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 준희양 실종전 친부·내연녀 모녀 휴대폰 싹 바꿨다

김준희 2017. 12. 25. 08: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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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북 전주서 38일째 행방 묘연한 5세 여아
경찰, 22일 압수수색..친부 집 등서 발견
이미 확보한 휴대폰과 달라 '스모킹건' 주목
친부·내연녀 등 아동학대 혐의 불구속 입건
1차 영장 반려되자 12일 후 검찰에 재신청
전문가 "안일한 대응, 아동학대 무지" 비판
고준희(5)양을 찾는 실종 전단. [사진 전주 덕진경찰서]
전북 전주에서 두 달 가까이 행방이 묘연한 '고준희(5)양 실종 사건'을 수사하는 경찰이 아이의 친부와 내연녀, 내연녀 어머니가 실종 신고 전인 지난달 초 비슷한 시기에 모두 휴대전화를 바꾼 사실을 확인했다. 압수수색 과정에서 발견된 이들 휴대전화는 당초 경찰이 당사자들의 동의를 구해 확보한 휴대전화와 다른 것들이어서 미궁에 빠진 이번 사건의 결정적 증거인 '스모킹 건(smoking gun)'이 될 수 있을지 수사 결과가 주목된다. 경찰은 그동안 '실종 아동의 보호자'라고 하기엔 수사에 비협조적이었던 이들 3명을 이번 사건의 미스터리를 푸는 핵심 피의자로 보고 수사의 강도를 높이고 있다.

전주 덕진경찰서는 25일 "지난 22일 준희양의 친부 고모(36)씨와 고씨의 내연녀 이모(35)씨, 이씨의 친모인 김모(61·여)씨의 자택 등에 대한 압수수색 과정에서 집 내부에서 이들이 사용한 것으로 추정되는 휴대전화 3대를 확보해 분석하고 있다"고 밝혔다. 김영근 전주 덕진경찰서 수사과장은 "친부 등의 집 안에서 발견된 휴대전화 3대를 압수해 분석 중이지만, 이 전화들이 정확히 언제 사용됐는지는 아직 확인하지 못했다"고 말했다. 다만 김 과장은 "친부와 내연녀, 내연녀 어머니가 서로 연락하며 이번 사건에 대해 입을 맞췄을 것으로 보고 있다"고 덧붙였다.

실종된 고준희(5)양을 찾는 전단. 김준희 기자
경찰은 압수수색에 앞서 이날 친부 등 3명에 대해 아동복지법 위반 혐의로 불구속 입건했다. 지난 8일 준희양에 대한 실종 신고가 경찰에 접수된 지 14일 만이다. 내연녀 어머니 김씨는 실종 시점으로 추정되는 지난달 18일 준희양을 5시간 가까이 혼자 집 안에 놔둔 혐의다. 김씨는 지난 4월부터 실종 전까지 준희양을 돌봤다. 친부 고씨와 내연녀 이씨는 준희양이 김씨 집에서 없어진 사실을 알면서도 20일간 아무 조치도 취하지 않은 혐의로 입건됐다.

경찰에 따르면 준희양은 지난달 18일 김씨가 집을 비운 오전 11시부터 오후 4시까지 5시간 사이에 사라졌다. 김씨는 경찰에서 "딸(이씨)이 사위(고양의 친부)와 심하게 싸우고 '더는 같이 못 살겠다'며 자기를 데리러 오라고 해서 내 차를 몰고 나갔다 집에 오니 아이(준희양)가 없어졌다"고 말했다. 이씨도 "부부싸움 후 남편(고씨)이 홧김에 아이를 데려간 줄 알았다"며 실종 신고를 20일 뒤에야 했다.

전주 아중지구대 소속 한 경찰관이 고준희(5)양을 찾는 전단을 원룸 출입구에 붙이고 있다. 김준희 기자
경찰은 지난 22일 오전 고씨 등 3명을 피의자 신분으로 전환하는 동시에 인편(人便)으로 전주지검에 압수수색 영장 신청서를 보냈다. 전주지법에서 영장을 발부받은 경찰은 이날 오후 5시30분부터 오후 7시까지 1시간30분가량 압수수색을 실시했다. 압수수색 대상은 친부 고씨가 사는 완주군 봉동읍 아파트와 준희양이 최근까지 살았던 것으로 알려진 전주시 우아동 김씨 빌라, 내연녀 이씨가 전남편과 낳은 아들(6)과 사는 우아동 또 다른 원룸 등이다.
실종된 고준희(5)양이 실종 전까지 살았던 것으로 추정되는 전북 전주시 우아동 한 빌라. 김준희 기자
경찰은 압수수색 과정에서 '복도식 아파트'인 고씨의 집 현관문 앞 복도에서 혈흔(血痕)을 발견했다. 이 아파트는 고씨와 내연녀 이씨 모자 등 세 사람이 지난해 11월부터 지난달 18일까지 함께 살던 집이다. 실종된 준희양도 지난 1월부터 3월 말까지 이 집에서 같이 살다 한 살 위인 이씨 아들과 자주 다툰다는 이유로 지난 4월 전주시 인후동에 있는 김씨의 월셋집으로 보내졌다. 경찰은 오는 26일 국립과학수사연구원에 핏자국에 대한 긴급 감정을 의뢰할 예정이다. 감정 결과는 27일이나 28일 나온다.

중앙일보 취재 결과 경찰의 이번 압수수색 시도는 처음이 아니었다. 전주지검에 따르면 경찰은 지난 10일 야간(오후 6시 이후)에 김씨의 전주시 우아동 빌라 등에 대한 압수수색 영장을 신청했지만 반려됐다. 압수수색 대상이 입건조차 안 됐기 때문이다. 검찰 사건 사무규칙 143조 4항에서는 '사람의 신체, 주거, 관리하는 건조물, 자동차, 선박, 항공기 또는 점유하는 방실(房室)에 대해 압수·수색·검증 영장을 청구할 때는 피의자를 입건해야 한다'고 명시돼 있다. 김한수 전주지검 차장검사는 "당시 (압수수색 영장을) 접수한 검사가 범죄 인지 및 입건을 해서 재신청하라고 지휘했다"고 말했다.

지난 18일 전북 전주시 우아동 아중저수지에서 고무보트를 탄 소방 구조대원들이 고준희(5)양을 찾고 있다. 저수지가 얼어 수색 작업에 난항을 겪었다. 김준희 기자
법원도 "일률적으로 말할 수 없지만 피의자에 대해서만 압수수색 영장을 발부한다"는 입장이다. 박정제 전주지법 공보관(부장판사)은 "경찰에서 입건하지 않으면 피의자가 아니다"며 "압수수색 영장이 발부되려면 두루뭉술하더라도 어느 정도 혐의가 나와야 한다"고 말했다.

이 때문에 증거 확보가 관건이던 이번 사건에서 경찰이 의심 가는 사람들을 입건도 하지 않은 채 검찰에 압수수색 영장을 신청한 건 단순 실수로 보기 어렵다는 지적이다. 경찰 측은 압수수색 영장이 반려된 뒤 다시 영장을 신청하지 않은 이유에 대해 "(압수수색) 영장 없이도 당사자들의 동의를 구해 필요한 것들을 확보하고, (조사)하고자 하는 것을 했기 때문에 의미가 없다"고 말해 왔다.

지난 18일 전북 전주시 우아동 아중저수지에서 고무보트를 탄 소방 구조대원들이 고준희(5)양을 찾기 위해 수중 음파탐지기를 작동하고 있다. 김준희 기자
전주 덕진경찰서에 따르면 경찰은 앞서 준희양의 친부 고씨와 내연녀 어머니 김씨, 고씨와 이혼 소송 중인 친모의 차량 3대에 대해 당사자의 동의를 구해 물품을 확보하는 이른바 '임의 제출' 방식으로 조사를 마쳤다. 또 같은 방식으로 이들의 휴대전화를 받아 디지털 포렌식을 통해 분석해 왔다. 디지털 포렌식(digital forensic)은 '컴퓨터와 휴대전화 등 각종 저장매체나 인터넷에 남아 있는 디지털 정보를 분석해 범죄 단서를 찾는 수사 기법'을 말한다.

당초 '압수수색은 필요 없다'던 경찰이 갑자기 입장을 바꾼 이유는 뭘까. 김영근 수사과장은 "(물품들을) 확인하다 보니 빠진 부분이 있어서 압수수색을 했다"고 해명했다. 하지만 법조계에선 "당사자들이 중요한 증거들을 숨겨 놓으면 아무리 경찰이 동의를 구해 집이나 차량 등을 조사한다고 해도 의미가 없다"는 의견이 많다. 더구나 경찰은 지난 15일 공개 수사로 전환하고도 여전히 준희양 모습이 담긴 폐쇄회로TV(CCTV)나 블랙박스 영상을 확보하지 못했다. 수십 건의 제보도 모두 준희양과 무관한 것으로 나왔다.

경찰이 고준희(5)양을 찾기 위해 지난 16일 전북 전주시 덕진구 기린봉 자락에서 수색하고 있다. [연합뉴스]
준희양을 돌보던 김씨가 전주시 인후동 주택에서 우아동 빌라로 이사간 8월 30일 이후 '준희양을 봤다'는 목격자도 없다. 준희양 사진은 실종 전단에 있는 사진 2장이 가장 최근에 촬영한 사진이라고 한다. 경찰에 따르면 해당 사진들은 내연녀 이씨가 지난 2, 3월께 본인 휴대전화로 준희양을 찍은 사진이다. 정작 고씨는 지난 3월 말 이후 단 한 번도 자기 딸의 사진을 찍지 않은 셈이다.

경찰에 따르면 준희양은 '6개월 미숙아'로 태어났다. 경찰은 갑상선 기능 저하증을 앓던 준희양이 전북대병원에서 언어치료 및 발달장애치료 등 재활치료를 30개월간 받았다는 진료 기록을 확보했다. 하지만 지난 1월 말 친모가 준희양의 양육을 고씨에게 맡긴 이후로는 재활치료를 전혀 받지 못한 것으로 조사됐다. 친모는 경찰에서 "준희는 의사소통에 문제가 없다. 가족 이름과 휴대전화 번호도 말할 수 있다"고 말했다.

고준희(5)양이 실종 전까지 살았던 것으로 추정되는 빌라 뒷모습. 빌라 뒤편에 야산이 있고 그 뒤에 아중저수지가 있다. 김준희 기자
이런 친모도 지난 1월 말 준희양 등 고씨와의 사이에서 낳은 자녀 셋을 고씨가 사는 봉동읍 아파트 경비실에 일방적으로 두고 갔다고 한다. 고씨는 막내딸인 준희양만 남겨 놓고 초등학생인 두 아들은 다른 지역에 사는 친모에게 다시 데려다 준 것으로 확인됐다. 경찰은 친모의 이런 행위도 아동복지법 위반 소지가 있는 것으로 보고 입건 여부를 검토하고 있다.

친부 고씨와 내연녀 이씨에 대한 거짓말 탐지기 조사는 지난 13일께 이뤄졌다. '아이(준희양)를 데려간 사실이 있느냐' 등 기초적인 질문만 던졌다고 한다. 하지만 경찰은 당시 거짓말 탐지기 조사 결과가 진실인지, 거짓인지는 공개하지 않고 있다. 김씨는 건강상의 이유로 거짓말 탐지기 조사를 한 차례도 받지 않았다.

고준희(5)양이 살았던 것으로 추정되는 전주시 우아동 빌라 근처에 소방차 한 대가 서 있다. 김준희 기자
경찰은 "친부가 마지막으로 아이를 본 게 지난달(11월) 16일 전주시 우아동 김씨 빌라라고 진술하고 있기 때문에 실종 시점을 16일 이후로 보느냐, 그 이전으로 보느냐 명확히 하려는 의도에서 거짓말 탐지기 재조사나 법최면 검사를 요구했지만 본인 거부로 실패했다"고 말했다. 이 때문에 "딸아이의 생일인 7월 22일 전주시 인후동 집에 케이크를 사가서 생일잔치를 해줬다" "한 달에 한두 번씩은 전주에 준희를 보러 갔다" 등 그동안 고씨가 한 진술의 신빙성도 의심받고 있다. 경찰 안팎에서는 "친부가 딸을 찾으려면 경찰 수사에 협조해야 정상인데 고씨의 행동은 이런 상식과 동떨어진다"는 시각이 우세하다.

준희양이 마지막 입었던 옷차림에 대해서도 의구심이 제기된다. 경찰이 배포한 전단에는 준희양이 실종 당시 검정 패딩 점퍼와 회색 기모 바지를 입고 검정색 굽 없는 털신을 신었다고 적혀 있다. 하지만 이 복장도 준희양을 지난 8개월간 단 한 번도 집 밖에 데리고 나오지 않은 것으로 드러난 김씨의 진술을 바탕으로 추정한 것이어서 단정할 수 없다고 경찰 측은 전했다.

전북 전주에서 실종된 고준희(5)양을 찾기 위해 소방대원 등이 지난 18일 아중저수지에서 수색을 하고 있다. [연합뉴스]
준희양이 실종된 지 38일째가 되도록 아무 단서가 나오지 않자 경찰과 검찰이 이번 사건에 대해 너무 안일하게 대응해 수사가 표류한다는 비판이 나온다. 수사 초기 준희양의 가족 관계가 복잡하게 얽힌 점을 간과한 채 단순 실종 사건으로 접근하다 보니 준희양을 찾을 수 있는 '골든타임'을 놓쳤다는 것이다.

전문가들은 특히 경찰이 1차 압수수색 영장 신청이 반려된 뒤 무려 12일 후에야 다시 압수수색을 시도한 점에 대해 어처구니없다는 반응이다. 이수정 경기대 범죄심리학과 교수는 "경찰이 (친부 등에게) '임의로 제출하라'고 경고를 줌으로써 당사자들에겐 오히려 증거 훼손의 기회를 줄 수 있다"며 "만약 아동학대 가능성을 좀 더 일찍 감지했다면 대응이 지금과 달랐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수정 경기대 범죄심리학과 교수. 신인섭 기자
이 교수는 "대부분 학대 사건의 가해자는 가족이고, 가해자와 피해자는 같은 집에 산다"며 "만에 하나 사고가 나면 당연히 가해자는 (학대 사실을) 은폐하려는 모든 시도를 할 텐데 무력한 아이에 대한 실종 신고와 어른들에 대한 실종 신고를 동일하게 처리하는 것 자체가 문제"라고 말했다. 그는 "경찰이 (현장에) 출동했을 때 '8월 말 이후 아이(준희양)를 못 봤다'는 주민들의 말만 유심히 들었어도 금방 '이상한 사건'이라는 감을 잡을 수 있었다"며 "경찰이 학대에 대한 기본 지식이 없다"고 꼬집었다.

이 교수는 검찰도 비판했다. 그는 "'진즉 입건 지휘를 했다'는 검찰도 경찰 탓만 할 수 없다. 경찰이 안일하게 대응했다면 담당 검사라도 적극적으로 개입했어야 하는데 (사건을 해결할) 의지가 분명하지 않았던 것 같다"고 덧붙였다.

전주=김준희 기자 kim.junhee@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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