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0도 사과, 180도 돌변..'김상조式 저격'

이지은 2017. 12. 22. 11: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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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시아경제 이지은 기자] "정부의 정책이 이렇게 신뢰성 없이 뒤집히는 경우는 처음이다."
 
호떡 뒤집듯 말과 행동을 바꾸는 문재인 정부의 정책에 기업들은 패닉 상태에 빠졌다. 일선 부처의 주요 정책이 뒤집히는 일이 잦아 정부 신뢰도 저하를 우려하는 목소리도 쏟아지고 있다.
 
21일 공정거래위원회가 2년 만에 삼성물산과 제일모직의 합병에 대한 판단을 뒤집었다. 김상조 공정위원장이 합병 관련 신규순환출자 가이드라인을 변경했다. 김 위원장은 "2년 전 결정은 잘못됐다"며 삼성물산 주식 404만주 추가 매각 명령을 내렸다. 그는 "과거에 대한 반성과 미래에 대한 각오"라며 머리 숙여 사과했다.
 
김 위원장의 사과는 이번뿐만이 아니다. 과거 김 위원장은 이해진 전 네이버 의장을 두고 "스티브 잡스 애플 창업자와 같은 비전을 제시하지 못했다"고 깎아내렸다가 이재웅 다음 창업자ㆍ안철수 국민의당 대표로부터 비판을 받고 머리를 숙였다. 지난달에는 확대 경제관계장관회의 자리에 늦게 출석한 후 "재벌 혼내주고 오느라 늦었다"는 발언을 했다가 지탄을 받기도 했다.

김 위원장은 삼성 관련 이번 결정에 대해 "소급효(법적 효력이 과거로 거슬러 올라가는 것) 문제는 없다"고 단언했다. 그는 "공정위 내부에서 검토하고 다수의 법률전문가로부터 조언을 구한 결과"라며 "법이 개정된 것이 아니고, 공정위가 과거 잘못 내린 판단을 바로잡는 것이기 때문"이라고 밝혔다.
 
기업과 경제전문가들은 물론 정부 안팎에서도 이번 결정을 심각하게 받아들이고 있다. 법적인 문제가 없더라도 2년 만에 정책 해석을 뒤집은 것은 기업경영의 불확실성을 높이고 공정위의 신뢰도를 떨어뜨릴 수 있기 때문이다. 삼성SDI 관계자는 "공정위 예규가 확정되고 매각통보가 오면 법률적 내용을 검토해 대응방안을 정하겠다"며 "현재로선 더 이상 할 말이 없다"고 말을 아꼈다. 재계에서는 공정위가 소급처벌이라는 비난을 감수하면서까지 특정기업 주식을 처분토록 한 것에 부담을 느끼는 눈치다.

대기업의 한 관계자는 "(이 부회장의) 항소심 재판이 진행 중인 가운데 1심 재판 결과만을 놓고 기존 결정을 뒤집는 건 정부 정책의 신뢰를 스스로 훼손하는 행위"라고 비판했다.

다른 관계자는 "공정위가 늦게나마 삼성에 유리하게 설계된 순환출자 금지 해석 기준을 바로잡은 것은 긍정적"이라면서도 "다만 법 집행기관인 공정위가 박근혜 정부 당시 청와대 등 권력의 외압에 흔들려 불공정한 판단을 내렸다는 점과 이미 행정 처분이 끝난 과거 사건에 대해 결정을 뒤집었다는 점에서 법 집행의 신뢰성과 예측 가능성이 훼손됐다"고 꼬집었다.

익명을 요구한 한 교수는 "공정위가 2년 만에 말을 바꿔 '그때는 틀리고 지금은 맞다'고 하는데, 정부 정책의 일관성이 없다면 이를 믿고 따를 기업이 어디 있겠느냐"며 "정권이 바뀌면 정책이 바뀌는 건 당연하지만 이 같은 일이 반복돼선 안된다"고 지적했다.

정부 내부에서도 혼란스러운 분위기가 감지된다. 정부 관계자는 "잘못된 정책을 바로잡는 것은 당연하지만 세계적인 기업의 지배구조 문제를 손바닥 뒤집듯 정부가 결정하는 것이 바람직한 지 좀더 생각하게 만든다"고 전했다.

이지은 기자 leezn@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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