하는 등 소극적인 대처를 했다는 것이다.
국회는 지난 8일 본회의에서 소방 활동 중 발생한 인명 피해에 대한 형사 책임을 감경 또는 면제할 수 있도록 하는 내용을 골자로 한 소방기본법 개정안을 통과시켰다. 소방 활동 중 일어난 피해로 인해 민·형사소송이 붙었을 경우에 소방청장 등이 소방관들을 지원할 수 있도록 하는 방안도 포함됐다. 이는 더불어민주당 민병두·윤관석 의원이 각각 발의한 개정안을 기초로 했다. 그러나 당초 법안에는 '고의나 중대한 과실이 아닌 경우에는 재산·인명 피해에 대한 민·형사 책임을 모두 면책하자'고 돼 있었다. 이게 축소된 건 법무부가 반대했기 때문으로 알려졌다.
국회 행정안전위원회는 지난달 이 법안을 논의했다. 여기서 법무부는 "소방관의 민사 책임까지 면제해주는 건 수용 곤란하다"는 검토 의견을 냈다. 민사 책임을 없애면 소방 활동으로 인한 피해자에 대한 배·보상이 불가능하다는 이유였다. 의원들이 "민사 면책권이 있어야만 소방관들이 (소방 관련) 판단을 갖고 공무 집행을 할 수 있는 것 아니냐"고 했으나, 소방청도 별다른 이견 없이 법무부 의견을 수용했다.
법무부는 이에 대해 "공무원에 대해 소방 활동 중 발생한 책임을 감면하고자 하는 개정안 취지에는 공감하나 지금도 소방공무원이 고의나 중과실이 없을 경우 국가배상법과 판례에 따라 공무원은 면책되고 있으므로 법 체계상 추가 검토가 필요하다는 취지의 의견이었다"고 했다.
행안위 소속 한 민주당 의원은 "의외로 정부가 이 개정안에 적극적으로 나서지 않았다"며 "그나마 지난 10월 벌집을 제거하다 난 화재 때문에 소방관이 1000만원을 물어준 사건이 화제가 되지 않았다면 논의되지도 않고 묻힐 수 있었다"고 했다.
현행 소방기본법은 소방 활동에 방해가 될 경우 소방관이 주정차 차량 등을 제거할 수 있도록 규정하고 있다. 그러나 소방관들은 "사실상 현실에서 적용하기는 어려운 선언적 조항"이라고 말한다. 실제로는 재산 피해를 입은 차주(車主)나 보험사가 정부를 상대로 손해배상을 청구하고 있고, 이 소송에서 소방관이 이기려면 '차량 견인의 불가피성'을 소방관 쪽에서 입증해야 하는 경우가 있기 때문이라고 한다. 이 때문에 현장 소방관들은 "법으로 불법 주차를 아예 막지 못할 거라면 면책권이라도 줘야 한다"고 하고 있다.
여당 의원들은 "소방관 면책권을 강화할 방안을 추가로 마련할 방침"이라고 했다. 지난해 9월 이 법을 최초 발의했던 윤관석 의원은 본지 통화에서 "법안 취지를 살리려면 '민사 면책권'이 있어야 한다"며 "법안을 다시 제출하는 것을 검토 중"이라고 했다. 행안위 소속 소병훈(민주당) 의원도 "당장 민사 면책권을 주는 게 무리라면 소방관 개인이 소송 당사자가 되는 상황이라도 개선해야 한다"고 했다. 소 의원은 소방 관련 민사소송 당사자를 소방관 개인이 아닌 국가나 지방자치단체로 한정하는 법안을 지난 11월 제출했다.
소방관 면책 법안 외에 다수의 소방 관련 법안이 20대 국회에 계류돼 있다. 긴급 자동차 통행이 방해받을 경우 대형 참사를 초래할 수 있는 곳을 주정차 특별금지구역으로 지정하는 내용을 담은 도로교통법 개정안, 일정 규모 이상의 공동주택에 소방차 전용 주차 구역을 의무적으로 설치하도록 하는 내용이 담긴 소방기본법 개정안이 대표적이다.
소방차에 길을 양보하지 않은 차량 운전자에 최대 100만원(현행 6만~7만원)까지 올리는 도로교통법 개정안과 보행자에게도 소방차 양보 의무 부과하는 안 등도 1년째 상임위에 계류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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