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

슬픔을 꽤 잘 견디는 사람들의 패턴

지뇽뇽 심리학 칼럼니스트 2017. 12. 24. 20: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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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계 의존성 높을수록 만성적인 슬픔 많다

소중한 사람들을 잃게 되는 일에 나는 얼마나 준비가 되어있는지 궁금해졌다. 사랑하는 가족이나 친구를 영영 떠나보내게 된다면 나는 과연 견딜 수 있을까?

GIB 제공

우리는 슬픔에 대해서 얼마나 알고 있을까?

우선 슬픔은 크게 다섯 요소로 구성된다고 한다. 열망(격한 보고싶음, 그리움), 절망(삶이 끝나버린거 같고 아무것도 할 수 있는게 없다는 좌절), 앞으로에 대한 불안, 믿기지 않음-충격이 그것이다(Jacobs, Kasl, & Ostfeld, 1986).

또한 사람마다 슬픔을 겪는 ‘패턴’이 다르다고 한다. 흔히 슬픈 일이 발생한 시점에 가장 큰 충격과 슬픔을 겪었다가 점차 슬픔이 사그라드는 패턴을 떠올리곤 한다. 하지만 의외로 이런 일반적이라고 여겨지는 패턴은 생각보다 흔치 않다는 보고가 있었다(약 10%). 205명의 기혼 커플을 대상으로 배우자와의 사별 전, 사별 후 18개월까지 추적한 연구에 의하면, 슬픔을 겪고 해소하는 과정이 사람마다 크게 다르며 일반적 형태 외에도 다양한 패턴이 나타난다고 한다(Bonanno et al., 2002).

1) 감정 변화가 크지 않은 패턴 또는 평정심을 잘 유지하는 패턴: 상실 이후 6개월이나 18개월의 슬픔이나 우울이 상실 전과 크게 다르지 않은 경우, 2) 슬픔이 지연되는 패턴: 상실 직후에는 괜찮았다가 훨씬 나중에 슬픔이 몰려오는 경우 (이 패턴의 존재에 대해서는 아직 학자들 사이에서 논란이 있다고 한다), 3) 만성적 슬픔: 시간이 지나도 계속 강한 슬픔을 보이는 경우, 4) 향상: 상실 후 되려 신체적/정신적 건강 지표들이 향상되는 경우 등이 그것들이다.

관계의 질, 의존성, 삶과 죽음에 대한 믿음

우선 위의 연구(Bonanno et al., 2002)에 의하면 상실 이후 되려 삶의 질이 나아진 사람들의 경우는 배우자와의 관계가 매우 좋지 않거나 배우자에 대해 때론 좋았지만 또 때론 너무 싫었다는 식의 양가적인 태도를 보인 사람들이었다. 당연한 일이겠지만 관계의 질이 좋았던 사람들은 그렇지 않은 사람들에 비해 상대의 죽음에 더 큰 슬픔을 보였다.

한편 관계의 질보다 슬픔의 패턴과 더 큰 관련을 보였던 것은 관계에 대한 ‘의존성’이었다. 전반적으로 사람들의 말과 행동에 쉽게 흔들리고 쉽게 상처받는 사람들이 그렇지 않은 사람들에 비해, 또 그 사람 없이는 아무 것도 할 수 없고 상대방이 존재하지 않는 상황을 견딜 수 없다고 한 사람들이 그렇지 않은 사람들에 비해 만성적인 슬픔을 많이 보인 것으로 나타났다.

또한 평소 세상은 이치에 따라 돌아가며 선한 사람들은 선한 결과를, 악한 사람들은 악한 결과를 맞이하게 될 것이라는 ‘공정한 세상에 대한 믿음(belief in a just world)’을 크게 보인 사람들이 그렇지 않은 사람들에 비해 비교적 슬픔을 덜 느끼는 것으로 나타났다. 사랑했던 이가 선한 사람이었으므로 분명 이치에 맞게 좋은 곳으로 갔을 거라고 믿을 수 있기 때문일까?

삶은 공정하다는 시각 못지 않게 죽음에 대한 시각도 슬픔과 관련을 보였다. 죽음은 삶의 한 가지 과정일 뿐이라고 죽음을 비교적 잘 받아들이며 크게 두려워하지 않는 사람들이 그렇지 않은 사람들에 비해 큰 슬픔을 느끼지 않고 비교적 안정적인 정서상태를 유지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GIB 제공

삶은 계속 될 것이다

한 가지 흥미로운 사실은 상실 후 큰 슬픔을 느끼지 않는 것이 방어적이거나 슬픔을 억누르는 행동이라고 보는 시각과 다르게, 많은 사람들(약 45%)이 슬픔을 꽤 잘 견디며 사건 발생 6개월 정도 후에는 사건 전과 비슷한 수준의 정서 상태를 회복한다는 것이다.

우리는 어떤 상황에서든 그럭저럭 잘 적응하며 그 어떤 일도 ‘우리가 생각하는 것만큼’ 우리의 삶에 영구적인 영향을 미치지 않음을 보여주는 연구들이 있었다. 심리적 면역의 힘을 과소평가하는 반면 어떤 사건이 안겨줄 괴로움을 과대평가한다고 해서 ‘면역 무시’라고 불리는 현상이다(Gilbert et al., 1998). 이런 마음의 면역력을 믿고 지금 당장은 괴로울지라도 시간이 지나면 어느새 조금씩 괜찮아져있을 것이라고 믿는 사람들이 그렇지 않은 사람들에 비해 힘든 일을 더 수월하게 이겨내곤 한다는 연구 결과도 있었다. 아플지언정 삶은 계속 될 것이고 마음은 언젠가 평화를 찾게 될 것임을 인식할 수 있다면 조금 더 견딜 수 있게 된다는 것이다.

헛된 시간이 아니었음을

연구들에 의하면 ‘의미 찾기’ 또한 슬픔을 극복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한다(Park, 2010). 빅터 프랭클의 책 ‘죽음의 수용소에서’에는 사랑하는 아내를 먼저 떠나보내고 그 슬픔을 견디지 못하던 남편에게 만약 아내보다 자신이 먼저 떠났다면 아내가 얼마나 슬퍼했을지 상상해보라고 하자 금새 슬픔을 털어버리더라는 이야기가 나온다.

불의한 일로 사랑하는 이를 떠나보내고 나서 그 일에 대해 목소리를 높이며 세간의 인식을 환기시키며 또 다른 피해자가 나오지 않게 애쓰는 일 역시 의미 찾기의 한 예로 자주 거론되곤 한다. 소중했던 이의 삶이 결코 무의미하지 않았음을, 그의 죽음 역시 헛되지 않았음을 아는 것이 남겨진 이들에겐 또 다른 삶의 이유가 되곤 한다는 것이다.

떠나간 사람들은 떠난 것이 아니라 남겨진 사람들의 마음 속에서 살아가게 되는 것 뿐이라는 이야기처럼, 남겨진 기억을 간직하고 또 새로운 의미를 발견해 나가는 과정에서 죽음은 또 다른 삶으로 연결되고 막다른 길로 끝나지 않게 되는 것이 아닐까?

※ 참고문헌
Bonanno, G. A., Wortman, C. B., Lehman, D. R., Tweed, R. G., Haring, M., Sonnega, J., ... & Nesse, R. M. (2002). Resilience to loss and chronic grief: A prospective study from preloss to 18-months postloss. Journal of Personality and Social Psychology, 83, 1150.
Gilbert, D. T., Pinel, E. C., Wilson, T. D., Blumberg, S. J., & Wheatley, T. P. (1998). Immune neglect: A source of durability bias in affective forecasting. Journal of Personality and Social Psychology, 75, 617-638.
Jacobs, S., Kasl, S., & Ostfeld, A. (1986). The measurement of grief: Bereaved versus non-bereaved. The Hospice Journal, 2, 21–36.
Park, C. L. (2010). Making sense of the meaning literature: An integrative review of meaning making and its effects on adjustment to stressful life events. Psychological Bulletin, 136, 257-301.

※ 필자소개
지뇽뇽. 연세대에서 심리학 석사 학위를 받았다. 과학적인 심리학 연구 결과를 보고하는 ‘지뇽뇽의 사회심리학 블로그’ (jinpark.egloos.com)를 운영하고 있다. 과학동아에 인기리 연재했던 심리학 이야기를 동아사이언스에 새롭게 연재할 계획이다. 최근 스스로를 돌보는 게 서툰 이들을 위해 <내 마음을 부탁해>를 썼다.

[지뇽뇽 심리학 칼럼니스트 parkjy0217@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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