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은 우리를 전자제품처럼 수출했다"

이석원 스웨덴 통신원 입력 2017. 12. 25. 1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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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외동포' 자격 잃은 스웨덴 한인 입양인들의 울분

“우리는 우리의 의지와 상관없이 대한민국으로부터 버려진 사람들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대한민국을 찾으려고 노력했다. 그러나 대한민국 정부는 아무런 도움을 주지 않는다. 우리는 ‘외국국적 동포’로서 ‘재외동포’가 돼야 한다.”

《수잔 브링크의 아리랑》의 나라 스웨덴에서 21세기 ‘수잔 브링크’들이 한국 정부를 향해 항의하고 있다. “왜 우리는 대한민국의 끄트머리도 잡을 수 없는 것이냐”고. “대한민국 정부는 왜 우리를 자신들에게서 완전히 지워버리려고 하는 것이냐”고.

현재 스웨덴에 거주 중인 한인 입양인은 약 1만1000명. 인접국인 덴마크와 노르웨이에도 각각 9500명이 살고 있다. 유럽 전체 한국인 입양인 6만5000명 중 절반가량이 북유럽 3개 나라에 살고 있는 셈이다. 스웨덴의 1년 이상 장기 거주 대한민국 재외국민이 3100명 정도니 입양인은 그 3배, 재외국민 수가 1000명인 노르웨이는 9배가 넘고, 680명인 덴마크는 14배에 이른다.

그런 그들이 왜 한국 정부를 향해 울분을 토하고 있을까. 1977년 4월 스웨덴에 입양된 다니엘 리(한국 이름 이남원·40)는 “한국은 무책임하고, 우리는 억울하다”고 얘기한다. 이씨를 포함한 해외 입양인들은 이명박 정부 시절 ‘재외동포’ 자격을 상실하고 완전한 ‘외국인’으로 분류된 것에 강한 불만을 표시하고 있다. 그들은 해외 입양인들이 광의(廣義)의 대한민국 국민의 범주에서도 배제됐다고 말한다.

12월2일 스톡홀름 시내에서 열린 스웨덴 한인입양인협회 2017년 송년회 © 이석원 제공

 

“우리에게서 ‘대한민국’ 흔적 지우려 한다”

2008년 3월 개정된 ‘재외동포의 출입국과 법적 지위에 관한 법률’(약칭 재외동포법) 제2조 2항에는 ‘재외동포’ 중 대한민국 국적자인 ‘재외국민’ 외 대한민국 국적자는 아니지만 재외동포의 범주에 포함시키는 ‘외국국적동포’ 규정이 있다. ‘대한민국의 국적을 보유하였던 자(대한민국정부 수립 전에 국외로 이주한 동포를 포함한다) 또는 그 직계비속으로서 외국국적을 취득한 자 중 대통령령으로 정하는 자’를 ‘외국국적동포’라고 한다.

같은 법의 시행령 제3조 2항에는 ‘부모의 일방 또는 조부모의 일방이 대한민국의 국적을 보유하였던 자로서 외국국적을 취득한 자’라고 추가 규정을 해 이른바 3세까지 재외동포 자격을 부여하고 있다.

‘외국국적동포’는 선거권, 피선거권은 물론 대한민국 헌법이 보장하는 국민의 권리를 지니지 않고 있지만, 재외동포법에 의해 체류 자격을 얻고 국내에 주거지를 정해 놓으면 지역의료보험에 가입할 수 있다. 또한 금융이나 부동산 거래에 있어서도 대한민국 국민과 동등한 권리를 누린다. 출입국관리법에 의한 재입국 허가를 받는 불편함도 생략할 수 있다.

그런데 해외 입양인들은 이런 ‘재외동포’의 권리를 박탈당했다. 법 개정으로 더 이상 ‘재외동포’의 자격을 유지할 수 없다 보니 한국 내에서도, 한국을 출입할 때도 다른 외국인들과 똑같은 제약을 받아야만 한다.

이들이 억울해하는 이유는 거기에 있다. 다니엘 리는 “우리는 스웨덴에 입양 올 때 분명 대한민국 여권을 가지고 왔다. 그리고 우리 중 한국 부모님을 찾은 사람도 적지 않다. 그래서 다양한 경로로 대한민국을 스웨덴에 알리는 역할을 한다”고 얘기하며 “스웨덴 사람들은 우리에게서 ‘대한민국’의 흔적들을 분명히 보는데, 한국은 우리에게서 ‘대한민국’의 흔적을 완전히 지우려고 애쓰는 것 같다”며 한국 정부에 대한 비판을 숨기지 않는다.

2016년에 창립 30주년을 맞은 스웨덴 한인입양인협회 회장을 3차례 역임한 마틴 손은 “원래 우리 협회는 재외동포재단에서 지원했다. 그런데 이명박 정부 때 복지부로 이관됐다. 그런 후 한국 정부는 점점 더 우리 협회와 멀어졌다. 스웨덴에 있는 입양인들을 한국 내에 있는 복지부에서 관리한다는 것은 말이 안 된다”고 얘기한다. 그는 한국 정부가 국내 입양과 해외 입양의 차이를 인지하지 못하는 것이라고 단정하고 있다.

스웨덴 한인입양인협회 회장을 역임한 다니엘 리(오른쪽)와 마틴 손 © 이석원 제공

 

65년간 ‘입양아 수출국’ 오명 못 벗는 이유

1994년 스웨덴에 처음 ‘스웨덴 한인입양인 후원회’를 설립해 지금까지 입양인들의 아버지로 불리는 강진중 회장은 “현재 스웨덴에 있는 한인 입양인들은 스웨덴의 재원으로 활약하고 있다. 하지만 아마도 한국 정부는 그런 사실조차도 알지 못할 것”이라고 비판했다. 강 회장은 “중앙아시아나 과거 소비에트 연방에 속했던 나라에 살고 있는 고려인의 경우 3세들까지도 재외동포법에 의거해 ‘재외동포’로 규정하고 그에 상응하는 권리를 부여하면서도 해외 입양인들에게는 그러지 않는 것은 어불성설”이라고 얘기한다.

강 회장은 “현재 스웨덴에 있는 한인 입양인들은 한국인으로서의 정체성을 가지려고 노력하고, 그래서 한인 입양인끼리 결혼하는 경우도 많다. 그들은 분명 한국인의 외모와 DNA를 지니고 있고, 그들의 자녀들도 그렇다”고 강조하며 “해외 입양인에 대한 실질적인 업무를 보건복지부가 아닌 외교부 산하 재외동포재단으로 이관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실제 다니엘 리와 마틴 손도 자신들의 성을 스웨덴 부모님의 성이 아닌 한국 부모님의 성으로 바꿨다. 또 두 사람 모두 같은 처지의 한인 입양인과 결혼해 완벽한 한국인의 유전자를 지닌 자녀들을 낳아 키우고 있다.

스웨덴 사회복지학계의 보고에 따르면, 2차 세계대전 이후 전 세계 해외 입양인 수는 약 50만 명에 이른다. 그런데 그중 40%인 20만 명이 한국의 입양인들이다. 또 남인순 더불어민주당 의원에 따르면, 현재 해외 입양의 경우 국내 입양기관이 받는 수수료가 1600만원에서 2300만원에 이른다. 하지만 해외의 입양 양부모가 현지 입양기관에 지불하는 수수료는 그보다 최대 3배에 이른다고 한다. 그러니 지난 65년간 한국이 ‘입양아 수출국’이라는 오명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것이다.

다니엘 리는 “이제는 해외로 입양을 보내선 안 된다”고 강조한다. 그는 “모든 문제는 대한민국 스스로가 책임지고 해결해야 한다. 해외 입양은 부끄러운 일이다. 버려진 아이들을 한국이 품지 못하고 전자 제품처럼 비행기에 실어서 외국에 수출하는 일은 이제 중단돼야 한다”고 말했다. 

이석원 스웨덴 통신원 sisa@sisajournal.com <저작권자 ⓒ 시사저널,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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