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럼프·시진핑·푸틴, 터프 가이들이 이끈 세계는 더 안전해졌나

정효식 2017. 12. 26. 16: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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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적으로 권위주의와 자국 중심주의 확산
김정은, 두테르테, 에르도안 등 닮은꼴도 등장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과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트럼프 대통령과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 시진핑(習近平) 중국 국가주석,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은 자타가 공인하는 거친 남성 지도자들이다. 세 사람의 ‘터프 가이’들이 이끈 세계는 좀 더 평안했을까.

영국 일간 가디언이 26일 지난 한 해를 결산하며 던진 질문이다. 셋 모두 민주적 절차보다 강한 힘을 선호하고 권위주의적이며 무엇보다 누구에게도 뒤지지 않는 센 자존심(ego)를 갖고 있다는 게 공통점이다. 이들의 닮은꼴들도 속속 등장하는 등 전 세계적으로 권위주의와 자국 중심주의가 확산됐다는 것이 가디언의 평가다.

━ 미국 우선주의 외치며 국제질서 스스로 허문 트럼프

먼저 도널드 트럼프. 2017년 1월 20일 그의 대통령 취임은 미국은 물론 세계 질서에도 일대 사건이었다. 입대를 포함해 선출직이든 임명직이든 단 한 번도 공직을 맡은 경험이 없는 미국 대통령의 탄생은 처음이었다. 미국 우선주의(America First)를 앞세워 미국이 주도하던 다자 국제질서에서 스스로 철수하기 시작한 게 혼돈의 시작이었다. 대선 기간부터 1945년 2차 세계대전 이후 미ㆍ유럽 안보동맹의 근간인 북대서양조약의 방위공약 준수를 약속하는 대신 방위비 지출 확대를 요구해 유럽을 불안하게 했다. 한국과 일본을 향해서도 자국 방어는 스스로 책임지라며 미군 주둔비용 분담금 확대를 노골적으로 요구했다.

북핵 문제 해법을 놓고 혼선을 보인 것도 트럼프 대통령 본인이었다. 그는 취임 초기엔 북한과 협상 의지를 보였다. 대선 유세에서 “김정은과 만나 햄버거를 먹으며 협상하겠다”고 했던 트럼프 대통령은 지난 5월 블룸버그와 인터뷰에선 “적절한 상황이 된다면 나는 김정은과 반드시 만날 것”이라며 “만나면 영광”이라고 말했다. 그러던 그는 지난 8월부터 “화염과 분노”“완전한 파괴”“리틀 로켓맨”“병든 강아지” 등 말싸움을 벌이며 벼랑 끝 전술과 미치광이 전략으로 북한과 대치했다.

가디언은 “이런 전술은 김정은이 미국이 곧 공격할 것이라고 생각하게 하여 순간의 오판이 재앙을 초래할 수도 있는 바보 같은 짓이자 가장 위험한 행동”이라고 경고했다. 최근 렉스 틸러슨 국무장관이 북한에 “전제조건 없는 대화”를 제의했다가 “지금은 대화할 때가 아니다”라는 백악관의 제지에 철회하기도 했다.

마이클 카펜터 애틀랜틱 카운슬 선임연구원은 “올해의 가장 큰 특징은 대통령과 장관들의 발언에서 엄청난 격차가 존재한다는 것”이라며 “이는 동맹국과 적국 모두를 혼란스럽게 만들었다”고 지적했다. 하지만, 북한은 100kt을 넘는 역대 최대 규모의 6차 핵실험과 대륙간탄도미사일(ICBM) 세 발을 포함해 25발을 시험 발사해 핵무장 완성의 마지막 문턱에 왔다. 미 중앙정보국(CIA) 분석관 출신인 수미 테리 전략국제문제연구소(CSIS) 선임연구원이 “북한 핵 프로그램은 90~95% 완료됐다”고 평가할 정도다.

━ 시진핑, 트럼프 순진함 활용해 초강대국 부상 노려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에겐 국내적으로 1인 체제를 완성했을뿐 아니라 국제적으로 초강대국을 선언한 해다. 지난 10월 당 대회에서 “시진핑 중국 특색의 사회주의 신시대 사상”을 공산당 당장(黨章)에 명시하고 정치국 상무위원을 측근들로 채웠다. 중국의 부상은 아태 지역은 물론 아프리카, 라틴아메리카 등 세계 곳곳에서 미국의 전략적 우위와 영향력을 위협하고 있다.

하지만 트럼프 대통령은 지난달 아시아 순방 중 시 주석의 권력장악에 지나치게 도취돼 칭찬으로 일관하면서 전략적 순진함을 보였다고 가디언은 분석했다. 대북 압박에 우선순위를 두면서 무역적자와 남중국해에서의 군사적 팽창, 대만 위협, 티벳 인권탄압 등에 대해선 아무 문제 제기를 않은 채 시 주석에게 프리패스를 제공했다는 것이다. 시 주석은 거꾸로 트럼프 대통령의 자만심과 권위주의 성향을 십분 활용해 미국과 무역 전쟁 같은 정면 충돌을 피한 채 대북 압박에서도 원유공급 중단 요구 같은 결정적 조치는 거부하고 있다.

또 중국은 트럼프 대통령이 환태평양경제동반자협정(TPP)과 파리기후협정을 탈퇴하자 이를 아태 지역은 물론 국제 사회에서의 영향력 확대 기회로 활용하고 있다.

━ 푸틴 2016년 러시아 대선 개입 약점 잡아 목소리 확대 블라디미르 푸틴 대통령은 트럼프 대통령이 올 최대 업적 중 하나로 삼고 있는 이슬람국가(IS)와 전쟁에서 신뢰할만한 파트너임을 각인시켰다. 미 의회가 2014년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에 따른 제재를 강화하고 있지만, 트럼프 대통령은 푸틴 대통령에 대한 개인적 신뢰를 거듭 밝혔다. 이는 트럼프-시진핑 관계와 유사하다. 로버트 뮬러 특별검사의 러시아 미 대선 개입 사건 수사와 관련해 미 정보기관의 판단은 믿지 않는다면서도 “푸틴 대통령이 대선 개입은 없었다고 누차 말했고 그를 믿는다”고 한 게 대표적이다. 푸틴 역시 트럼프 리더십의 약점을 활용해 우크라이나에서의 러시아군 철군은 물론 대북 제재 동참 요구도 거부하고 있다.

세계 안보의 가장 큰 위협 중 하나인 김정은 북한 노동당 위원장은 앞선 터프 가이 모방 사례로 꼽힌다. 김정은은 트럼프 대통령의 대북 압박을 정권붕괴 위협으로 간주하고 핵 무기와 대륙간탄도미사일 완성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가디언은 북한의 탄도미사일 개발 자체는 새로운 현상이 아니지만, 트럼프와 김정은이란 두 명의 변덕스럽고 경험 없고 어리석은 지도자가 대치하는 상황이 2017년의 새로운 현상이라고 지적했다.

마약범에 대한 즉결처분으로 살인 대통령이란 별명을 얻은 로드리고 두테르테 필리핀 대통령, 2016년 실패한 쿠데타를 빌미로 세속적 민주주의 전통을 무너뜨린 터키 에르도안 총리, 사촌 형을 왕세자에서 몰아내자마자 중동 패권을 둘러싸고 권력게임을 벌이고 있는 모하마드 빈 살만 왕세자도 모방꾼 지도자로 꼽혔다.

유럽의 경우 내부적으론 포퓰리즘과 민족주의로의 회귀 움직임을 보이고 있는 가운데 중국의 급부상과 미국의 글로벌 리더십 약화로 야기된 새로운 시대를 헤쳐나가야 하는 힘든 상황을 맞고 있다는 것이 가디언의 진단이다.

워싱턴=정효식 특파원 jjpol@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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