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키워드로 본 2017 경제]①J노믹스 - 가계 중심 '소득주도 성장', MB·근혜노믹스와 마찰

박병률 기자 2017. 12. 17. 21: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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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향신문] ㆍ‘복지=투자’ 패러다임 변화…장하성·김현철·김동연·김상조 영입
ㆍ최저임금 1만원·공무원 증원 등 공약, 각계 반발로 상당부분 주춤
ㆍ‘포용적 성장’ 국제적 흐름…내년 6월 지방선거가 최대 고비될 듯

한국 경제는 올 한 해 전환기였다. 문재인 정부는 최저임금의 파격적 인상 등 보수정부에서 좀처럼 보기 힘들었던 정책을 전면에 내세웠다. 올해 성장률 3.0% 달성은 확정적이나 중국의 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사드) 보복, 반도체 위주의 편향된 경제구조, 여간해서는 잡히지 않는 집값은 한국 경제의 생채기로 남았다. 탈원전 시대 안착, 비트코인 광풍의 후유증 극복 등은 풀지 못한 과제다. 올해를 달군 경제 이슈들을 키워드로 정리해보는 시리즈를 싣는다.

“사람에게 투자해 기업과 국가의 경쟁력을 살리는 ‘사람 중심의 경제성장 구조로 바꾸겠다.”

지난 4월12일 문재인 더불어민주당 대선후보는 서울 여의도 당사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자신의 경제비전을 이같이 밝혔다. 이른바 ‘J노믹스’의 시작이었다. J노믹스란 재인의 ‘J’와 경제(Economics)를 합친 용어다. J노믹스는 이명박·박근혜 보수정부 9년간 지속된 경제체제를 지속할 수 없다는 경제패러다임 전환을 위한 선언이었다. ‘기업은 부자인데 내 형편은 왜 풀리지 않나’ ‘수출은 잘되는데 일자리는 왜 늘지 않나’ ‘열심히 일하는데 소득은 왜 늘지 않나’는 질문에 대한 대안이라는 얘기다. 기업과 고소득층이 잘되면 경제 전체에 훈기가 돌 것이라는 ‘낙수효과’에 대한 믿음이 약해지던 시점이었다.

J노믹스의 핵심은 ‘소득주도 성장’이다. 소득을 사회에 적절히 잘 분배하면, 소비가 늘고 생산이 증가해 다시 성장으로 이어진다는 논리다. 가계를 성장의 주체로 바라보기 시작했고, 복지를 지출이 아닌 투자로 생각했다는 점에서 기존 경제학과 궤를 달리하고 있다. 정부 역할을 강조한다는 점에서 케인스주의로 분류되고, 공급(생산자)보다 수요(소비자)를 중시한다는 데서 수요 경제학으로 가르마가 타진다.

J노믹스를 추진하기 위해 ‘장하성펀드’로 재벌 지배구조개혁에 불을 지폈던 장하성 고려대 교수가 청와대 정책실장이 됐고 국내에서는 보기 드문 일본파 경제학자인 김현철 서울대 국제대학원 교수가 경제보좌관으로 임명됐다. 김동연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은 재정의 적극적인 역할과 사회보상체계에 관심이 많은 경제관료 출신이다. ‘재벌 저승사자’로 불렸던 경제개혁연대 소장 출신의 김상조 공정거래위원장이 뒤를 받치도록 진용이 짜였다.

문 대통령의 의지는 강했다. 대선 승리 후 첫 방문지로 인천국제공항공사를 찾아 공공부문 비정규직의 정규직화에 불을 지폈다. 이어 최저임금 1만원, 공무원일자리 증원발표 등을 이어갔다. J노믹스를 담은 2018년도 예산안에서는 지출을 7%까지 늘리고 복지·고용·노동, 교육, 일반행정 등의 예산을 증액시켰다.

하지만 한 번에 세상을 바꾸기는 어려웠다. 지난 50년간 성장주의에 익숙해진 사회경제체제는 J노믹스와 곳곳에서 마찰을 일으켰다. 분배를 강조하는 J노믹스가 성장 위주의 기존 경제체제와 잘 접목될지 누구도 자신할 수 없었다. 기득권을 지키려는 기존 경제주체들의 반발이 이어졌다. 최저임금인상과 비정규직의 정규직화에는 사용주들이, 사회간접자본(SOC) 축소에는 건설업계가, 문재인케어 확대에는 의사들이 반대했다. 국회 과반수를 차지하고 있던 야당은 2018년 예산안을 심의하면서 공무원 증원 수를 축소하고 복지예산은 삭감했으며 SOC예산을 상당부분 되살렸다.

새 정부와의 ‘허니문’이 끝나자 주류경제학계의 반발도 시작됐다. 한국경제학회가 주최한 지난 9월 말 토론회에서는 “소득주도 성장론은 복지적 조치일 뿐 성장으로 이어진다는 것은 실증되지 않았다”며 “기업의 비용을 높이고 가격경쟁력을 떨어뜨려 기업경쟁력을 떨어뜨릴 수 있다”는 우려가 이어졌다. 이 같은 우려에 정부는 지난 10월 이후 ‘혁신성장’을 부쩍 강조하고 있다. 혁신성장도 J노믹스의 한 축이지만 소득주도 성장에 가려 상대적으로 잘 알려지지 않았다는 이유에서다. 하지만 혁신성장을 강조하다보면 J노믹스가 길을 잃을 수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박근혜 정부의 창조경제만큼이나 모호한 개념이기 때문이다.

J노믹스는 세계적 흐름이라는 주장도 있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와 국제통화기금(IMF) 등이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강조하는 ‘포용적 성장’이 결국 J노믹스라는 것이다. 실제 IMF는 한국과 연례협의 때마다 더 돈을 풀어 복지를 강화하라고 주문하고 있다.

J노믹스는 내년 6월 지방선거가 최대 고비가 될 것으로 보인다. 여당이 압승하면 J노믹스는 탄력을 받게 된다. 집권 2년차인 데다 성장률도 3% 내외로 예상되는 등 경제지표가 나쁘지 않다. 세수가 좋아 실탄 역시 넉넉하다. 반면 청년고용이 더 악화되고, 지방선거에서 패한다면 J노믹스는 급속히 동력을 잃을 수도 있다.

<박병률 기자 mypark@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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