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재인 세트' 화제 속 수그러 드는 중국인 반한 감정
한국만큼이나 연일 한파가 몰아치고 있는 19일 중국 베이징(北京). 베이징 지하철 2호선 푸싱먼(復興門) 역에서 서남쪽 출구를 나와 10분 정도 걷다보면 왼쪽 편에 허름한 초록색 간판에 커다란 네 글자가 선명한 가게를 찾아볼 수 있다. 문재인 대통령이 방중기간 아침 식사를 위해 김정숙 여사와 함께 들르면서 순식간에 유명해진 용허셴장(永和鮮漿)이 바로 주인공이다.
이 음식점은 문재인 대통령이 귀국한 이후 이른바 ‘문재인 대통령 세트’라는 메뉴를 내놓으면서 더욱 화제가 됐다. 문 대통령이 다녀갔다는 소문이 인터넷 등을 통해 퍼지면서 한 동안 손님들이 급증한 효과도 톡톡히 봤다.
문재인 세트는 문 대통령이 방문 당시 아침으로 먹었던 요우탸오(油條·기름에 튀긴 꽈배기)와 중국식 두유인 더우장(豆漿), 샤오롱바오(小籠包·만두), 훈툰(중국식 만두탕) 등으로 구성됐으며 단품으로 샀을 때 보다 8위안 가까이 저렴한 35위안(약5천700원)에 팔리고 있다.
문재인 세트는 중국의 배달앱을 위한 기획 상품이라 이날 식당에서는 주문할 수가 없었고 똑같은 구성의 음식들을 주문해 봤다.
◇ 문재인 세트…저렴하지만 내공 있는 맛
문재인 대통령 내외와 노영민 주중 한국대사 등 일행은 지난 14일 아침 8시쯤 이 식당을 찾아 약 30분간 식사하며 더우장 4컵과 훈툰 4그릇, 요우탸오와 샤오롱바오 2인분을 주문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 정도면 베이징 서민식 아침 식사의 진수를 맛봤다고 할 만하다.
국빈방문을 온 외국 원수가 아침식사를 할 장소였기에 당연했겠지만 식사 전 중국 정부와 한국 대사관 관계자들이 이미 수차례 가계를 오가며 고심한 흔적이 엿보였다. 중국 음식에 익숙하지 않은 한국 대통령에게 비싸고 호화로운 음식보다 싸고 맛있는 서민음식을 대접한다는 것이 생각만큼 쉽지는 않았을 터였다.
◇ 문재인 세트와 주석 세트
지난 2013년 12월 28일 베이징 베이징 웨탄(月壇)공원 부근에 위치한 칭펑(慶豊) 만두지점에 시진핑(習近平) 중국 국가 주석이 돌연 나타나 만두와 간단한 요리로 식사를 대신한 일이 있었다.
당시 시 주석은 줄을 서지 말고 주문하라는 주인의 호의에도 줄을 서서 돼지고기 소로 채워진 바오즈(包子·만두)와 채소 볶음 등의 요리를 시켜 먹었다.
시 주석이 평범한 시민들과 줄을 서서 만두를 먹는 모습이 인터넷에서 폭발적인 호응을 불러 일으키자 칭펑 만두집에서 시 주석이 시킨 메뉴로 21위안짜리 ‘주석(主席) 세트’를 내놓았고 날개돋힌 듯이 팔리면서 한동안 화제가 됐다.
사드 갈등은 양국 정부와 지도자들 사이의 정치·외교적 수준을 넘어서 양국 국민의 감정 싸움으로 번진지 이미 오래다. 문 대통령이 중국 지도부가 아닌 중국인들의 마음을 얻기 위해 선택한 방법이 한 끼의 아침 식사였다면, 이미 투자 대비 엄청난 효과를 거둔 것만큼은 분명해 보였다.
[베이징=CBS노컷뉴스 김중호 특파원] gabobo@cbs.co.kr
Copyright © 노컷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