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희윤 기자의 싱글노트]팻 분의 캐럴.. 고전의 당당함

2017. 12. 21. 03: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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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겐 팻뿐이었다.

"크리스마스니까 우리도 팻 분 좀 들어보자."

그러면 형은 집에 있는 전축의 턴테이블에 팻 분의 LP판을 올리고 바늘을 가져다댔다.

오늘은 오랜만에 팻 분의 캐럴 음반을 들어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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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년 12월 20일 수요일 맑음. 재림. #271 Pat Boone 'White Christmas'(1959년)

[동아일보]

미국 가수 팻 분의 ‘White Christmas’ 음반 표지.
내겐 팻뿐이었다.

팻 분. 이 괴상한 서양 아저씨 이름이 꼬마 버전의 나에게 크리스마스에 관한 첫인상에 가까웠던 것이다. 12월이 오고 거리에 캐럴이 울려 퍼질 때쯤이면 어머니는 형에게 말씀하셨다. “크리스마스니까 우리도 팻 분 좀 들어보자.”

그러면 형은 집에 있는 전축의 턴테이블에 팻 분의 LP판을 올리고 바늘을 가져다댔다. 음반 표지에 있는 지나치게 멀끔한 인상의 백인 아저씨가 바로 미국 가수 팻 분. 이내 크리스마스는 스피커에서 풀려나왔다. 그것은 먼 나라에서 청각을 타고 우리 집 거실에 내려온 환상이었다. 팻 분의 비단결 같은 목소리를 듣다 보면 꼭 가보지도 않은 데 가보는 느낌이 들었다. 새하얀 눈이 바닐라 아이스크림처럼 두껍게 덮여 고요한 이국의 정원. 그곳에 붉은빛 트리가 놓여있는 미국이란 부국의 가정이 환상 속에 펼쳐졌다.

오늘은 오랜만에 팻 분의 캐럴 음반을 들어봤다. 전축 대신 스마트폰으로 스트리밍 서비스에 접속해 재생 버튼을 누르자 블루투스 스피커를 통해 흐르는 팻 분 아저씨의 음성은 정말이지 부드러웠다. 어른이 되고 음악을 좋아하게 되면서 수많은 가수의 음성, 숱한 음악가의 음악을 들었는데도 어쩐지 절대적인 무언가를 마주하는 듯한 기분이었다. 원곡의 음표를 가끔 조금씩 밀고 당겨 불러도 마치 그게 오래된 정석인 듯 느껴지는 고전(古典)의 당당함이 구김살 없는 아저씨의 목소리에는 담겨 있었다.

‘White Christmas’는 1942년에 발표된 곡이다. 미국 가수 겸 배우 빙 크로스비 주연의 영화 ‘홀리데이 인’에 실려 처음 공개되자마자 큰 인기를 누렸다. 그때는 마침 제2차 세계대전이 발발하고 미국이 참전한 시점이었다. 당시 엄혹한 전장에서 첫 겨울을 맞는 장병들은 라디오에서 흘러나오는 이 노래를 들으면서 고향의 성탄절 정경을 떠올렸다고 한다.

‘꿈속에 보는 화이트 크리스마스∼.’ 이 노래 첫 소절은 음악적으로도 좀 특별하다. 이 멜로디는 건반 위에 잇따라 자리한 다섯 개의 미묘한 반음을 차례로 오르내린다. 그래서 마치 세월의 장막을 은근히 걷어내고 환상 속으로 듣는 이를 이끄는 듯하다.

성탄 전야 자정 미사 시간에 엄마 손을 잡고 가 성당 안에서 꾸벅꾸벅 졸던 아이, 구두쇠 스크루지에 관한 영화를 보며 TV를 향해 자세를 고쳐 앉던 꼬마는 지금쯤 어디에 있을까. 올해 성탄절은 화이트 크리스마스일까.

임희윤 기자 imi@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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