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늙었지만, 아직 좀 쓸 만해, 난 멋져"

임영근 입력 2017. 12. 17. 20: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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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서대문구 초등학교 급식도우미로 '인생 2막' 연 홍봉수씨

[오마이뉴스 글:임영근, 편집:이주영]

【오마이뉴스는 개인의 일상을 소재로 한 생활글도 뉴스로 채택하고 있습니다. 개인의 경험을 통해 뉴스를 좀더 생생하고 구체적으로 파악할 수 있습니다. 당신의 이야기가 오마이뉴스에 오면 뉴스가 됩니다. 당신의 이야기를 들려주세요.】

▲ 홍봉수 학교급식 일자리 참여한 홍봉수 씨
ⓒ 임영근
2017년 현재 서대문구에 거주하는 278명의 어르신이 12개의 학교에 파견돼 일하고 있다. 노인일자리사업과 사회활동지원사업에 따라 만 65세 이상 어르신들이 초등학교 급식도우미로 식당이나 교실에서 아이들의 배식을 도와주는 일을 한다. 2009년부터 시행돼 올해로 8년째다. 급식도우미로 활동 중인 홍봉수(74세) 어르신을 지난 8일 만나 이야기를 들어봤다.

- 급식도우미로는 언제부터 참여하게 됐나요?
"제가 지금 74세이니 벌써 몇 년 전 일이네요. 만 65세부터 학교에 나가기 시작했어요. 그때, 이웃분이 이런 일자리가 있다고 소개를 해주셔서 처음 알게 되었죠."

- 다른 일자리는 참여한 적 없나요?
"다른 일자리는 참여한 적이 없고, 한 우물만. 이 학교(북가좌초)만 다녔어요. 저도 나이가 들어서 그렇지만, 다른 어르신들도 여러 가지 일을 경험하시는 것보다 좀 익숙한 일을 계속하시는 걸 좋아하시는 거 같아요."

- 65세 전에 직장생활 해 본 적이 있나요?
"그럼요. 일을 계속했었어요. 60대 초반까지 큰 뷔페에서 조리사 일을 했었어요. 60대가 되니까 그런 일은 힘에 부쳐서 그만두게 되었죠. 다니면서는 너무나 힘들어서 '언제 그만두나, 빨리 그만둬 버려야지' 하고 늘 생각했었는데 집에서 쉬게 되니까 쉬는 것도 괴로운 일이 되었어요. 하루 이틀 쉴 때야 좋았지만, 계속 집에만 있으려니 답답해서요. 그 차에 이런 좋은 일자리가 있게 됐다는 걸 알게 돼서 참여하게 되었어요. 아, 어쩌다 보니 처음부터 반장으로 참여했어요. 하하."

"일 힘들 때도 있지만... 작은 갈등과 긴장감들이 건강에 도움 줘"
▲ 배식 북가좌초교 급식 배식하는 모습
ⓒ 임영근
- 배우자가 '점심시간마다 학교에 간다'고 싫어하진 않던가요?
"전혀요. 남편도 그렇고, 저도 그렇고 우리 나이 때 사람들은 일찍 일어나잖아요. 그래서 아침도 일찍 먹고, 점심도 일찍 먹고 학교에 가요. 그래서 생활하는 데에는 전혀 지장을 받지 않고요. 제가 학교 가니까 남편은 참 좋아해요."

- 용돈 벌어 온다고 좋아하는 건가요?
"하하. 물론 돈을 버는 것도 의미가 있지만, 그것보다는 집에 둘이 종일 있으면 자주 다투고요(웃음). 제가 밖에 가서 활동하니까, 집에서도 활기차서 좋다고 해요. 생각해보세요. 이런 일자리사업에 참여하지 않으면, 제가 어디를 다닐 데가 있겠어요. 물론 복지관이나 경로당 이런 곳도 있지만, 누군가가 저를 필요로 하는 곳에 간다는 마음이 있어서 더 즐거워요."

- 자제분들은 뭐라고 하나요?
"자식들은 너무나 좋아하죠. 특히 딸들이 예전 생각하면서 좋아해요. 외손자 학교 다닐 땐, 이런 게 없었거든요. 딸이 가끔 학교에 가서 배식 봉사활동을 했었는데, 당번이라 가기로 해놓고 급한 일이 생기면 할머니인 제가 대신 가서 대신 봉사를 했었던 기억이 나네요. 딸이 그래요. 아이가 어릴 때, 학교에서 일하는 어르신이 계셨다면 그렇게 마음 쓰지 않아도 됐을 텐데 하고 말이에요."

- 일은 늘 즐겁기만 하면 좋을 텐데, 때때로 힘든 일도 있지 않나요?
"지금도 힘은 들어요. 우리 학교는 무거운 식판도 끌어야 하고 해서, 힘에 부칠 때도 있죠. 가끔 속상한 일도 생기고요. 가끔 무단으로 결석하시는 어르신들이 있으면 걱정도 되고요. 그렇게 늘 신경이 쓰여요. 그래도, 그 작은 갈등과 긴장감들이 저를 더 건강하게 유지해 주는 것 같기도 해요. 나는 아직도 이런 일들을 해내고 있다는 자신감이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나는 늙었지만, 아직 좀 쓸 만해, 내가 멋지다, 그렇게 생각하며 자신감으로 이어지고 있어요."
▲ 급식학교 초등학교 급식을 위해 어르신 일하는 모습
ⓒ 임영근
- 일하면서 속상한 적이 있나요?
"저야 힘이 좋아서 무거운 것도 곧잘 밀고 하지만, 모든 어르신들의 체력 상황이 같진 않아서 적당하게 일을 나누어서 하고 있어요. 가끔 어떤 어르신은 충분히 할 수 있는 일인데도 귀찮고 힘드니 젊은 사람들에게 일을 미루곤 하세요. 저는 그런 걸 보면 속상했어요. 힘이 부치니까 그렇다는 건 잘 알지만 '우리가 할 수 있는 일들을 해내자'라는 마음가짐이 저희를 더 젊게 해 준다고 생각하고 있거든요.

그리고 자주 있는 일은 아니지만, (외모 등을) 깔끔하게 하지 않고 학교 오는 어르신이 계셔서 제가 반장이기도 하니 말씀을 드린 적이 있어요. 그 어르신은 이해를 해주시고 그렇게 하지 않겠다고 약속해주셨는데, 저는 다른 분들도 좀 더 책임감을 가지고 위생 부분은 철저하게 신경 써 주시면 좋을 거 같아요."

- 끝으로 하고 싶은 말씀이 있으신가요?
"여기서 만나는 분들이 다 같이 하시는 말씀이 있어요. 여기가 인생의 마지막 직장이니 오래오래 잘 다니고 싶다고요. 그만큼 이 일자리가 소중하다는 이야기겠죠. 그리고 아주 가끔 '자식들이 학교에 나가는 걸 좋지 않게 이야기한다'고 어르신들이 말씀하세요. 돈이 없냐고, 그냥 용돈 넉넉히 드릴 테니 집에서 쉬시라고요.

그런데 그것보다 더 중요한 게 있잖아요. 돈도 돈이지만, 그보다 더 중요한 게 있어요. 집 밖에 나와서 동료 노인뿐만 아니라 아이들, 선생님, 다른 학교 종사자 등 다양한 사람들과 이야기하다 보면 그들에게 내가 필요한 존재라는 걸 느끼거든요. 혹시라도 집에 부모님이 일을 하러 다니신다면, 부끄럽게 생각하지 마시고 자랑스럽게 생각해 주시면 좋겠다는 말씀 꼭 드리고 싶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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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시니어신문에도 실렸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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