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따라 멋따라] 눈 내린 남도, 조선 고택과 근대 고택의 '특별한 매력'

입력 2017. 12. 23. 07:00
음성재생 설정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1천년 고도 나주서 만난 '남파고택'과 '난파고택'

(나주=연합뉴스) 성연재 기자 = "전라도가 전주와 나주의 줄임말이란 사실 알고 계셨나요?"

그렇다. 전라도라는 지명은 과거 전주와 나주에서 기원한 것이다.

내년이면 전라도라는 지명을 얻은 지 1천년이 된다.

향교 옆의 근대 가옥이 리모델링을 통해 손님을 기다리고 있다.(성연재 기자)

이렇게 나주는 전라남도의 오랜 뿌리 같은 도시였다.

그 말을 듣고 보니 다르게 보였다.

유홍준 교수의 '인간은 아는 만큼 느낄 뿐이며 느낀 만큼 보인다'는 말을 다시 한 번 실감하는 순간이었다.

몹시도 추운, 시베리아 기단에서 발생한 영하 30도 냉기가 한반도를 뒤덮은 날씨에 나주를 찾았다.

천년고도 나주의 서성문에 눈발이 날리고 있다.(성연재 기자)

우선 뜨끈한 나주 곰탕으로 배를 채웠다.

나주 금성관 앞에 줄지어 서 있는 곰탕집들은 추울수록 가치를 발휘했다.

한그릇 뚝딱 해치운 뒤 가만 보니 금성관 앞에는 그동안 안 보이던 카페가 하나 들어서 있었다. 눈발이 휘날리는 날씨에 잠시 그곳에서 피해 보려 했다.

그러나 눈발은 더욱 거세지고 아예 카페 2층 금성관이 떡 하니 보이는 곳에 자리 잡아 설경이 되기를 기다렸다. 그러나 거센 눈발도 내리자마자 녹았다.

'아∼ 그렇다. 여긴 남도로구나'

윗지방 같았으면 이런 칼을 에이는 바람에 내리는 족족 쌓였으련만….

기다리던 설경도 되지도 않고 길을 나섰다.

◇ 나주 남파고택(南坡古宅)

야자와 하얀 눈의 조화가 이채로운 남도 고택의 전형적인 '남파고택'(성연재 기자)

박경중 가옥을 찾아 나섰다.

나주 방문은 오로지 한옥 한군데 가보겠다는 게 목표였다.

남파고택이란 이름을 얻은 이 조선 시대 후기의 가옥은 전남에서 단일 건물로서는 최대 규모를 자랑한다.

박경중씨의 6대조가 터를 잡고 4대조인 박재규씨가 1884년 건립했다. 지금 건물은 1910년대와 1930년대에 개축했다.

조선후기 고택의 전형적인 모습을 보여주는 남파고택에 흰눈이 내렸다(성연재 기자)

널따란 기와집 안채를 비롯해 모두 7채의 가옥들이 원형 그대로 잘 보존돼 있다.

그 중 눈에 띄는 것이 바로 안채 뒤쪽에 자리 잡고 있는 초당이다.

초당이란 초가집을 말하는 것으로 아직 전기가 들어오지 않은 형태로 그대로 보존돼 있다.

안채는 아직 옛모습 그대로 아궁이 불을 사용해 난방한다. 이 안채 부엌은 규모가 일반 가정집과 다르다. 부엌 하나만 해도 13평에 달할 정도로 넓다.

아침마다 떠 올리는 정화수가 오늘도 올려져 있다.(성연재 기자)

부엌 가마솥 바로 앞에는 매일 아침 떠 놓은 정화수가 자리 잡고 있다.

아침마다 가정의 평화와 안녕을 기원한다 했다.

전라남도 도 문화재자료 제153호였던 남파고택은 2009년 국가지정문화재로 승격됐다.

이낙연 총리도 전남지사 시절 남도문예 르네상스 구상을 위해 방문하기도 했었다.

◇ 남파고택 음식문화

때마침 안주인이 출타 중이시란다.

주인장 박경중씨와 아침상을 함께했다.

양반댁에는 그 댁에서만 내려오는 전통의 식단이 있다.

종부에게서 종부에게로 내려오는 비밀의 음식. 반동치미다.

반동치미는 흔히 보이는 통배추 김치에다 새우젓 국물을 붓는다.

그래서 동치미와 유사한 형태로 만드는 동치미다.

남파고택의 대표적인 음식은 이루 말할 수 없이 많지만 그중 가

장 대표적인 것이 바로 반동치미다.

통배추 김치에 새우젓 국을 부어 만든 남파고택의 '반동치미'(성연재 기자)

반동치미는 영산강 어귀의 기름진 밭에서 생산되는 무와 배추가 가장 기본이다.

이 점이 일반 여느 집과 구별된다. 즉, 가족이 먹을 수 있는 밭을 가진 재력이 있는 집에서만 만들 수 있다는 말이다. 동치미에 새우젓을 부어 만드는 이 반동치미는 적어도 무와 배추, 사과, 배 등 20가지 이상의 음식재료가 들어갔다 한다.

가장 의외의 재료는 생조기 굴, 청각 등이다. 독특한 동치미 맛을 내는 데 큰 도움을 준다.

전라남도는 이처럼 박경중 가옥 같은 민간 가옥을 발굴하고 계승하려 하고 있다.

한 가지 안타까운 것은 이런 독특한 먹거리를 시중에서는 맛을 볼 수 없다는 점이다.

고성이나 수백년 된 수도원을 리모델링해 숙박 장소로 활용하는 스페인의 '파라도르' 같은 지혜도 차용할 필요가 있어 보인다.

◇ 근대에는 '난파고택'

나주에는 남파고택만 있는 것이 아니다.

구한말에 세워진 '난파고택'이 있다.

난파고택은 난파 정석진의 큰아들 정우찬이 살던 집터로, 조선시대 지어진 집을 1915년에 재건립했다.

아버지가 생전에 경영하시던 난파정을 아버지를 기리는 제당으로 재건립해서 그 옆에 집을 짓고 살았다.

난파 정석진의 큰아들 정우찬이 살던 집 난파정을 복구한 한옥(성연재 기자)

나주 구한말 근대사에 큰 축이었던 인물이 난파 정석진이었다.

향리들의 대부 격인 호장 정석진은 녹두장군 전봉준이 이끌던 동학군을 막아내는 주축으로 활약했다.

1894년 갑오년 7월 나주 북쪽 금성산 쪽에서 동학군들이 서성문으로 공략해 내려왔다.

동학군은 그러나 강력한 관군의 기세에 눌려 수차례의 공성전에도 불구하고 3천 명의 전사자를 내고 결국 서성문을 포기해야 했다. 전봉준도 12월 순창에서 붙잡혀 나주로 끌려왔고 형장의 이슬로 사라졌다.

다음 해인 1895년 을미년, 정석진은 일제의 입김에 내려진 단발령에 반발해 본인이 의병의 의병장이 되고야 만다.

당시 일본의 명성황후 시해와 내정 간섭으로 우리 민족의 반일 감정은 극도로 고조된 데다 단발령마저 내려져 국민의 분노를 폭발시켰다.

그러나 그 또한 결국 관군에 의해 진압되는 운명이 됐고 참수되는 기구한 운명의 주인공이 됐다.

동학이라는 엄청난 물결에 휩싸였던 나주는 전라남도의 중심을 광주에 내주어야만 했고, 동학 혁명 이후 쇠락의 길로 접어들게 됐다.

나주는 어쩌면 구한말 조선에서 가장 '핫한' 지역이 아니었을까?

최근에는 난파정이 리모델링을 통해 게스트하우스로 재탄생했다.

이런 배경을 가진 곳이 나주이고, 그 배경이 된 곳이 나주향교와 그 바로 옆의 난파정이다.

하얀 눈이 내리는 날이면 나주향교 뒷골목 담벼락이 보이는 조용한 찻집에서 그리운 사람을 기다려도 좋을 듯하다.

'향교 담벼락 뷰'가 매력적인 난파정에서의 따스한 차 한잔(성연재기자)

◇ 먹거리

구한말까지 영산강 변의 영산포로 배가 들어왔다.

흑산도에서, 다른 서해에서 잡은 물고기들은 나주 영산포로 쏟아져 들어왔다.

영산포가 발전한 이유다.

요즘 수도권에서도 홍어를 파는 집을 흔하게 찾아볼 수 있다.

그러나 홍어를 좀 먹어봤다 싶은 사람들도 이곳 영산포에서 맛보는 홍어의 맛에는 엄지를 척 치켜세우기 마련이다.

영산포 입구의 홍어찜요리(성연재 기자)

집집마다 음식 장만 비결이 있기 마련인데, 이곳 영산포의 홍어 집들은 독특함으로 승부를 보고 있다. 주머니가 가벼운 사람들을 위한메뉴로는 당연 홍어앳국을 꼽는다.

진하고 구수한 '홍어애'의 맛을 볼 수 있다.

polpori@yna.co.kr

☞ 스포츠센터 앞 대형 LPG통이 화재 진압 지연 주범?
☞ "속옷으로 뛰쳐나와" 생존자가 전하는 화재 탈출 순간
☞ 여성 누드사진 찍고 허락 없이 판매한 사진작가
☞ 지적장애 母子에 서로 음란행위 강요한 인면수심 남편
☞ 프로야구 선수, '이별 통보' 여친 얼굴을 주먹으로 때려

▶연합뉴스 앱 지금 바로 다운받기~

<저작권자(c) 연합뉴스, 무단 전재-재배포 금지>

Copyright © 연합뉴스. 무단전재 -재배포, AI 학습 및 활용 금지

이 기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