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못된 엄마 현실 육아] (13) 아이와 반려동물의 미치도록 행복한(?) 동거

이미나 2017. 12. 18. 11: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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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학교 2학년 때, 강아지를 데리고 약수터 산책간다고 하신 아빠가 심상치 않은 표정으로 돌아오셨다.

알고 보니 인적 드문 길을 목줄 없이 걷던 강아지가 차에 치여 저세상으로 간 것이었다.

하루아침에 둘도 없는 친구를 잃은 나는 며칠간 먹지도 마시지도 않고 울기만 했던 기억이다.

그때 다시는 강아지를 키우지 않겠다고 생각했다.

어려서 뱀도 맨손으로 잡았던 내 성향을 닮았는지 우리 아이들도 움직이는 생물이라면 뭐든지 좋아한다. 파충류 체험전을 가면 도마뱀과 개구리가 귀엽다고 하고, TV속 보이는 것마다 키우고 싶다고 난리를 치니 이런 것까지 유전이 되나 신기할 따름이다.

책도 동물그림책, 파충류책, 바다그림책, 진화그림책 등 동물 관련 책을 좋아하던 아이들은 틈만 나면 강아지를 키우고 싶다고 졸라댔다. 맞벌이라 종일 강아지 혼자 있어야 하는데 그건 너무 외로워서 안된다고 완강하게 거절 또 거절. 

그러던 어느 날 시골에서 유정란을 부화시켜보겠다고 품에 안고 다니는 아이 모습이 너무 귀여워서 몇 알을 집에 가져왔다. 인터넷을 뒤져보니 스티로폼 박스와 온도계, 발열 전구만 가지고 부화에 성공했다는 사람이 있었다. 알을 매일 수차례 굴려가며 기다리기를 일주일… 기대도 안했는데. 헉 정말 알 속에 거무스름한 뭔가가 자라나고 있었다. 정확히 21일 후 알 속에서 희미하게 '삐약'소리가 들려올 때는 너무 신기해서 소름이 돋았다. 조그맣게 알에 금이 가고 하루가 지났지만 알은 부화할 생각도 안 하고 여전히 간헐적으로 '삐약' 소리만 들렸다. 언제 부화가 될지 불안해서 회사도 못 가겠고 잠도 못 잘 지경이었다. 또 하루가 지난날 새벽 3시, 나 홀로 기다리다 병아리가 부화하는 모습을 생생히 지켜볼 수 있었다.  

오 이런 생명의 신비 같으니라고... 이제 난 더 이상 달걀은 못 먹겠구나 싶었다. 귀엽고 보송보송한 병아리를 직접 본 아이들도 난리가 났다.

다섯 개 중 아직 한 마리 밖에 부화가 안됐는데 난 3박4일 출장을 가야 했다. 나머지 부화 과정은 가족에게 맡기고 다녀와보니 5마리 중 두 마리는 이미 사망했고 남은 병아리들도 비실비실 거리고 있었다. 모이도 주고 감기약도 줘봤지만 소용없었고 매일 하루 한 마리씩 죽어나가는 통에 병아리들을 묻어주려 3일 연속 뒷산으로 삽 들고 올랐다. 

아이들은 왜 힘들게 밤에 산까지 꼭 가야하냐고 투덜댔지만 동물의 죽음을 하찮게 여기게 해서는 안된다는 생각에 주장을 굽히지 않았다.
 
알고 보니 알에서 부화된 후에도 며칠간은 똑같이 전등 아래 따뜻하게 체온을 유지시켜 줘야 했는데 처음이라 미처 그걸 몰랐던 것이다.

그렇게 병아리들을 묻어주고 온 날은 다 함께 넥스트의 '날아라 병아리'를 들었고 3일 내내 대성통곡을 했다.

생명이 부화하는 힘겨운 장면을 눈으로 직접 봤는데 내 불찰로 죽게 했다는 우울감이 일주일도 넘게 갔고 기분은 늘 다운돼 있었다.

그렇게 우울감에 허우적거리던 나는 어느 애견센터를 지나면서 강아지에 눈길을 주게 됐고 정신 차려보니 우리 부부가 장모 치와와 새끼 분양 계약서에 사인을 한 뒤였다.

그렇게 우리 식구가 된 초롱이. 우리가 집에 없는 하루 종일 뭘 하고 지내는지 궁금해서 베이비시터 손에 아이를 맡길 때도 설치하지 않았던 홈 CCTV를 설치했다.


아... 정말 하루 종일 잠만 자는구나. 너무 안쓰러웠다. 얼마나 심심할까 싶어 몇 달 후 우리는 또 한 마리의 치와와를 다시 분양받았다. 두 마리가 우리 없어도 알콩달콩 재미있게 장난도 치고 놀 줄 알았는데...

종일 잠만 자는 두 마리의 강아지가 거기 있었다. 정말 자고 또 잠만 잔다.

이래서 강아지가 외롭다고 한 마리를 더 키우면 외로운 강아지가 두 마리가 된다고 하는 거구나 절감했다.

아이들의 동물 사랑은 끝이 없었고 나는 또 못 이기는 척 앵무새, 거북이, 구피 물고기, 육지게까지 거느리게 됐다.

반려동물을 키우면서 확실히 드는 생각은 아이들의 책임감이 전보다 높아졌다는 것이다.

심리학적으로도 반려동물과 교감하는 아이일수록 정서적으로 안정되는 반면, 공격성은 줄어든다는 연구 결과가 있다. 개나 고양이와 같은 반려동물을 키우면 아이들의 행복지수가 더 높아진다는 의미다. 

어느 날 홈 CCTV 속 모습을 보고 웃음을 빵 터트렸다. 무슨 아동학대 현장도 아니고… 아이들은 하원하면 개 울타리 안에서 책도 보고 놀기도 했다.

하지만 늘 좋은 면만 있는 것은 아니다.

아이 둘 키우랴, 직장 다니랴 정신없는데 그 와중에 강아지 밥 주기, 목욕시키기, 거북이 밥 주기, 앵무새 물 갈아주기, 육지게 밀웜 주기, 털 때문에 청소기 두 번씩 돌리다 보면 잠 들기 전 화장 지우는 것조차 힘겨운 날이 많다.

'강아지만 키우게 해 주면 목욕도 내가 시키고 밥도 내가 주고 똥도 다 내가 치우겠다'던 아이의 약속은 안드로메다로 간지 오래. 이리 빼고 저리 빼고 '이따 할게', '깜빡했어', '왜 나만 자꾸 치워야 해'하면서 불평이 늘었다.

하는 수 없이 당번제를 도입해서 홀수인 날은 큰 아이가 밥과 배변을 맡고, 짝숫날은 작은 아이가 담당하면서 아이와의 말씨름이 줄어들게 됐다. 

"똥 치운다는 약속을 지키지 않으면 딴 집에 데려다주겠다"고만 하면 군대에서처럼 일사불란하게 움직이던 아이들은 이제 더 이상 이 엄포를 무서워하지 않는다. 내가 강아지를 더 예뻐한다는 것을 알고 나서부터 인 것 같다. 그래서 이제는 하는수 없이 간식금지로 아이들을 위협중이다.

앞으로 강아지 배변 치우기를 또 미룬다면 그땐 내가 집을 나가버리겠다고 해버릴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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