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로벌기업, 그들은 한국에 무엇인가]<7>4차 산업혁명 원유 '데이터' 쓸어담는 그들

최호 2017. 12. 26. 17:00
음성재생 설정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게티이미지뱅크

모든 기업이 빅데이터에서 금맥을 찾는다. 개인 성향을 파악한 맞춤형 상품을 내놓고 해결하지 못한 의학 난제 해결에 도전한다. 데이터를 '4차 산업혁명 시대 원유'라 부르는 이유다.

문제는 데이터 확보 경쟁에서 출발과 파이프라인 굵기까지 우리 기업이 절대 열세에 놓인 점이다. 몇몇 글로벌 기업이 전 세계 데이터를 빨아들이고 있다. 독점에 가깝다. 확보한 데이터를 무기로 이익과 권력을 강화, 장벽을 쌓는다. 철옹성 안에서 그들만의 리그가 펼쳐진다.

◇글로벌 기업은 '데이터 진공청소기'

조지 오웰은 소설 '1984'에서 정보를 독점해 사회를 통제하는 권력을 '빅 브라더'라고 했다. 데이터를 독점해 시장에서 막강한 권력을 누리는 글로벌 기업은 소설 속 빅 브라더 모습과 다르지 않다.

구글은 최근 안드로이드 스마트폰 사용자의 위치 정보를 무단으로 수집하다가 들통났다. 우리나라 안드로이드 스마트폰 사용자 비율은 80%나 된다. 국민 대다수의 위치 정보를 동의 없이 수집했을 수도 있다. 누구나 항상 스마트폰을 지니고 다니는 것을 감안하면 24시간, 사용자의 '일거수 일투족'을 감시할 수 있는 구조다.

특정 지역의 스마트폰 사용자를 대상으로 맞춤형 광고 등 마케팅 시험을 했다는 의혹이 제기됐다. 위치정보법에 따르면 이용자 동의 없이 개인 위치 데이터를 수집하면 형사 처벌 대상이다. 구글코리아는 “메시지 알림서비스 품질 개선 기술을 테스트하는 과정에서 스마트폰이 최근에 교신한 기지국 정보를 구글 서버로 전송했다”면서 “이 정보를 받거나 활용하지 않았다”고 선을 그었다.

과거 구글의 행적을 보면 더 큰 의구심을 지울 수 없다. 구글은 2014년 사진 지도 서비스 '스트리트뷰'로 무선랜(와이파이) 정보를 무단으로 수집하다가 적발됐다. 당시 방송통신위원회로부터 과징금 2억1000여만원을 부과 받았다. 사안에 비해 터무니 없는 솜방망이 처벌이라는 질타가 쏟아졌다. 구글은 인공지능(AI) 스피커 '구글 홈 미니'를 이용, 사용자의 대화 내용을 녹음한 것도 드러났다.

페이스북도 데이터 포식 의혹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페이스북 계정에 로그인한 채 다른 웹사이트에서 특정 주제어를 검색하면 페이스북은 그 사람의 검색 데이터를 얻을 수 있다. 페이스북에서 '좋아요'를 누르면 데이터로 남는다. 막대한 개인 정보가 개인 동의 없이 활용됐다.

독일이 먼저 제동을 걸었다. 독일 연방독점감독청(FCO)이 이달 페이스북이 사용자 데이터를 무분별하게 수집하고 독점한 것과 관련해 실태 조사에 들어가는 한편 페이스북에 내년 상반기까지 부당 사용을 막기 위한 방안을 제시하라고 공식 통보했다.

구글과 페이스북이 데이터를 합법으로 수집했다 해도 논란은 커질 수밖에 없다. 이들이 데이터 시장을 사실상 선점하고 아주 오랫동안 독점 지위를 누릴 수 있기 때문이다. 개인 정보를 포함한 막대한 양의 데이터를 쓸어담았다. 후발 주자가 데이터에 접근할 수 있는 길은 좁아졌다. 사용자는 개인 정보가 어떻게 쓰이는지 파악할 길이 없다.

이들이 데이터 블랙홀이 된 이유는 명확하다. 구글은 검색뿐만 아니라 이메일, 유튜브, 안드로이드, 애플리케이션(앱) 장터 등 다양한 서비스를 제공한다. 페이스북은 세계에서 가장 많은 이용자를 보유한 사회관계망서비스(SNS)다.

이용자 정보를 시시각각 얻는다. 누가 어느 사이트에서 무엇을 찾고 어떤 동선으로 출퇴근하는지 상세하게 들여다볼 수 있다. 다양한 데이터에서 소비자의 성향, 특성을 끄집어낸다.

이를 기반으로 경쟁 사업자가 따라할 수 없는 서비스를 선보인다. 데이터 독점 결과는 초과이익과 무한 권력으로 이어진다.

우리나라에서 네이버와 카카오의 동영상 플랫폼 시장 점유율은 각각 3%에도 미치지 못한다. 유튜브라는 거대한 벽에 막혔다. 검색 시장에서도 구글의 점유율은 빠르게 상승하고 있다.

페이스북도 빠르게 영토를 늘려 나갔다. 모바일 앱 분석업체 앱에이프애널리틱스에 따르면 올해 월별 실사용자 수에서 '밴드'는 월 1500만명, 카카오스토리는 1300만명을 각각 기록했다. 페이스북과 인스타그램은 각각 1300만, 1000만명이다.

구글 글로벌 광고 매출은 740억달러로 전체 매출의 30%를 차지했다. 페이스북의 한국 광고 시장 점유율은 2011년 3%에서 지난해 15%를 넘었다.

남영준 중앙대 교수는 “구글·페이스북 등 글로벌 거대 기업은 데이터 시장에서 회오리와 같다”면서 “사용자는 가장 큰 회오리에 수렴하고 후발 기업은 경쟁에서 도저히 이길 수 없다”고 설명했다. 남 교수는 “사용자는 복합 및 다양한 정보를 보유한 1등 서비스를 이용한다”면서 “정보와 부(富)가 편중되는 구조가 고착화되면서 제2의 구글, 페이스북 같은 새로운 경쟁 기업이 나타나기 어려운 상황”이라고 덧붙였다.

◇경쟁기업·사용자 모두에게 '毒'

글로벌 기업의 데이터 독점은 경쟁 기업과 사용자 모두에게 피해를 준다. 시장에서 독점을 막는 방법은 경쟁 촉진이다. 데이터 시장에선 경쟁이 사실상 불가능해졌다. 후발 주자에게 데이터 시장의 진입 장벽은 '넘사벽'이다. 철저하게 '부익부 빈익빈' 논리가 작용했다. 데이터가 거래되지 않고, 우월한 지위의 사업자가 데이터와 사용자를 모두 독점한다. 보유한 정보가 많은 기업이 정보를 더 많이 쓸어담는 구조가 고착화됐다. 압도하는 데이터 보유량, 해외 기업의 지위를 이용한 규제 피하기 등이 복합 작용한 결과다.

스타트업 등 후발 주자가 공존할 수 없는 토양이 더 심각한 문제다. 스타트업 관계자는 “기업·소비자간전자상거래(B2C)의 고객 정보 확보가 필수인 가운데 데이터와 사용자 부족 악순환으로 정보 빈곤에 시달리고 있다”면서 “대다수 사업자가 정보 불균형이 굳어져 사업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고 말했다.

데이터 독점이 산업 측면에서 정보통신기술(ICT) 생태계를 파괴했다면 사용자 관점에선 개인 정보 유출 문제를 야기한다. 구글과 페이스북이 이용자의 동의 없이 정보를 수집하고 계열사와 유통한 사례가 적지 않다. 사용자는 자신의 정보가 어떻게 활용, 보관, 유통되는지를 알지 못한다. 해킹 등 문제가 발생하면 개인 정보가 어떻게 악용될지, 피해가 얼마나 불어날지 가늠하기조차 어렵다. 우리나라에서 발생한 데이터가 국민 동의 없이 해외 서버로 이동하는 것도 데이터 주권 관점에서 심각한 문제다.

◇'데이터 주권국'으로서 합리화한 규제 만들어야

글로벌 기업의 데이터 독점, 불공정 경쟁을 막기 위해선 합리화한 규제의 틀이 있어야 한다. 우리나라를 비롯한 세계 각국이 이런 논의의 출발 선상에 섰다.

공정거래위원회는 구글이나 페이스북의 빅데이터 정보 독점에 따른 불공정 행위 규제를 검토하기 시작했다. 데이터 수집, 활용 과정에서 불공정 행위가 발생하면 독점금지법을 적용할 계획이다. 우리나라 통신망에 무임 승차해서 대가 없이 데이터를 빼내 가고, 후발 주자의 진입을 막았다고 인식했다. 공정위는 이와 관련해 '빅데이터 이용 행위에 대한 경쟁 제한성 검토' 연구를 시작했다. 사업자가 소비자에게 데이터를 무료로 제공하는 사업 모델을 채택할 경우 발생할 수 있는 경쟁 사업자 배제 효과 여부, 경쟁 사업자에 대한 빅데이터 접근 장벽 형성에 따른 경쟁 제한 가능성을 분석했다. 해외 사례를 바탕으로 데이터 관련 사업 모델의 경쟁 촉진, 제한 효과도 짚었다. 이를 바탕으로 공정거래법 집행·해석에 적용할 가이드라인을 만든다.

공정위는 2019년부터는 기업 인수합병(M&A)으로 '데이터 독점'이 발생하면 M&A를 무력화할수 있는 규정도 만든다. 데이터 시장을 선점한 글로벌 기업의 무분별한 한국 내 사업 확장에 제동을 건다. 이런 내용을 담은 '기업 결합 심사 기준'(공정위 고시)도 손질한다.

공정위가 글로벌 기업의 데이터 독점을 홀로 감시·감독하기엔 역부족이다. ICT 전담 부서가 아닌 데다 새로운 유형의 불공정 행위를 핀셋으로 솎아 낼 전문성을 갖추기가 어렵기 때문이다. 규제 개선과 더불어 데이터를 공유하는 생태계 조성이 시급하다.

남 교수는 “규제도 필요하지만 데이터를 공유할 수 있는 정교한 상생 플랫폼 조성이 중요하다”면서 “구글, 페이스북 등이 독점한 개인 정보는 민간이 접근할 방법이 없다. 기업 간 사용할 수 있는 공유 플랫폼 조성 논의가 필요한 시점”이라고 강조했다.

남 교수는 “데이터 독점 등 불공정 행위 대응 시 공정위와 방송통신위원회 협력으로 전문성을 확보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특별취재팀=안호천차장(팀장),유선일·최호·권동준·정용철·오대석·최재필·이영호기자 hcan@etnews.com

Copyright © 전자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 기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