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선규 "선규는 참 착해.. 이 말 지겨워 무술 연마했죠"

김시균 2017. 12. 27. 15: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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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조연배우다-4] 최근 배우 진선규(40)의 청룡영화제 남우조연상 수상 모습을 가만히 지켜보면서 이런 생각을 했다. 우리가 흘리는 눈물은 간혹, 아니 꽤나 자주 전염되는 것이 아닌가 하고. 그와 안면식이라고는 기껏해야 지난 부산국제영화제 때 잠시 저녁자리에서 본 게 전부다. 간단한 인사치레 정도 나누었을 뿐이다. 그런데도 왜일까. 수상자로 호명되었을 때 보여준 그의 흐느낌은 사뭇 남달랐다. 저마다 눈자위를 촉촉이 젖게 만드는 무언가가 그 눈물엔 서려 있었다. 그만큼 전염력이 강했다. 설사 그를 본 적 없다 해도, 그가 어떤 사람이고 어떤 삶을 살아왔는지를 조금은 짐작할 것 같은 그런 눈물.

지난 11월 25일 열린 제38회 청룡영화상 시상식에서 배우 진선규는 생애 첫 남우조연상을 거머쥐었다. 당시 흘린 그의 눈물과 수상 소감이 화제였다. /사진제공=SBS

 최근 만난 이 '울보'에게 수상 얘기부터 꺼내지 않을 수 없었다.

 -올 한 해 가장 인상 깊은 장면 중 하나였어요.

 "제가 사실 그리 눈물이 많은 건 아닌데…. 그땐 정말 주룩주룩 흘러내리더군요. 바보처럼요. (수상은) 전혀 예상 못한 일이었어요. 제 이름이 호명되는데 갑자기 복잡미묘한 감정이 파도처럼 밀려왔어요. 무방비상태였던 거죠."

 -수상 소감이 많이 회자됐어요. 청심환을 두 개 먹을 걸 그랬다고.

 "정말 제 삶을 통틀어 시상식장에 가는 거 자체가 처음이었어요. 영화제에서 '청룡' 그러면 너무 큰 자리라는 부담감이…. 굉장히 떨리고 긴장했어요. 제가 청심환을 결혼식 때 처음 먹어봤는데요. 그때 '어, 그래도 좀 괜찮다'는 느낌이 있었어요. 그래서 시상식 가기 전에 하나 씹고 간 거죠. 하나로는 모자랐지만요(웃음)."

 -마지막에 이런 말을 했어요. '저 멀리 우주에 있는 좋은 배우로 나아가겠다'고요. 어떤 의미죠?

 "음, 우리가 지금 당장 좋은 배우가 누구냐고 할 때, 송강호, 최민식, 황정민 선배님 같은 훌륭한 분들을 떠올릴 거예요. 아마 그분들은 절대로 안주하고 계시지 않을 걸요? 저 멀리 어딘가에 있는 목표를 향해 부단히 노력 중이실 테죠. 저도 그 뒤를 잇고 싶다는 거였어요. 물론 저는 이제 시작이고요."

인터뷰 현장에서 환하게 웃고 있는 진선규 /사진=양유창 기자

 -상 받고 주변에서 뭐라 하던가요.

 "우선 아내(배우 박보경)가 현장에 있었는데, 같이 한참 울고 나서 이렇게 말하더군요. '앞으로 정신 똑바로 차려야 겠어, 이제부터 잘해야 해!' (웃음) 동석이 형(마동석)은 인스타그램에 이런 글귀를 올려주었죠. '진짜 안 보이던 정말 잘하는 친구들이 이제 좀 세상이 알아봐주는 것 같다. 이제 더 잘해야 한다.' 계상이(윤계상)는 그날 자리에 없어서 영상통화를 했는데요. 엉엉 울더라고요. 다들 제 마음이 되어주신 것 같아요."

 -자녀들은 아빠보고 뭐라고 해요?

 "첫째가 이제 다섯살, 딸이에요. 둘째는 두 살된 아들이고요. 장모님 말씀으로는 첫째가 TV 생중계 보면서 많이 울었다고 해요. 화면에서 아빠도 울고 엄마도 울고 있어서라고(웃음). 그날 밤 트로피 들고 와서 '아빠 상받았다?' 하니, 딸 아이가 '내건 없어? 하는 거 있죠."

 -아파트 통장님이 현수막까지 걸어주셨다면서요.

 "네, 수상 뒤에 모르는 번호로 전화가 오더라고요. '아, 저 3단지 통장인데요. 혹시 저희가 플랜카드를 만들었는데 걸어도 될까요'라시며. 살면서 제 이름 걸린 플랜카드가 걸릴 줄은 어찌 알았겠어요. 그저 '너무 감사합니다'고 했죠. 정말 그날 저녁에 걸어주셨더군요. 청룡영화제 남우조연상 진선규 배우, '범죄도시' 진 배우님 축하합니다. 3단지 주민 일동'이라고요."

배우 진선규는 영화 `범죄도시`에서 흑룡파 위성락으로 분해 강렬한 연기를 선보이며 2017년 충무로 `신 스틸러`로 떠올랐다. /사진제공=키위미디어그룹

 진선규가 남우조연상 수상 소감으로 꺼낸 첫 마디는 이것이었다. "저, 조선족, 중국에서 넘어온 사람 아니고요." '범죄도시' 위성락으로 진선규를 처음 접한 이들은 그를 정말 중국인으로, 조선족으로 오인하는 경우가 잦았다. 그만큼 연기가 인상 깊었다는 소리다. 그도 그럴 것이 그가 분한 흑룡파 깡패 위성락은 그동안 한국 영화계에 보기 드문 '신 스틸러'였다. 제 눈에 거슬리는 것이면 무엇이든 초토화시킬 태세. 거칠고 충동적인 데다 어디로 튈지 종잡을 수가 없다. 실제로 영화에서 그를 본 대중 반응은 두 가지였다. '뭐 이런 미친놈이 다 있지?' '저 사람 진짜 조선족 아냐?'

 -저도 한국인이 아닌 줄 알았어요.

 "하하, 근데 정말 그렇게 봐주시면 너무나 짜릿한 걸요? 배우로서 원했던 반응이거든요. 설마 저 사람 진짜 중국에서 온 배우일까 하는 그런 반응이 오면 저는 그저 뿌듯해요. 내가 잘하긴 잘했구나 싶어서."

 -위성락의 광기, 그 다혈질 이거 어떻게 설명할래요?

 "제가 생각하는 위성락은 '난 뭐든 할 수 있어'라는 천상천하 유아독존 캐릭터죠. 계상이가 연기한 장첸이 일인자지만 각자의 포지션이 있거든요. 계상이가 그랬어요. 각자 팀워크가 중요하니까 이걸 잘 살려보자고요. 어느 한 사람 기나 힘에 눌리면 안 된다, 우리 모두 일인자, 첫째가 될 수 있는 거다. 위성락을 보면 자기 영역을 침범하거나 자기 주관에 엇나가는 말을 누군가가 하면 '너 당장이라도 죽일 수 있어, 그거 어려운 일 아냐'라는 식이잖아요. 제가 보기엔 사이코패스에요. 느닷없이 아무렇지 않게 악행을 즐기니까요."

 -근데 민머리는 자주 하세요?

 "아니요, 태어나서 이만큼 머리 민 거 처음이에요. 제 두상이 진짜 이 정도일 줄은. (웃음) 정말 상상 이상으로 평소 이미지랑 다르더군요. 근데 이게 그리 나쁘지 않아요. 징그럽기도 한데 저한텐 색다른 변화거든요. 40년 살면서 '늘 긴 머리에 선한 느낌의 선규'였으니까요."

 늘 긴 머리에 선한 느낌의 선규…. 혹자는 이 말이 낯설게 다가올지도 모른다. '긴 머리'와 '선한 느낌'이라니. 거칠고 야만적인 위성락의 성격과 그야말로 대척점에 선 표현이지 않은가. 그런데 말이다. 그를 실제로 만나본 사람들은 안다. 이 말이 있는 그대로의 사실임을.

배우 진선규 /사진=양유창 기자

 -평소에도 이토록 착한 성격이세요?

 "그 얘기 하실 줄 알았어요.(웃음) 많은 분들이 그래요. '아, 선규는 참 착해, 이름처럼 참 착한 친구야.' 저는 늘상 이런 말을 들으며 컸어요. 생글생글 잘 웃고 말 잘 듣고 그러니 '아, 나는 착하게 보여야 하는구나' 했던 거죠. 이게 어떤 외부적인 영향이 아니에요. 제 스스로 착한 이미지여야 한다는 강박 같은 게 있어서 그런 이미지를 스스로 만들어온 거죠."

 -평소 억눌려 있을 무언가가 작품으로 표출되는 식이군요?

 "배우라는 직업이 좋은 게, 제가 악인도 되고 비열한 사람도 되고 착한 사람도 되고 의젓한 사람도 되고 갖은 인간군상을 보여드릴 수 있다는 거예요. 제 안에 있던, 평소 끄집어낼 수 없던 무언가를 표현할 수 있는 거죠. 그래서인지 연기할 때면 기분이 좋아요. 매번 새롭고 재미있거든요. 짜릿하고 속도 시원하고."

 -선규 씨 어린 시절은 어땠어요?

 "조용하고 허허 잘 웃는 아이였어요. 그러다보니 약간의 괴롭힘 아님 괴롭힘도 좀 있었어요."

 -괴롭힘이라…. 감히 위성락을요?(웃음)

 "고교시절엔 때리는 친구들도 있었어요. 도무지 참을 수 없을 지경까지 왔을 땐 제가 테세를 바꾸었죠."

 -어떤 식으로요?

 "일단 운동부터 했어요. '말죽거리 잔혹사'(2004) 혹 보셨어요? 진짜 그 영화랑 똑같았어요. 생긴 거 빼고요(웃음). 극 중에 권상우 씨가 이기려고 엄청 연습하잖아요. 저도 똑같이 했어요. 자전거 타이어 문지방에 묶어 놓고 발차기 계속하고. 옥상에선 얍얍 검도 연습하고. 되는 대로 한 거죠. 이 악 물고요."

 -독학으로요?

 "네, 태권도랑 합기도는 일단 도장을 다녔고요. 절권도는 권상우 씨처럼 집 형광등에 종이 달아놓고 '팍팍' 치면서 매일 같이 연습하고(웃음)."

 -효과가 있었나요?

 "언제부턴가 주변에서 절대 못 건드리던데요. 소문이 난 거죠. 한참 괴롭힘 당하다 갑자기 막 날아다니니까요. 발도 저 위로 날아가고, 탓 타타타타!

 -말 없고 착한 선규가 이소룡이 됐네요.

 "운동이 참 재밌었어요. 체육교사가 되려고 했을 정도니까. 성격도 좀 변했지요. 좀 더 밝고 적극적으로요."

배우 진선규 /사진=양유창 기자

 듣고보면 그는 제 인생을 스스로 개척해온 셈이다. 운동이 그 시작이라면 연극과의 만남은 그 다음이다. 1977년 경남 진해에서 태어난 이 시골 청년은 '몸짱' '싸움짱'으로 변신한 뒤로 우연히 진해에 있는 소극단 '고도'에 가게 된다. 같이 놀던 친구가 꼬드긴 거였다. "니 노래하는 거 좋아한다 안 했나. 같이 안 가볼래?" 고교 3학년 여름방학이 이제 막 끝나가던 무렵이었다.

 -극단이 별천지로 다가왔나봐요?

 "작은 극단이었는데요. 분위기 자체에 중독됐어요. 참 무어라 묘사하기 힘들 만큼 마음을 끌어당겼어요. 여때껏 접해보지 못한 '따스함' '즐거움' 같은 거랄까."

 -고교 3학년이면 한창 공부할 때인데.

 "에라 모르겠다, 마음 가닿는 대로 하자 했던 거죠. 두 달가량 계속 거기 가서 놀고 지냈어요."

 -그러다 그쪽으로 올인해야겠다 결심이 섰군요.

 "그죠, 근데 어찌하면 되는지 모르겠더라고요. 그때 연출 가르쳐준 형이 조언을 해주었어요. 연극영화과 진학을 일단 준비해라, 만약에 다 떨어지면 걍 여기 극단 오라는 거였어요. 그래서 시험 준비에 들어갔고요.

 -속전속결인데요?

 "일단 부딪쳐본 거죠. 당시 문화생활 누려본 게 전혀 없었어요. 형편이 좋았던 것도 아니니까. 연극영화과는 들어가야겠고 기간은 3개월 남았고. 어찌해야 할까. 그 형이 그러더군요. 일단 서울가서 공연부터 보고 오라고요. 그래서 난생 처음 서울에 갔죠.

 -무슨 공연이었어요?

 "'청우'라는 극단에서 올린 '오필리어'라는 공연이었어요. 그게 제 생에 서울서 처음 본 공연이에요(웃음). 근데 수중에 돈이 없잖아요. 보려면 티켓을 사야하는데 말이죠. 형이 미리 팁을 하나 줬어요. 혜화역에서 너 보고싶은 공연 있으면 매표 창구에서 사연좀 얘기해봐라. 그럼 혹시 보여줄 수도 있다. 정말 다행인 게 매표 창구 직원이 진짜로 도와주셨어요."

 -뭐라고 부탁했어요?

 "제가 지금 서울에서 처음 올라왔는데 연극을 너무너무 하고 싶다고요. 연기하고 싶은데 돈이 없다, 근데 정말 보고싶다고요. 그러니 '아 그러세요? 잠깐만 기다리세요'라는 거예요. 빈자리 있으니 어서 들어오라며."

 -참 다행이네요, 그때 본 공연은 어땠어요?

 "신세계였어요. 그 힘, 에너지, 어찌 저리도 깊은 감정을 실어 나를까. 저런 긴 대사를 대체 어떻게 하는 거지 하고요. 그 작은 극장 안에 조명도 몇 개 안 되는데 시간이, 공간이 바뀌더라고요. 신기했죠. 한예종 연기과 시험볼 때 이날 본 게 많은 도움이 됐어요."

 소설가 파울루 코엘류(70)가 쓴 '연금술사'에는 이런 구절이 나온다. "자네가 무언가를 간절히 원할 때 온 우주는 자네의 소망이 실현되도록 도와준다네." 열여덟 진선규의 어린 마음도 이러했을까. 극단 선배의 진심 어린 조언, 난생 처음 상경한 시골 소년에게 빈 좌석을 내준 창구 직원 등의 도움이 없었더라면 그는 지금 이 자리까지 오지 못했을지도 모른다.

배우 진선규 /사진=양유창 기자

 -대학 시절은 어땠어요?

 "정말 행복한 시절이었어요. 거기서 만난 친구들과 매일 운동도 하고 술도 먹고, 조금씩 연기도 배우고."

 -데뷔는 2004년에 하셨죠. '거울공주 평강이야기'라는 연극으로요.

 "한예종 졸업작이었어요. 친구들끼리 졸업 전에 공연 하나 올려보자고 의기투합한 거였죠. 근데 이게 반응이 좋더라고요. 이슈가 돼서 대학로에도 올릴 수 있었고요. '공연배달 서비스 간다'라는 팀을 그때 꾸렸는데요. 13년 넘게 지금도 유지되고 있어요.

 -데뷔작에서 어떤 역할이었나요.

 "'타잔' 같은 거예요. '타잔' 보면 동물 품에서 인간과 접촉 없이 자란 모글리가 나오잖아요. 이 야생소년이 한 여자를 만나 정서적으로 교류하고 여자의 가치관을 바꿔주게 되죠. 요약하자면 '진정한 아름다움은 어떤 것인가'를 말하는 연극이에요."

 -대사가 많지는 않았겠네요.

 "아호호 이이 하하! 그거밖에 없었어요(웃음)."

 -극단 생활은 얼마나 했어요?

 "10년간 순수하게 창작한 건 7~8편. 학교 다니면서도 한 번씩 고향가서 워크숍도 열심히 했어요. 지방 극단이 잘 안 되니 도울 수 있으면 최대한 돕고 싶었거든요."

 -지난 번 인터뷰 땐 손종학 선생님을 뵀어요. 이분도 연극인 출신이시죠. 선규 씨를 참 아끼시던데요? '우리 선규'가 남우조연상 받을 때 '저 멀리 우주에 있는 좋은 배우로 나아가겠다'던데 나도 그래야겠다며(웃음).

 "종학이 형은 제가 정말 좋아하고 존경하는 롤모델이에요. 예전에 형이 '늙은 부부 이야기'(2003)에서 연기하는 거 보고 정말 감명받은 기억이 지금도 있어요. 그래서 대학로에 불쑥 찾아갔죠. 그 인연으로 '너와 함께라면'이라는 연극도 같이 올리기도 했어요."

 -드라마 진출은 2010년 MBC 드라마 '로드 넘버 원'으로 했네요. 이후 드라마, 영화도 겸해서 출연하셨고요.

 "공연 같이 하던 형이 자기 아는 대학 동기가 MBC 피디인데 전쟁 드라마 준비한다고 말해줬어요. 전쟁 드라마면 떼로 나오는 단역이 많잖아요. '한두 번 찍으러 나가면 두세 달 공연하는 것보다 돈 많이 준다'는 거예요. 아르바이트 겸으로 하라는 거였죠. 근데 오디션을 7차까지 봤어요. 김진민 감독님이 1차하고 나니 또 와봐, 2차하고 또 와바, 그러다 7차까지 갔어요. 마지막엔 '두 역할 있는데 뭘 하고 싶니'라고 물으셨죠. 본의 아니게 메인 캐스팅까지 된 거예요. 김 감독님이랑은 2년 뒤에 '무신'도 같이 찍었어요. 그해 SBS 드라마 '육룡이 나르샤'도 신경수 피디님이 대학로에서 제 공연 보시고 캐스팅해주셨고요. 저는 오신 줄도 몰랐지만요."

 -첫 영화는 '좋은 놈, 나쁜 놈, 이상한 놈'(2008)이었죠.

 "맞아요, 0.5초 정도 나와요. 저만 찾아볼 수 있을 걸요(웃음)?"

 -이후 꾸준히 영화 위주로 찍으셨네요.

 "연극이 베이스지만 저한텐 영화가 훨씬 여유롭고 재미있게 다가왔어요. 조금 더 편하달까요. 근데 영화를 본격적으로 해보고 싶다는 마음이 든 건 불과 2~3년 전부터예요."

 -올해는 무려 다섯 편이에요. '특별시민' '불한당:나쁜 놈들의 세상' '범죄도시' '남한산성' '꾼' '범죄도시' 이외 네 작품에선 어떤 배역이었죠?

 "'특별시민'에선 최민식 선생님 운전 기사였어요. 사건 도맡아 하게 된, 어쩔 수 없이 시키는 대로 일하는 충직한 '개'인 거죠. '불한당'에선 설경구 선배랑 임시완 씨가 있던 교도소 교도계장이었고요. 좀 야비하고 센 척하지만 그래도 말 들어주고 조금 도와주기도 하는. '남한산성'에선 박휘순 씨가 연기한 이시백 장군 수하였고, '꾼'에선 성태가 연기한 장두칠 사기 사건 피해자였죠."

 -허성태 배우 얘기가 나와서 말인데, 성태 씨도 올해 참 많이 떴어요.

 "저희 둘이 좀 비슷하지 않나요. 성태는 연기라는 걸 잘 몰랐던 친구인데 꿈을 향해 직장 접고 새로 도전했잖아요. 지금 빛을 보고 있는 거고요. 저는 계속 해오긴 했지만 비슷한 시기에 남들이 알아봐주게 된 거고. 항상 이렇게 말해요. '우리 정말 더 열심히 해야 한다. 더 잘해야 한다.' 성태야 말로 좋은 라이벌, 좋은 동료, 좋은 친구죠(웃음).

 진정한 우정이란 바로 이런 거 아닐까. 서로를 충분히 존중하되 선의의 경쟁까지 마다하지 않는. 진선규에게 허성태를 향한 한 마디를 요청했다. 그는 만개한 웃음으로 이같이 말했다. "아, 진짜 우리 성태. 요즘 영화보러 가면 안 나오는 영화가 없을 정도야. 너무 자주봐서 눈앞에 없어도 친근하다니까. 우리 앞으로도 파이팅!"

 -선규 씨도 살면서 힘든 순간이 있었나요?

 "왜 없겠어요. 되도록 좋았던 거 생각하며 즐겁게 살려고 노력하는 거죠(웃음). 결혼하고 쌀 떨어진 적도 있는걸요. 한 번은 대출받으러 갔더니 저는 안 된다는 거예요. 200만~300만원 빌리려던 거였는데 참 서글프더라고요. 와, 나는 신용이 없어서 돈도 못 빌리는구나. 제가 장남인데 장남 구실을 잘 못했어요. 남동생, 여동생이 제 뒷바라지, 부모님 뒷바라지까지 다 했어요. 제가 돈이 없으니 동생들이 회사 월급 나오면 조금씩 보태주고 그랬거든요. 많이 미안하죠(웃음)."

 -부모님이 요새 선규 씨 보면 참 기뻐하시겠어요.

 "아유, 기뻐하시다마다요. 어머니께선 이러시더군요, '규야, 벼는 익을수록 고개를 숙인다고 했다. 앞으로 더 잘해야 한다. 차분하게.' 아버지는 딱 봐도 경상도 분이신지라. '어어, 음, 어, 그래, 어, 집에 온나' 하세요. 좋으시다는 의미예요(웃음)."

 인터뷰가 끝나기 전, 진선규는 "배우가 천직인 것 같다"고 했다. 이유를 물으니 "무한히 한계짓지 않는 직업이어서"란다. 정말로 그는 저 멀리 우주를 향해 나아가려는 것일까. 일단 그의 차기작은 '사바하'. 괴상한 신흥 종교단체를 추적하는 영화로, 이정재가 주인공 목사, 진선규가 그를 돕는 '착한' 스님이다. 물론 이번에도 민머리다

[김시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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