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 삶을 준 한국, 태극마크 달고 세계챔프로 보답"

안광호 기자·정두용 인턴기자 2017. 12. 19. 21: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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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향신문] ㆍ한국 슈퍼웰터급 챔피언 카메룬 출신 이흑산 선수
ㆍ2015년 문경 군인대회 선수로 왔다가 탈출, 어렵게 난민 인정
ㆍ자선경기 수익 난치병 어린이에 기부도…내년 아시아 챔프전

‘카메룬 난민 복서’ 이흑산 선수가 지난달 25일 서울 신일고 체육관에서 열린 자신의 첫 국제전을 앞두고 프로필 촬영에 임하고 있다. 이재혁 포토그래퍼 제공

“절대로 권투를 그만두지 않을 겁니다. 권투는 제게 가장 중요한 목표입니다.”

카메룬 태생의 난민 복서 이흑산 선수(34)는 권투 때문에 한국에 왔고, 권투를 하다 한국에서 난민 지위를 얻었고, 권투로 태극마크를 달았다. 현재 WBA 웰터급 한국챔피언인 그는 내친김에 세계 챔피언이 되겠다고 했다. 30대 중반이면 권투선수로서는 은퇴를 고민해야 할 나이다. “심적으로, 물리적으로 많은 노력이 필요합니다만 개의치 않고 최선을 다할 거예요.”

이 선수는 2015년 10월 경북 문경에서 열린 세계군인대회에 카메룬 대표로 출전했다가 선수단을 탈출해 그 길로 서울로 도망쳤다. 그는 최근 경향신문과의 e메일 인터뷰에서 “카메룬 군인으로서 본분을 다했지만, 급여도 제대로 받을 수 없었고 고문과 폭행을 당했다”며 “심지어 세계군인대회에 참가하고 있을 때도 제대로 먹지도, 자지도 못했다”고 했다. 탈출 이후 서울출입국관리사무소에서 난민 신청을 했지만 ‘박해받을 것이라는 공포의 근거가 충분치 않다’는 이유로 거절당했다.

그에게 난민 불인정으로 인한 추방은 ‘죽음’을 의미했다. 그는 “카메룬에서 군 복무 시절 출전을 금지한 민간 복싱 경기에 참가해 우승을 했지만, 꽤 오랫동안 감옥에 갇혀 지냈다”며 “난민 인정 심사 결과에 따라 카메룬으로 송환될 것이 두려웠고, 심지어 자다가 악몽을 꾼 일도 여러번 있다”고 말했다.

난민 심사 결과를 기다릴 때에도 권투에 매달렸다. 그를 도와준 사람은 이경훈 춘천 아트복싱 관장이다. 복싱매니지먼트코리아란 협회에 등록된 체육관의 선수는 국적과 상관없이 경기에 참가할 수 있다.

이 관장은 그를 자신이 운영하는 체육관 선수로 등록시켜줬다. 이름도 이 관장이 지어줬다. 카메룬 이름은 압둘레이 아산. 성은 자신의 성에서 가져왔고, 피부는 까맣지만 최고의 챔피언이 되라는 뜻에서 ‘흑산’이라고 했단다.

한국에서 난민으로 인정받기 위해 ‘한국 챔피언의 타이틀’은 간절했다. 난민 심사 결과를 기다리면서 국내 경기에 꾸준히 출전했다. 그의 사연이 알려지면서 많은 이들의 응원과 지지를 받았다.

결국 이 선수는 지난 5월 한국복싱슈퍼웰터급 챔피언에 올랐고, 지난 7월 난민으로 인정받았다. 프로통산 전적은 5승(3KO)1무. 키 180㎝, 팔 길이 187㎝의 우월한 신체조건을 앞세워 이제는 어엿한 국내 ‘웰터급(66.68㎏)’의 강자다.

지난달 25일 서울 신일고 체육관에서 열린 한·일 복싱 경기에는 태극 마크를 달고 나갔다. 상대는 일본의 바바 가즈히로 선수(25). 이 선수는 3라운드 2분54초 만에 KO승을 거뒀다.

경기 후 열린 기자회견에서 그는 “KO로 이기겠다는 약속을 지켜 기쁘다. 나는 카메룬-코리안이다”라고 했다. 난민 인정을 받은 뒤인 지난 8월5일, 감사의 뜻을 담아 자선 경기를 펼쳤다. 한국 챔피언으로서의 첫 경기였다. 논타이틀전으로 치른 이날 경기에서 이 선수는 KO승을 거뒀고, 대전료를 희소난치성 질환을 앓는 어린이에게 전달했다. 그는 내년 4월 국내 웰터급 강자 정마루 선수(30)와 WBA 아시아 타이틀매치를 치를 예정이다.

이 선수는 아직 한국 국적을 취득하지 못했다. 난민 신분으로 국내 영주권만 획득한 상태다. “권투에서 최종 목표는 세계 정상이지만, 그것만으론 생활의 모든 부분이 해결되지 않습니다. 한국에서 좋은 아내를 만나 가정을 꾸리고 싶어요. 만약 한국 국적을 갖게 된다면 카메룬과 한국을 잇는 사업을 하고 싶습니다.”

<안광호 기자·정두용 인턴기자 ahn7874@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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