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보니 시리즈 22] 내 정신은 건강할까? '심리 상담' 받아보니 ①

2017. 12. 27. 14: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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캐나다는 국민 절반 가까이가 정신과 상담을 받고 있다. 정신과 상담을 '삶의 여유'라고 생각하고 상담 내용을 주변에 자랑하기까지 한다. 미국에서는 '우울증에 걸렸다가 병을 극복했다'는 정신과 의사의 소견서가 있으면 취업 시장에서 가산점을 받는다. 하지만 정작 OECD 국가 자살률 1위라는 불명예를 안고 있는 우리나라는 심리 상담도, 정신과 치료도 진입 장벽이 높다.

나 역시 단 한 번도 정신과 치료를 받아보거나 심리 상담을 받아본 경험이 없다. 고등학교 시절 반 전체가 다 같이 MBTI 검사를 해본 경험이 전부다. 생각해보면 어린 시절 나에게도 소아 우울증이 있었던 것 같지만 그게 무엇인지도 몰랐고, 병원을 찾을 생각 역시 단 한 번도 해보지 않았다.

어린 시절 갖고 있었던 문제는 어느 정도 극복했고, 지금은 일상 생활에 지장을 주는 큰 문제는 없다. 하지만 꼭 '특별한 문제'가 있어야만 정신과를 찾거나 심리상담센터를 찾을 이유는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행복보다는 우울함이 많아 보이는 현대인들의 모습. 나도 내 정신 건강은 지금 어떤 상태인지, 내 문제점은 무엇인지 상담 전문 기관을 찾아 깊은 얘기를 나눠 보고 싶었다.


모바일 메신저로 미리 시간을 예약한 뒤, 강남의 유명한 모 심리상담센터를 찾았다. 간단한 문항을 작성한 뒤 바로 상담실로 들어갔다. 비용은 1시간 정도에 10만 원 정도 선이었다. 상담소에 따라 다르지만 보통 7만 원~15만 원 정도 가격이 책정돼 있다고 한다.

상담사 선생님은 나에게 "무슨 문제 때문에 이곳을 찾게 됐나요?"라고 질문했다. 그는 "정신 건강을 진단하기 위해 왔다"는 내 대답에 조금 당황한 듯 했다. 큰 문제 없이 상담을 받으러 오는 나같은 사람은 흔하지 않았기 때문일 거다. "꼭 큰 마음의 상처가 있는 사람들만 이 곳을 찾나요?"라고 반문했더니 그는 "그렇지 않다"며 이렇게 대답했다.

"엄청난 트라우마가 있는 사람만 오는 건 아니에요. 크든 작든 문제가 있으면 이 곳을 찾을 수 있어요. 예를 들어 사람들 앞에서 말하는 게 어렵다거나... 이런 확고한 목표가 있는 경우는 상담하고 해결하기 쉽죠. 하지만 딱히 정윤주 씨는 지금 무엇이 문제인지 스스로도 모르는 듯 합니다."

물론 나에게도 자잘한 고민은 있었다. 아주 오래 전부터 가지고 있다가 최근 재발한 섭식 장애라던지, 우울증까지는 아니었지만 만성적인 의욕 저하나 건강염려 문제들이 가끔 나 자신을 괴롭히고 있었다.

"10년 전부터 거식증 같은 증상이 있었어요. 살이 많이 쪘던 과거 때문에 많이 먹으면 몸에서 받아들이지 못하고 구토를 하는데, 토하지 않고는 견딜 수 없어요. 1달에 1~2회 이상 그래요. 몸이 점점 나빠지는 게 느껴집니다.

그리고 삶에 큰 의욕이 없어요. 그렇다고 죽고 싶은 건 아닌데... 재미있지도 않고, 기계가 된 느낌이에요. 쉬는 날이면 아무 것도 하지 않고 그냥 침대에 가만히 누워 있어요. 다른 동료들은 쉬는 날 계속 돌아다니고 놀던데, 전 사람 만나는 것도 너무 귀찮고 모든 삶이 숙제처럼 느껴져요."

상담사는 내 말에 대한 아무런 해결책을 제시하지 않고 질문을 끊임없이 이어갔다. 내 인간관계, 부모님의 성향, 남편의 성격, 어린 시절의 기억, 결혼을 한 이유 등등.

특히 부모님과의 일화에 많은 시간을 할애했다. 나는 어린 시절 엄격한 부모님 밑에서 자라 늘 '백점을 맞지 않으면 혼났던 일화와, 대학생 시절과 취직 뒤에도 통금이 있어서 그에 순응했던 이야기 등을 늘어놓았다.

"단 한 번도 반항하려는 생각은 안 했나요? 성인이 할 일이 있으면 집에 늦게 들어오거나 안 들어올 수도 있는 거잖아요."

"그런 생각을 안 해본 건 아닌데... 집안 분위기가 안 좋아지고 혼나고 하는 게 싫어서 거의 부모님 말씀을 따랐던 것 같아요. 제가 참으면 편하니까. 그렇다고 착한 딸이었다고는 생각하지 않는데... 글쎄요 모르겠네요."

그 이후에도 상담 선생님은 끊임없이 질문을 이어갔다. 이렇게 내 얘기만 늘어놓다 보면 무언가 답이 나오는 걸까? 의문이 들 때쯤, 상담 선생님은 10여 분을 남기고 내 성격 형성에 대한 진단을 거침없이 이어갔다.

"기분이 갑자기 뚝 떨어지는 우울증이 있고, 감정이 아래로 내려온 상태로 계속 가는 상태의 우울감도 있어요.후자는 기분 좋은 건 아닌데 또 재밌는 것도 없는 거죠. 깊지 않은 우울감이 쭉 가면 그걸 '우울 성격'이라고 표현합니다.

어린 시절부터 기본적으로 생에 활력이 없고 저조한 기분으로 쭉 가는 사람들이 있어요. 과거부터 감정을 억압해오거나, 생생한 감정들을 눌러와서 감정이 둔화해 재밌는 것도 뭣도 없는 사람들. 그냥 주어진 일을 하기때문에 생활은 해 나가지만, 재밌다거나 활력있는 건 없는 상태라고 볼 수 있죠.

만약 처음 얘기했던 문제인 식이장애를 치료하고 싶다면 심리센터보다는 병원을 가는 게 더 도움이 됩니다. 심리상담가로서 해결할 수 있는 부분은, 지금 정서가 너무 다운돼 있는 문제에요. 기분이 저조하게 가라앉은 게 오래돼서 만성적인 우울감이 유지되고 있는 상태입니다.

이런 우울감은 생활의 기본 과제들이 끝났다는 생각이 들면 더 심하게 느껴집니다. 대학, 직장, 결혼...점점 많은 걸 완수할수록 감정이 둔화된 느낌이 강하게 생겨요. '뭐가 특히 우울한가'에 대해서는 대답하기 힘듭니다.심리센터에서 제안하기로는 증상 치료가 아니라, 내 안에 있는 저조한 무드들, 표현이 어려운 일들이 왜 생겼는가를 고민하는 게 필요합니다.

정윤주 씨는 내가 원하는 것이나 내가 느끼는 감정을 별로 밖으로 뱉어내지는 못하고 살았던 것 같아요. 사실, 원래 사람들은 내가 하고 싶은 걸 못하는 경우가 많죠. 부모님이 당신의 감정을 꺾은 건 아니고, 그냥 표출도 하기 전에 내 안에서 혼자 죽여가고 있었던 거에요. 지레 혼자 꺾은 거죠. 감정이 성가시니까 없는 거로 치는 거고요."

"그렇다고 부모님이 문제라는 뜻은 아닙니다. 더 엄격한 부모님, 더 엄격한 집도 많아요. 하지만 그만큼 자기 생각이 확실해서 반항을 하고 끊임없는 투쟁을 하는 자식들도 있죠. 정윤주 씨는 환경에 기질이 더해져서 지금의 상황이 형성된 거에요. 이렇게 '내가 뭘 원하는지'를 모르면 의욕이 점점 없어집니다. 앞으로 상담을 이어간다면 정서적으로, 내면적으로 쌓인 자기계발식 상담을 권합니다."

그렇게 받은 솔루션은 '나 자신의 감정을 민감하게 표출할 수 있는 법을 배우기'였다. 나는 우울증은 아니었다. 우울증이라는 건 회사를 가고, 밥을 먹고, 잠을 자는 일상 생활을 유지할 수 없는 병적인 증세가 나타나는 질병이라고 했다. 나는 나 자신만의 문제라고 생각했던 성격이 어린 시절부터 축적된 다양한 경험을 바탕으로 나타난 것임을 알고 조금은 편안한 마음이 들었다.

내가 겪어본 결과, 심리 상담은 '특정 사건'때문에 트라우마가 생긴 사람, 내성적이거나 지나치게 외향적인 성격을 교정해 보고 싶은 사람, 자기 자신의 문제를 잘 알고 있는 사람, 부부 관계나 교우 관계, 가족 관계로 고민하는 사람, 그리고 어딘가 털어놓을 곳이 필요한 사람들에게 필요한 작업이다.

만약 일상 생활이 어려운 병적인 증세로 고민하는 사람들은 상담센터보다는 상담과 약물 치료를 병행할 수 있는 기관이 더 도움이 되리라고 생각한다.
상담이 끝나고 며칠 뒤, 이번에는 '우울증'에 대한 의학적인 진단과 치료는 무엇일까 궁금해졌다. 상담과 치료를 병행하는 '마음과 마음' 조방현 원장에게 우울증에 대해 궁금한 점을 질문했다.


'마음과 마음' 조방현 원장님

"대한민국 사람들 불쌍해...한국인은 자기감정 읽고 말하는 데 서툴러"

"어렸을 때부터 무슨 일이 있으면 꾹 참고 인내하라는 교육 받아"

"대한민국에만 있는 이상한 정신질환이 '홧병'...우울하다는 말을 못해 몸으로 나타나는 것"

증상이 '기분이 우울하다'가 아닌 '가슴이 답답하다', '소화가 안 된다',
'가슴에 돌이 있는 것 같다'

Q. '우울증'과' 우울한 감정'은 어떻게 다른가? '우울증'으로 진단이 내려지는 경우는 특별히 어떤 증세가 나타나는 환자인지?

일시적인 우울감이 아닌 '2주 이상'의 우울함이 지속되면 치료가 필요한 단계라고 인식한다.

Q. '심리상담센터'에서 상담만으로도 도움이 되는 경우와 약물 치료가 동반돼야 하는 경우는 어떻게 다른지?

상담과 약물 치료는 함께 가야 한다. 적절한 상담과 약물 치료가 동반되는 게 가장 좋은 케이스다. 둘 가운데 하나만 선택할 이유는 따로 없다.

Q. 온라인에 셀프 진단이 가능한 '우울증 자가 진단 테스트'라는 게 있다. 24점이 넘으면 심한 우울 상태라고 하는데, 아래 내용이 신뢰할 만한 질문인가?

그렇다. 위 예시는 BDI라고 정신의학에서 쓰는 가장 일반적인 테스트다. 여기서 기준점 이상이 나온다면 병원을 오는 편이 좋다. 병원에 갈지 말지를 고민한다면 일단 오는 게 좋다. 필요한 사람의 1/10만이 정신과를 찾기 때문에 이미 정신과를 찾은 사람은 거의 100% 정신적 문제가 있는 상태다.

Q. 남들이 봤을 때 사회적으로 성공하거나, 누구나 부러워할 삶을 살고 있음에도 우울증에 걸리거나 이로 인해 극단적인 선택을 하는 경우도 많다. 그 이유는 무엇일까?

개개인의 '무한 책임'이 부여되는 사회가 정신적인 병을 심화한다. 과거에는 비가 안 와서 농사를 망치면 '왕의 책임'이었다. 백성의 탓이 아니었다. 하지만 지금은 농사를 망치면 농사를 지은 개인의 책임이다. 국가가 개개인의 무한 책임을 덜어주려는 시스템을 제공해야 한다. 이건 거시적 관점이고, 개인적으로는 남과 비교하거나 너무 큰 목표를 성취하려는 조급함을 덜고 천천히 가려는 노력이 필요하다.

Q. 우울증도 유전적 요인이 있는가? 있다면 그 비율은 어느 정도인지?

유전적으로 같고 별도의 가정에서 자란 일란성 쌍둥이를 비교해본 결과, 유전적으로 같고 환경은 다른 상황에서 60~70%가 조울증을 포함한 우울증의 발병률이 일치했다.

Q. 사람들은 우울증에 걸린 사람이 '정신이 나약하기 때문'이라고 쉽게 말하곤 한다. 이에 대한 정신과 의사로서의 의견은 어떠한가?

감정을 있는 그대로 인정해줘야 한다. 부모는 자녀 세대에게 책임을 전가하거나 해결책을 주려고 해서는 안 된다. '우울하니까 조금 놓아도 된다, 천천히 가도 된다, 실패한 게 아니다'라고 말할 수 있는 여유가 필요하다. 인생을 큰 산으로 보고, 내려갈 수도 있고 올라갈 수도 있고, 돌아갈 수도 있다는 걸 인정해줘야 한다.

Q. '가면 우울증'에 걸린 환자는 주변에서 보기에 우울증에 걸렸다는 사실을 알 수 없다고들 한다. 가면 우울증은 어떤 증세를 말하는가?

이것도 자기감정을 못 읽으니까 다른 형태의 표현이 나오는 거다. 우울한 걸 감추고 다른 형태로 나타나는 증세를 뜻한다. 환자 중에 몸이 아프다는 노인이 있었는데, 6개 대학 병원에서 온갖 건강검진을 했음에도 아무런 이상이 나타나지 않았다. 결국 정신과를 찾아서 우울증 치료를 했더니 한 달 만에 깨끗이 나았다. 청소년, 유아의 경우 짜증을 낸다든지 배가 아프다든지 하는 형태로 우울한 감정이 나타나기도 한다.

Q. 심리학 치료 / 정신과 진료의 경우 비용은 얼마나 드는지? 보험은 적용되는지?

병이 있어서 우울증이 온 특이 케이스를 제외하면, 건강 보험으로 혜택을 볼 수 있다. 내과에 가서 진료하는 것과 똑같다. 첫 상담에서 심리검사 시 드는 비용(2~5만 원)을 제외하면 한 번 내원 시 만 원 내외면 된다.

Q. 우울증에 도움이 되는 신체적/ 정신적 활동은 무엇이 있을까?

우울증을 호전시키는 최고의 활동은 운동이다. 조깅을 하면 심장이 빨리 뛰고, 뇌의 혈액순환을 촉진하고 신경 재생 호르몬이 나온다. 정신질환도 모든 신체질환과 마찬가지로 운동, 규칙적인 생활, 식생활, 수면이 중요하다. 햇빛을 많이 보는 게 좋다. 겨울에는 햇빛이 적어서 우울증 환자가 더 늘어나기도 한다. 12월 22일(동지)가 지나갔지 않나? 이제 다시 해가 길어져서 의사로서는 한숨 돌리게 됐다. (웃음)

[해보니 시리즈] 다음 편은 경희대학교 정신과 전문의 백종우 교수를 찾아 궁금한 점을 물어보고, 기자가 직접 그림과 문장을 이용한 심리검사를 수행한 이야기로 이어집니다.

YTN PLUS 정윤주 기자
(younju@ytnplu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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