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근태 가족이 주고받은 '감옥 편지'..그가 왔나, 따뜻하다

김종목 기자 입력 2017. 12. 17. 21: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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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향신문] ㆍ6주기 맞아 ‘젠장 좀 서러워합시다’ 출간·추모전 등 잇따라
ㆍ민주주의자·평등주의자·딸바보…옥중으로 보낸 편지도 첫 공개
ㆍ편지 함께 읽기·필사로 ‘연대’…‘따뜻한 장바구니’ 세월호 후원

김근태가 1986년 8월30일 옥중에서 인재근에게 보낸 편지. 알마 제공

2011년 10월15일 가을비가 장맛비처럼 세차게 내렸다. 김근태는 우산 없이 비를 맞고 길을 헤맸다. 건강에 큰 이상이 생겼다. 의사는 파킨슨병 징후라고 했다. 김근태는 11월29일 뇌정맥혈전증으로 입원했다. 딸 병민의 결혼식 열흘 전이다. 그는 12월30일 세상을 떠났다. 장례가 끝난 뒤 김근태 아내 인재근이 딸에게 청첩장과 두 번 접힌 종이 한 장을 건넸다. 김근태가 입원할 때 점퍼 주머니에 들어 있던 것이다.

‘서로의 건강과 이웃의 평화를 지키는 파수꾼이 되어라’ ‘서로 대화를 할 수 있는 용기를 가져라’ ‘서로 다른 것이 있다는 것을 흔쾌히 받아들여라’. 김근태가 주례를 설 때마다 가지고 다녔던 메모다. 딸을 위해 준비한 주례사이기도 했다. 병민은 “ ‘딸 바보’였던 아빠가 준 마지막 선물”이라고 말한다. 이 사연은 <젠장 좀 서러워합시다>(알마)에 나온다. 김근태가 감옥살이 할 때 가족이 주고받은 편지를 엮은 책이다. 인재근이 김근태에게 보낸 편지는 처음 공개됐다. 책을 엮은 병민이 아버지를 기리며 쓴 글도 더했다.

콜트콜텍과 파인텍 노동자, 궁중족발 주인 부부·연대자들이 김근태·인재근 두 사람의 편지를 읽는 행위를 영상화한 리슨투더시티의 <끝나지 않은 편지 : 무릎꿇고 사느니 보다 서서 죽기를 원한다>. 김종목 기자

오는 30일은 ‘민주주의자 김근태’(1947~2011)의 6주기다. 추모전 ‘따뜻한 밥상’도 열리고 있다. 김근태를 기리는 출판과 전시를 묶는 공통 매체는 ‘감옥 편지’다.

책에선 민주주의자이자 평등주의자, ‘딸바보’에 연애 지상주의자인 김근태를 볼 수 있다. 김근태가 염색공장 보일러공으로 일하던 1978년 5월16일 인재근에게 보낸 편지 구절이다. “그냥 날아오르는 기분. 나무도 좋고 산도 좋고 사람도 좋고 여자도 좋고, 좋을시고. 약간 술에 취하고 또 옥순이한테 취해서 옥순이를 번쩍 들어 올려 안을 때. 내 심장 마구 푸드덕거리지 않겠어. 참 떨리더구만.” 동일방직 사건으로 수배 중이던 인재근은 ‘옥순’이란 가명을 썼다. 8일 뒤 인재근에게 쓴 편지엔 이런 내용이 들었다.

“이 사회에서 여자는 피소유물이고 남자는 소유주인 것이 여러 가지로 입증되고 있지. 이와 같은 부당한 제도를 도저히 용납할 수 없어. …우리는 누구도 우리를 지배하도록(그것이 사랑이라는 미명하에서든지 또 어떤 다른 명분, 예컨대 온정, 도움이라는 가면을 갖고서든지) 할 수는 없고, 동시에 마찬가지의 엄격함을 갖고 다른 사람을 지배해서도 안되지. 그런 것들을 용납할 수 없어.” 김근태는 일찌감치 남녀 차별과 평등을 고민하고 공부한 이였다. 그는 1991년 5월 병민과 아들 병준에게 보낸 편지에선 “아무런 근거도 없는 비뚤어진 생각이나 거짓에 따른 남녀차별, 남성 우월감은 남자 스스로를 타락시키고 구렁텅이로 빠지게 만드는 것”이라고 썼다.

1978년 김근태와 인재근이 결혼 약속 기념으로 찍은 사진. 알마 제공

<젠장 좀 서러워합시다>를 읽다보면 김근태가 손에 잡힐 듯 가까이 다가온 듯한 느낌을 준다. 고문과 투옥에서 비롯된 신체와 육체의 고통, 옥바라지에 대한 미안함을 겸손과 따뜻함의 언어로 썼다. 그는 감옥에서도 민주주의 열정과 사랑을 포기하지 않았다. 남영동에서 혹독한 고문 끝에 투옥된 지 3개월 뒤 면회 온 인재근에게 성치 않은 몸으로 그가 불러준 노래는 최진희의 ‘사랑의 미로’였다.

병민의 지금 나이는 김근태가 “전두환 군부독재를 깨뜨리기 위해 민청련의 깃발을 높이 들어 올렸을 때”인 서른여섯이다. 아들 병준은 “남영동에서 모진 시간을 보냈던 그때 나이”인 서른아홉이다. 병민은 “그 나이가 됐다는 건 이제 우리도 김근태 아빠를 더 잘 이해할 수 있게 됐다는 뜻”이라고 말한다.

김근태가 1992년 교도소에서 출소한 뒤 서울 수유리 집에서 딸 병민·아들 병준과 함께 있는 모습. 알마 제공

편지는 ‘따뜻한 밥상’전으로 이어진다. 서울 통의동 보안여관에서 오는 29일까지 열리는 이 전시(무료)엔 김근태와 인재근이 주고받은 편지가 나왔다. 민청련 의장 고 이범영, 부의장 장영달, 사회부장 권형택 가족의 편지도 공개됐다. 작가 이부록은 ‘필사적 필사’를 진행 중이다. 관객이 옥중 서간문 중 마음에 새겨지는 문구를 쪽지에 적으면, 전시 중 인두로 필사해 남기는 작업이다. 예술·건축·디자인 운동 그룹인 ‘리슨투더시티’는 영상작품 <옥바라지-끝나지 않은 편지 : 무릎 꿇고 사느니보다 서서 죽기를 원한다>를 내놓았다. 김근태의 민주주의를 ‘지금-여기’로 끌어내 ‘연대’하는 작업이다. 위장폐업·노조파괴에 맞서 10년 넘게 싸운 콜트콜텍 노동자, 408일 고공농성에 이어 굴뚝에 오른 파인텍 노동자, 건물주에게 폭력적 강제집행을 당한 궁중족발 사장 부부와 연대자들이 김근태·인재근 두 사람의 편지를 읽는 행위를 영상화했다.

‘노란Re-born共作所’는 세월호 유족에게 2주일에 한 번씩 음식 재료를 모아 배달하는 ‘따뜻한 장바구니’를 참사 직후부터 해왔다. 주최 측은 “김근태 정신이 주목한 ‘따뜻한 밥상’ 그 자체”라며 이들을 초대했다. 전시에선 세월호 유족의 ‘따뜻한 밥상’ 마련을 위해 쌀, 김, 차, 커피, 귤, 참기름, 식용유 같은 식재료를 관람객과 함께 모은다. 김월식, 신동호, 양아치, 언메이크랩, 이미경, 이아람, 임민욱, 임옥상, 정정엽이 작품을 내놓았다.

김근태는 “때로 생활 때문에 절망하지만, 그런 속에서도 여전히 정직하고 성실한 99%의 사람들이 무시당하지 않는 사회를 만드는 것이 내가 가야 할 길이라고 굳게 믿는다. … 거짓에 괴롭힘을 당하면서도 자신의 자리를 지켜온 그런 사람들에게서 나는 오늘도 희망을 건져 올린다”고 말한 적이 있다. 주최 측은 이번 전시가 일상의 민주주의를 위해 묵묵히 일한 이들을 위한 것이라고 했다.

<김종목 기자 jomo@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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