옷도 못입고 맨발 뛰쳐나와.. 긴박한 화재 탈출 영상입수

박진호 2017. 12. 26. 15:23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불나자 주민들 옷도 못 입고 맨발로 뛰어나와
건물 설계도 없었던 소방대원들 우왕좌왕해
일부 주민들 불 빨리 꺼 달라며 강력하게 항의
민간 사다리차 8층에 있던 3명 6분 만에 구조

━ [단독]제천상가 비상계단 쪽 CCTV로 본 화재 초기상황 재구성

66명의 사상자(사망 29명·부상 37명)를 낸 충북 제천 복합상가(노블 휘트니스 앤 스파) 건물 참사의 충격파가 쉽게 가라앉지 않고 있다. 건물 2층 여탕에서만 20명의 여성이 희생되는 등 워낙 많은 인명피해가 발생했기 때문이다.

중앙일보 취재팀은 불이 난 제천 건물의 북측 비상계단 주변을 담은 폐쇄회로TV(CCTV) 영상을 단독으로 입수해 화재 발생 초기 건물 주변 움직임을 분석해봤다.

이 동영상을 보면 화재 발생 직후의 탈출 장면, 소방대 출동, 에어매트 구조, 민간인의 사다리 구조 장면 등 긴박했던 화재 초기 상황이 고스란히 담겨 있다.
충북 제천 스포츠센터 2층 여성 사우나의 막혀버린 비상구 입구. 29명의 사망자 중 20명의 사망자가 이 곳에서 발생했다. [소방방재신문 제공=연합뉴스]
3층 남자 목욕탕에서 비상계단을 통해 탈출한 주민이 옷도 제대로 챙겨입지 못하고 대피하고 있다. [사진 독자제공]
이번 화재는 지난 21일 오후 3시53분쯤 첫 신고가 접수됐다.

중앙일보가 입수한 영상을 보면 첫 신고 이후 6분만인 이날 오후 3시 59분쯤 제천시 하소동의 불난 건물 비상계단 앞 골목으로 민소매를 입은 남성이 점퍼를 들고 급히 뛰어나왔다.

이어 한 노인이 미처 신발을 신지 못하고 맨발로 나왔고 이어 한 아이가 상의를 입지 못한 채 밖으로 대피했다. 일부 옷을 입지 못한 주민들을 침낭을 덮고 나오기도 했다.

건물 3층 목욕탕에서 탈출한 박치영(57)씨는 “불이야 소리를 듣고 목욕탕 밖으로 나와보니 검은 연기가 올라오고 있었다”며 “펑펑 소리가 들리는 상황에서 스프링클러는 작동하지 않았다. 다행히 직원이 비상계단으로 나가라고 안내해 무사히 빠져나올 수 있었다”고 당시 상황을 전했다.
소방대원들이 에어 매트를 들고 현장으로 가는 모습. [사진 독자제공]
에어 매트로 떨어진 시민을 구급차로 옮기는 소방대원들. [사진 독자제공]
오후 4시8분쯤에는 소방관 1명이 비상계단 쪽에 도착했다. 하지만 시민들에게 '접근하지 말라'고 안내하는 손짓을 한 뒤 20~30초가량 머물 다 어디론가 뛰어갔다.

그리곤 2분 뒤인 4시10분쯤 이 소방관은 다른 소방관과 함께 에어매트를 들고 다시 나타났다. 또 5분 뒤인 4시15분쯤엔 에어매트로 떨어진 사람을 구급차로 옮겼다.

앞서 오후 4시13분쯤에는 옥상으로 올라간 시민들을 구하기 위해 제천소방서 사다리차가 도착했다. 하지만 골목이 좁아 들어오지 못하고 1분가량 머물다 다른 곳으로 이동했다.
화재 발생 20여분만에 사다리차가 현장에 도착했지만 골목이 좁아 진입을 하지 못했다. [사진 독자제공]
7분 뒤인 4시20분쯤 굴절차도 도착했지만, 이 차 역시 진입이 어려워 5분 뒤 다른 장소로 이동할 수밖에 없어 보였다.

현장에 있던 한 주민은 “화재 발생 초기 소방차량이 골목으로 들어갈 수 있었다면 피해를 줄일 수 있었을 것”이라며 “지나서 생각해보면 이번 참사는 초기 대응 과정에서 아쉬운 점이 너무 많다”고 말했다.

이날 오후 4시35분쯤엔 한 노인이 "불을 빨리 꺼달라"며 소방대원들에게 거칠게 항의하는 모습도 보였다.
소방대원들에게 빨리 불을 꺼달라며 항의하는 주민. [사진 독자제공]
소방대원들이 이날 여탕이 있는 2층에 처음 진입한 건 오후 4시 43분인 것으로 알려졌다. 이 영상엔 진입 1분 전인 42분에 한 대원이 마스크를 쓰는 모습이 담겨 있다.
하지만 대원들이 비상계단을 통해 2층 비상구(철문)를 뚫고 진입했을 땐 이미 여탕에 있던 여성 20명이 모두 숨진 뒤였다.
지난 21일 29명이 숨지는 화재가 발생한 제천 스포츠센터 건물 비상구. 박진호 기자
비상계단을 통해 2층 여자 목욕탕에 진입하기 위해 마스크를 쓰는 소방대원. [사진 독자제공]
2층에 진입했던 한 소방대원은 “문을 열자 검은 연기가 나와 앞을 볼 수 없었다. 어렵게 여탕이 있는 2층 안으로 들어갔지만 한 명도 구조하지 못했다”고 말했다.

이를 두고 그동안 비상구 진입 외에도 2층 황토방 유리창을 깨고 진입했어야 한다는 지적도 나왔다.

유족들은 “2층 여자 목욕탕 휴게실 옆 황토방 유리창은 사람 한 명이 들어갈 크기다. 이 창을 통해 구조대가 진입했다면 20명을 모두 살렸을 것”이라고 울먹였다.

현장에 있었던 주민 김모(49)씨는 “소방 인원인 부족해서 우선순위가 밀렸을 수 있지만 이쪽(비상구·황토방 창문)으로 진입했으면 더 많은 사람이 구조될 수 있었을 것”이라며 “불이 난 앞쪽엔 사람이 많았지만 구조에 큰 도움이 되지 않았다”고 지적했다.
21일 발생한 화재로 29명이 숨진 제천 복합상가 건물에서 탈출을 시도하는 남성. 해당 건물은 2010년 8월 9일 7층으로 사용 승인이 났다. [사진 인스타그램, 뉴스1]
8층 베란다에 있는 주민 3명을 구한 민간 사다리차. [사진 독자제공]
반면 이 영상에는 이날 오후 4시58분쯤 도착한 민간 사다리차가 화재 당시 8층 베란다 난간에 있는 3명을 구조하는 모습도 담겨 있다. 건물 외벽 청소와 유리 설치 일을 하는 이양섭(54)씨 등이 3명을 구하는 데까지 걸린 시간은 단 6분이었다.

이씨는 “멀리서 연기를 보고 큰불이라고 생각해 화재 현장 부근의 친구에게 전화했더니 건물 옥상에 여러 명이 매달려 구조를 기다리고 있다고 했다. 서둘러 사다리차를 몰고 건물 외벽에 붙였다. 구조 직후 얼굴이 새까만 3명의 얼굴을 보자 다리에 힘이 쭉 빠졌다”고 말했다.

이번 사고 원인을 수사 중인 경찰은 중앙일보 취재팀이 입수한 동영상을 별도로 확보해 분석 중인 것으로 확인됐다. 이 동영상에 담긴 내용은 소방대 출동 이후 화재 초기 대응이 적절했는지를 판단하는 데 중요한 자료가 될 것으로 경찰도 보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제천=박진호 기자 park.jinho@joongang.co.kr

Copyright © 중앙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 기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