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건물이니까" 장애 유아 쫓아내는 교회

CBS노컷뉴스 황영찬 기자 2017. 12. 21. 09: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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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대료 운운하며 공익 대신 사익 추구, 학부모 "학교 없어지는 건가"
(사진=자료사진)
20년 가까이 운영된 유아특수학교가 운영주체인 교회의 '사유권' 주장에 밀려 쫓겨날 위기에 처했다. 자기 이익에 급급한 교회와 무기력한 정부당국에 절망한 학부모들은 21일 서울 동작구에 위치한 해당 학교 앞에서 기자회견을 여는 등 대책을 호소하고 있다.

◇ 교회 '주권' 행사가 "학교는 교회 건물 못 쓴다"

서울 동작구에 위치한 이 특수학교는 장애를 가진 유아들에게 특화된 곳으로, 지난 1998년 A교회 부설로 설립됐다. 학교 부지와 건물은 교회 소유였고, 시설 기준을 충족했기 때문에 교육청은 학교 설립 인가를 냈다. 학교 운영비는 전액 국고에서 지원받고 있다.

서울에 단 4곳 뿐인 유아특수학교이기 때문에 학부모들의 수요가 높다. 해마다 신입생 상담이 40건 내외로 접수되지만, 10여명의 학생은 정원의 한계로 돌려보낼 수밖에 없다. 교육감 표창도 5차례나 받아왔고, 지난 2015년에는 동작관악교육지청으로부터 학교평생교육거점학교로 지정되는 등 우수한 학교로서의 명성도 자자하다.

문제는 지난 17일 A교회가 '○○학교 건물 사용의 건'이라는 안을 상정해 더 이상 학교가 교회 건물을 사용할 수 없다는 결론을 내면서 시작됐다. 98년 학교 설립 당시 교인들의 동의를 받지 않았고 지금까지 임대료도 받지 못했다는 것이다.

교회 관계자는 "학교 부지와 건물은 교회 소유인데, 은행 담보를 잡는 등 교회를 위한 사업에 전혀 사용할 수 없는 상황"이라며 "동의 없이 임대된 학교 건물에 대해 교회의 주권을 행사한 것"이라고 말했다.

더 큰 문제는 학교가 더 이상 건물을 사용할 수 없다는 교회의 의지만 확인됐을 뿐, 앞으로의 대책은 전혀 나와 있지 않다는 것이다. 교회는 학교가 교회 건물을 사용할 수 없다는 결정을 내려 놓고, "지금 당장 나가라는 것은 아니다"라는 입장이다. 현장의 불안감이 가중되는 이유다.

학교 측은 폐교 수순이라고 인식하고 있다. 학교 관계자는 "교회 측이 2014년부터 계속 수 년 안에 학교를 무조건 없앤다는 말을 해왔는데, 이번 기회에 실현하려는 것"이라며 "교회의 지속적인 폐교 추진 의지를 볼 때, 교회의 이번 결정은 학교 존속에 직결되는 문제"라고 말했다.

◇ 19년 공익활동 내팽개친 교회 "설립 목적 잊었나"

가장 큰 피해자는 역시 교육권을 침해받게 되는 학생들이다. 해당 학교가 속해있는 자치구에는 초중고등학교 과정의 특수학교는 존재하지만, 유치원 과정의 특수학교는 없다. 만약 폐교가 실제 이뤄진다면, 동작구 외에 관악구, 금천구, 영등포구에 이르는 인근 장애 유아들에 대한 특수교육은 사실상 마비된다.

학부모들은 교회 측이 19년 동안 이어 온 공익 활동을 내팽개 치고 이익에만 급급하다며 배신감마저 느낀다고 한다. 한 학부모는 "아이들을 위해 생각하는 부분은 없고 건물이 교회 소속이라는 이유를 들어 교회의 이익만 생각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또 다른 학부모는 "우리 아이는 일반 유치원으로 가면 방치되는 것 밖에 없다. 지금 우리 학교에서 배우는 것처럼 센터나 병원을 이용하면 한 달에 2~300만원이 들어간다는데, 얼마나 부담이 크겠나"라며 한탄했다.

한 학교 관계자 역시 "교회에서 선한 일을 한다며 특수학교를 만든 처음 취지를 잊고, 시간이 갈수록 재정의 어려움을 거론하며 폐교를 말한다"고 전했다. 그는 "운영 의지를 잃어버린 교회때문에 결국 피해는 학생들이 보게 될 것"이라 말했다.

◇ 최악의 사태 이후에나 개입할 수 있다는 교육청

교회가 주장하는 재산권과 특수교육이라는 공익이 충돌하는 상황이지만, 교육청은 일단 예의주시하고 있겠다는 입장이다.

교육청 관계자는 "지금 단계는 교회 내부에서 결정만 이뤄진 것일 뿐, 우리에게 부지 변경이나 폐교하겠다는 공식적 입장은 전달하지 않았다"고 밝혔다. 교회가 실제로 '폐교 인가'를 신청하면 그 때 적법한 절차에 따라 심사하겠다는 것이다.

현행 초중등교육법상, 학교에 대한 폐쇄조치는 설립자가 고의로 3개월 이상 수업을 하지 않거나, 위법 사항에 대한 시정명령을 여러 차례 거부한 경우 등에만 가능하다. 학교 내 갈등이 격화되는 상황이지만 교육청이 선제적으로 대응할 수 있는 법적 수단은 없는 셈이다. 학부모들이 절망이 커져가는 이유다.

전국장애인부모연대 서울지부 정순경 부대표는 "학교가 개인이나 법인의 소유라고 생각하기 때문에 불거지는 문제"라며 "일반 사립학교와 달리 대안을 찾을 수 없는 특수학교는 정부가 직접 운영해 안정성을 보장해 줘야 한다"고 강조했다.

[CBS노컷뉴스 황영찬 기자] techan92@cb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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