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와人드] 태극마크만 15년, 살아있는 '배구史' 장윤창

최민지 2017. 12. 18. 07: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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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와人드'는 되감는다는 영어 단어 '리와인드(rewind)'와 사람을 뜻하는 한자 '人'을 결합한 것으로서, 현역 시절 뛰어난 활약을 펼친 선수의 과거와 현재를 집중 조명하는 코너입니다.<편집자주>

[스포츠서울 최민지 인턴기자] 평생에 한 번 달기도 힘든 태극마크를 무려 15년 동안 가슴에 달고 코트 위를 누빈 선수가 있다. 1980~90년대를 풍미했던 대한민국의 살아있는 배구 역사 장윤창(57)이 주인공이다.

고등학교 2학년(17세), 파격적인 발탁이라는 평가와 함께 최연소 국가대표로 뽑힌 장윤창은 1978년 9월 이탈리아 안코나에서 열린 제9회 세계 남자 배구선수권대회에서 화려하게 신고식을 치렀다. 대한민국 배구 역사상 최초로 세계 대회 4강 진출이라는 업적과 함께 대중의 머릿속에 '장윤창' 이름 석 자를 제대로 각인시켰다.

대표팀으로서 그해 제8회 방콕아시아경기대회 남자배구 금메달, 1982년 제9회 뉴델리 아시안게임 남자배구 금메달을 목에 걸었던 그는 1984년부터 시작된 국내 대통령배 배구대회(프로 리그 출범 전 대학팀과 실업팀이 함께 참여해 겨울에 개최되던 가장 큰 대회)도 주름잡았다.

뛰어난 체공력과 유연성에서 나오는 호쾌한 백어택과 국내 최초로 시도한 스파이크 서브, 일명 '돌고래 서브'는 많은 팬들을 열광시켰다. 1980년대 남자배구의 인기를 절정으로 이끌었던 최고의 스타로서 첫해 MVP를 거머쥐었고 4년 연속 인기상을 획득, 이 기록은 아직도 깬 선수가 없다.

1986년 제10회 서울 아시안게임 남자배구 은메달, 1990년 제11회 베이징 아시안게임 남자배구 은메달 등 국제경기를 비롯해 창단 때부터 몸담았던 소속팀 고려증권에서도 바쁘게 활약했다. 장윤창 없는 고려증권은 상상할 수 없을 만큼 팀 내 존재감이 높았던 그는 1990년 대통령배 배구대회에서 두 번째 MVP를 수상했다.

장윤창의 배구 인생은 10년을 훌쩍 넘어갔고, 1992년 바르셀로나 올림픽을 마지막으로 15년간 가슴에 달았던 태극마크를 내려놓았다. 소속팀 고려증권에서 1994년 34세의 나이로 마지막 우승을 거둔 후 그는 정들었던 코트를 떠났다.

<1990년 3월 7일 스포츠서울 3면>

장윤창·유영미 "코트 최고수" - 힘보다 눈·머리로 게임 푸는 '배구 도사'

"후배들이 받아야 할 상인데…."

84년 원년 MVP에 이어 6년 만에 다시 최우수선수로 뽑힌 장윤창은 "6명 선수 전원의 희생과 노력으로 얻은 대가를 혼자 차지하는 것 같아 송구스럽다"며 말문을 열었다.

장윤창의 플레이를 보고 배구인들은 "이제 도사의 경지에 이르렀다"고 말할 정도.

예전엔 힘으로 했다면 최근 들어 눈과 머리로 경기를 풀어간다. 술·담배를 쳐다보지도 않는 철저한 규칙 생활과 체력 훈련을 해와 국가대표 12년 경력의 베테랑다운 노련한 개인기는 이번 대회에서 군계일학으로 돋보였다. 강연타의 적절한 안배로 힘을 아끼는 배구를 하면서도 어려운 볼처리와 고비 때마다 높은 서전트 점프를 이용, 돌고래처럼 솟아오르며 터뜨리는 후위 공격으로 고려증권 플레이에 활기를 불어넣었다.

활화산과 같은 불꽃 투혼을 보인 그의 플레이는 배구가 기록보다는 흐름이 중요한 경기임을 입증해 보였다.

지난해 10월 이후 "후배들에게 길을 열어주겠다"며 대표 은퇴를 표명했던 장윤창은 최근 선배들의 권유를 받아들여 대표팀에서 필요로 한다면 9월 북경 아시안게임에서 우승을 위한 밑거름이 되겠다"고 배구에 대한 끝없는 열정을 드러냈다.

고려증권이 승리하자 포효하는 장윤창. 1983년 고려증권 창단 당시 이강학 회장은 단장에게 '장윤창을 데리고 오라'는 특별 지시를 내렸다.

장윤창은 청소년대표를 포함하면 무려 17년 동안 태극마크를 달았다.

1984년 대통령배 배구대회 첫 해 MVP로 선정된 장윤창. 그는 1990년에도 MVP로 선정되며 총 두번의 영광을 안았다.

1984년부터 87년까지 4년 연속 대통령배 배구대회 인기상을 받았던 장윤창. 현재까지 이 기록을 깬 선수는 없다.

강력한 스파이크를 때리는 장윤창. 현역 시절 그가 선보였던 백어택과 스파이크 서브는 많은 팬들의 사랑을 받았다.

은퇴 후 미국 유학을 떠난 그는 스포츠경영학 석사학위를 받았고, 2003년 경기대학교 체육학과 교수로 부임해 학생들을 가르치는 데 힘쓰고 있다. '함께하는 사람들'이란 봉사 활동 단체까지 조직해 현역 시절 받았던 사랑을 되돌려 주고 있는 장윤창. 코트를 떠난 지 25년이 되어가는 지금, '교수' 장윤창은 어떤 삶을 살고 있는지, 오는 21일 공개한다.

julym@sportsseoul.com

사진ㅣ스포츠서울 D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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