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단·재래시장 세밑 현장에선]"20년 장사했지만 적자는 처음..인건비 오를 내년 더 두려워"

박해욱 기자 2017. 12. 26. 17: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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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드 직격탄에 거리 한산..간간이 기계 돌아가는 소리만
오프라인 장사에 길든 소공인들 새판로 찾기도 쉽지 않아
정부 지원대상서 대부분 제외.."고스란히 부담 떠안아야"
서울 종로구 창신동에 있는 봉제 골목 전경. 이 골목을 중심으로 창신동 주변에는 1,000여개의 봉제공장이 밀집돼 있다. /박해욱기자
서울 종로구 창신골목시장. 1호선 동대문역 4번 출구에서 시작되는 골목시장은 인근 시장 상인과 관광객들이 찾는 명소지만 경기 위축과 관광객 감소로 힘든 시기를 보내고 있다. /박해욱기자
[서울경제] 1호선 동대문역 3번 출구를 나오자 창신시장의 좁은 골목 양옆으로 족발·팥죽 등을 파는 상점들이 빼곡했다. 이 골목을 5분 정도 걸어 올라가다 보면 그 끝에 창신동 봉제골목이 나온다.

창신동은 소공인 집적지와 소상인 재래시장이 맞닿아 있는 독특한 공간이다. 대한민국 의류 유통 1번지인 평화시장이 인근에 있는데다 쇼핑을 위해 이곳을 찾는 내외국인들이 붐비는 곳이다.

26일 찾은 창신시장은 그러나 연말의 들뜬 분위기를 찾아보기 어려웠다. 창신4가길에서 시작되는 봉제골목 좌우로 봉제공장들이 즐비했지만 일부 사업장에서만 간간이 기계 돌아가는 소리가 들려올 뿐 북적거림은 없었다.

골목 한쪽에서 생산제품을 트럭에 적재하던 직원에게 집적지 분위기를 물었더니 “좋을 게 뭐가 있겠냐”는 퉁명스러운 반문이 되돌아왔다. 그는 “두세 달 바싹 일하고 한 달 쉬다가 다시 다음 계절 옷을 준비하는 게 이 동네 일인데 오더(주문)가 줄어서 예전보다 쉬는 기간이 길어졌다”고 말했다.

점심 시간대였지만 오가는 손님은 많지 않았다. 소상공인 경기에 온기가 좀처럼 살아나지 않는 상황에서 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THAAD·사드) 여파로 중국인 관광객이 급감한 것이 직격탄이 된 듯했다. 박진현 창신동 의류제조 소공인특화지원센터 과장은 “동대문 의류시장은 브랜드에 비해 제품 생산주기가 짧아 빠른 생산에 익숙한데 경기 위축 영향으로 주문량이 크게 줄었다”며 “통상적으로 1년 중 5~6개월 정도가 성수기였다면 이제는 성수기와 비수기의 간극이 역전돼서 비수기가 더 길어진 상황”이라고 전했다.

봉제 업계는 주얼리에 비하면 그나마 사정이 나은 편이다. 주얼리는 경기가 위축되면 가장 먼저 줄이는 지출항목인 탓에 장기 불경기 영향을 그대로 받는다. 취재차 들른 종로3가역 인근의 금은방 업주는 “20년 주얼리 하면서 한 번도 적자를 본 적은 없었는데 올해는 그 기록이 깨질 것 같다”고 푸념했다.

최용훈 서울주얼리특화지원센터장은 “주얼리 소비가 줄어드는 상황에서 금값마저 크게 올라 일감이 지난해보다 더 줄어들었다”며 “판로를 늘려야 하는데 기존 소공인들은 나이도 많고 오프라인 위주 판로에 길들어 있어서 대안을 찾기가 쉽지 않다”고 밝혔다.

경기불황도 큰 문제지만 정작 소상공인들 사이에서는 내년부터 시작되는 최저임금 인상, 근로시간 단축에 대한 위기감이 더욱 팽배해지고 있었다. 원청기업의 4~5차 밴더로 취급되는 소공인들은 원청업체의 단가 후려치기를 맨 뒷단에서 받아내야 한다. 납기일을 맞추지 못하면 주문 취소 등의 보이지 않는 페널티가 뒤따라오기도 일쑤다.

공급가격을 인상해서라도 비용 인상분을 보전해야 하는데 대기업 원청에서부터 시작되는 단가 인하 압력 탓에 언감생심이다. 그 결과 인건비 인상 부담은 온전히 사업주의 몫이 될 수밖에 없다. 윤정호 문래소공인지원센터장은 “소공인들은 경기 위축 같은 외부여건보다 인건비용 상승이라는 내부요인을 더 두려워하고 있다”며 “문래동의 경우 납품단가를 올리는 것이 매우 어려워서 인건비 상승 부담을 온전히 받아내야 하는데 마진율이 박한 상황에서 비용을 더 지불하면서 사람을 쓰기는 굉장히 어려운 일”이라고 지적했다.

박 과장은 “일당제 고용인력의 경우 생산량에 따라 받아가는 임금이 달라지는 구조라 최저임금 인상 조치가 직접적으로 전해지지는 않지만 사회 전반적인 인건비 인상 효과를 무시할 수 없지 않느냐”며 “특히 우리 인력들은 4대 보험 가입자가 아니어서 정부가 진행하는 고용지원금을 받을 수도 없다”고 우려했다.

인건비 상승 압력은 소공인보다 소상인들에게 더욱 가혹하게 다가오고 있었다. 자동화 설비를 구축하거나 해외수출 등에서 판로를 개척할 수 있는 소공인들과 다르게 소상인들은 서비스업 특성상 비용구조에서 인건비가 차지하는 비중이 높고 신규 판로를 개척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이충환 수원못골시장 상인회장은 “경기도 안 좋고 대형 유통업체의 상권 침탈이 심해지면서 이벤트 세일이나 공연 개최 등 상인들의 판촉 역량이 무의미해진 상황”이라며 “이런 상황에서 신규 고용은 엄두도 내지 못한다”고 호소했다. /박해욱기자 spooky@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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