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자 한복 입은 여성은 돈 내세요!"..문화재청의 '인권침해' 무료관람 가이드라인
[경향신문]
“남자 한복을 입은 여성에겐 무료입장을 허용하지 않습니다.”
19일 낮 12시 저고리와 바지 차림의 ㄱ씨를 본 서울 중구 덕수궁 매표소 직원은 난처한 표정을 지었다. ㄱ씨는 단발머리에 화장을 하고 왔다. 그는 ‘MTF’(Male To Female·남성에서 여성) 트랜스젠더다. 주민등록증의 뒷 번호는 아직 숫자 ‘1’이다.
무료입장을 거부당한 ㄱ씨가 주민등록증을 보여주며 “나는 트렌스젠더 여성”이라고 밝혔다. 매표소 직원은 그제서야 “주민등록상 성별이 남자이니 남성 한복을 인정해주겠다”며 무료입장권을 건냈다.
보여지는 성별은 남성이지만 성 정체성은 여성인 성소수자 ㄴ씨는 저고리와 치마를 입고 덕수궁에 들어가려고 했다. 그러나 그의 시도는 끝내 실패했다. 문화재청은 같은 이유를 댔다.
이날 한복을 입고 덕수궁 무료입장을 시도한 성 소수자, 인권활동가 등 14명 중 4명만이 무료입장에 성공했다.
민주사회를위한변호사모임(민변) 소수자인권위원회는 이날 오전 11시 서울 종로구 광화문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성별이분법적인 문화재청의 한복착용자 무료관람 가이드라인에 대해 인권위에 진정을 제기하겠다”고 밝혔다. 이들은 “성별에 따른 고정관념을 강화하고 개인의 자유를 침해하는 규정이라는 비판이 수차례 있었으나 가이드라인은 그대로”라며 “이에 공동대리인단을 꾸려 법적 대응 하기로 했다”고 설명했다.
문화재청 경복궁 홈페이지 한복착용자 무료관람 가이드라인을 보면 ‘남성은 남성한복, 여성은 여성한복 착용자만 무료관람 대상으로 인정’한다고 명시돼 있다. 한복 착용자에 한해 적용하는 무료관람 기준이 있지만 성별에 따라 한복을 입어야 한다고 정해둔 것이다.
문화재청은 또 해당 가이드라인과 관련한 예시 질문과 답변에서 “여성관람객이 저고리와 바지(남성한복 바지 모양)을 착용한 경우, 이것도 한복인가요?”라는 질문에 “아닙니다. 여성은 여미는 깃의 저고리에 치마를 갖춘 경우 한복으로 인정한다”고 밝혔다.
이날 기자회견에 참석한 공익인권변호사모임 희망을만드는법 박한희 변호사는 “성 정체성과 신념에 맞게 한복을 표현할 자유가 있으며 (가이드라인에 의해) 헌법상 보장되는 자기결정권, 인격권이 침해당하고 있다”며 “성별이분법 가이드라인을 폐지하길 바란다”고 밝혔다.
박 변호사는 이어 “한복 무료 관람 가이드라인 가장 큰 문제는 국가가 남자는 바지, 여자는 치마라는 시대에 맞지 않는 성별고정관념을 규정이라는 이름으로 공고히 하고 있다는 것”이라며 “시대적 흐름이 반영되지 않은 가이드라인이 전통이라는 이름으로 유지될 수 있는지 의문”이라고 지적했다.
진정인 대표로 발언한 송정윤 퀴어여성네트워크 운영위원은 “겉으로 드러나는 모습을 기준으로 한 개인의 성별을 판별하는 것은 공보상의 성별과 자기가 인지하는 성별이 다른 사람들, 즉 성소수자들에겐 낙인이자 상처가 될 수 있다”면서 “특히 공공기관에서 이런 차별적 규정을 두는 것은 세계적 흐름에도 맞지 않다”고 주장했다.
한복을 입은 참석자들은 “문화재청은 가이드라인을 폐지하라”, “문화재청은 평등의 문을 열어라” 등의 구호를 외치며 광화문에서 덕수궁으로 이동해 무료입장 시도 퍼포먼스를 진행했다.
민변 소수자인권위는 지난 5일부터 12일까지 1주일 동안 97명의 진정인을 모집했으며, 이들을 대리해 오는 22일 인권위에 진정을 제출할 예정이다.
<이유진 기자 yjleee@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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