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교문서 30년 비공개인데, 정부 2년 만에 스스로 공개

박유미 2017. 12. 27. 15:00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외교 문서는 통상 30년 비공개 규정
20년 전 고노담화 들여다본 일본 비난한 우리 정부가
2년 만에 합의 들여다봐 국제적 비난 자초 우려도

━ [위안부TF 발표]국익 위해 안된다더니 스스로 외교 기록 공개한 정부

강경화 외교부 장관 직속의 ‘한·일 위안부 피해자 문제 합의 검토 태스크포스(TF)’가 27일 공개한 보고서에는 ‘비공개’로 분류되는 내용이 상당 부분 포함돼 논란이 예상된다.

TF는 “외교장관 공동기자회견 발표 내용 이외에 비공개 부분이 있었다”며 합의에 대한 평가를 ‘공개’ 부분과 ‘비공개’ 부분으로 나눠 아예 따로 다뤘다. 비공개 언급은 일본 측이 요구한 ▶피해자 관련 단체 설득과 ▶주한일본대사관 앞 소녀상 ▶제3국 기림비 ▶‘성노예’ 용어 사용 문제 등과 같은 민감한 사항들이다. 이에 대한 일본 측의 요구와 한국 측의 수용·거부와 같은 협상 내용들이 자세히 소개됐다. 이병기 당시 국가정보원장이 대표로 나섰던 사전 고위급 협의 진행 과정에서 양국이 줄다리기를 하던 비공개 내용 역시 보고서에 담았다.

오태규 위안부 합의 TF 위원장이 27일 오후 서울 외교부 청사에서 TF 결과를 발표하고 있다. 박종근 기자

TF는 외교 문서를 검토한 과정에 대해 “외교부가 제공한 협상 경위 자료를 우선 검토한 뒤, 이를 토대로 필요한 문서를 외교부에 요청하여 열람하였다”며 “외교부가 작성한 문서를 주로 검토했고, 외교부가 전달받거나 보관하고 있던 청와대와 국가정보원 자료를 보았다”고 했다.

비공개 외교 문서를 합의 2년 만에 공개한다는 것에 법적인 문제는 없을까. ‘공공기관의 정보공개에 관한 법률’에는 ‘국가안전보장·국방·통일·외교관계 등에 관한 사항으로서 공개될 경우 국가의 중대한 이익을 현저히 해칠 우려가 있다고 인정되는 정보(9조 2항)’를 비공개로 할 수 있게 했다. 이를 근거로 하는 ‘외교문서 공개에 관한 규칙’에는 외교 문서를 30년 간 비공개로 하고, 이후 외교문서 공개심의회의 심사를 거쳐 일반에게 공개할 수 있도록 규정했다.

현재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 모임’이 외교부를 상대로 낸 ‘위안부 합의 협상 문서 비공개 처분 취소소송’ 항소심에서 정부가 문서 비공개의 근거로 내세우는 것도 이 법 조항이다. 정부는 일관되게 “공개될 경우 국가의 중대한 이익을 해친다”고 말해왔다.

하지만 법원의 최종 판결이 나오지 않은 상황에서 TF 보고서를 통해 비공개 문서 내용이 공개됨에 따라 정부 스스로 법원에서 주장한 입장을 뒤집은 셈이 됐다. TF에 참여한 공무원들이나 이들에게 협의 과정을 진술한 관계 공무원들에 대해선 법을 엄격히 적용한다면 국가공무원법상 ‘비밀 엄수 의무(60조)’ 위반 소지도 있다.

오태규 TF 위원장은 “TF에선 어떤 대목은 외교적 부분이 약간 손상돼도 알려줘야 한다고 판단했다. 곳곳에서 주제별로 국민의 알권리 중시한 부분, 국제적 영향을 중시한 부분으로 나눠서 판단, 공개했다”며 “자료를 열람할 때마다 비밀 보안 서약을 쓰고 규정에 따라 열람했다”고 말했다.

앞서 정부는 2014년 6월 20일 일본 정부가 1993년 위안부 강제 동원 사실을 인정한 고노 요헤이(河野洋平) 관방장관의 담화에 대한 검증 결과를 공개했을 때 당시 외교부 대변인 명의로 깊은 유감을 표명했다. 정부는 “아베 정부가 한·일 외교 당국 간 협의 내용을 자의적으로 취사선택, 재구성해 일방적으로 공개했다”며 “(검증이) 외교 관례와 예양에 어긋날 뿐 아니라 한·일 양국 간 신뢰를 훼손하고 국제사회 행동규범을 일탈한 몰상식한 행위”라고 지적했다.

이번 TF 결과 발표에 따라 이번엔 한·일의 공수(功守)관계가 뒤바뀌게 된 셈이다. 여기에 더해 일본은 20년 만에 들여다본 것이라면 우리는 불과 2년 만이다.

박철희 서울대 국제대학원장은 “비공개 부분을 공개하는 것을 보며 일본은 한국이 합의를 지킬 의향이 없는 것으로 볼 수 있다”며 “장기적으로는 다른 나라들도 한국과 비밀 협상이 어렵겠다는 인식을 가질 수 있고, 우리의 외교적 운신의 폭 자체가 좁아질 수 있다”고 우려했다.

박유미 기자 yumip@joongang.co.kr

Copyright © 중앙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 기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