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철민의 돈테크무비] 영화 '스테이션7', 지구가 평평하다고 믿는 이들에게 던져진 묵직한 메시지

이철민 인터넷 칼럼니스트 2017. 12. 17. 18: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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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함 포템킨’ 이후에 첨으로 본 러시아 영화였어요.” 무심결에 네티즌 평점을 읽다가 발견한 이 문구에 혼자 빵 터지고 난 후 생각해보니, 마지막으로 본 러시아 영화가 무엇인지 생각이 나지 않았다. 대학 때 졸면서 봤던 타르코프스키의 영화들은 아니었던 것 같고, 아마도 90년대 말에 본 비탈리 카네프스키 감독의  ‘얼지마 죽지마 부활할거야’가 마지막이었던 듯 하다.

제목과 포스터만 보면 영락없이 할리우드의 SF영화, 그것도 ‘그래비티’를 떠올리게 만드는 ‘스테이션7’은, 그렇게 20여년만에 스크린에서 만난 러시아 영화였다. 예고편만 보면 ‘그래비티’에 ‘인터스텔라’를 섞고 ‘아폴로13’을 버무린 듯한 느낌이 드는데, 허구가 아닌 “인류 사상 최고의 우주 수리 사례”로 꼽히는 실화를 바탕으로 만들어졌다는 것이 큰 차이점이다.   

구 소련의 우주 정거장에서 발생한 문제를 우주 비행사들이 해결한 실화를 바탕으로 만들어진 영화 '스테이션7’ - 영화사 진진 제공

그 실화란 1985년 2월 11일 지구 저궤도를 돌던 소련의 우주 정거장 살류트-7(Salyut-7, 러시아어로는 Салют-7)호에 예상치 않은 문제가 발생하면서 시작된다. 무인 상태이던 정거장의 전력이 갑작스럽게 차단되고 시스템이 완전히 셧다운 되면서, 지상으로 추락할 가능성이 생긴 것. 냉전이 한창이던 시점이라 이 상황은 양 진영 모두에서 초미의 관심을 끌게 된다. 

서구 국가들은Salyut-7이 핵무기를 장착하고 있을 수 있다며 추락과 동시에 핵폭발이 가능하다며 호들갑을 떨었고, 소련은 미국이 챌린저호를 발사하여 Salyut-7를 수거할 경우 핵심 기술이 유출될 수 있다는 공포에 휩싸였다. 최선의 방법은 빠른 시일 내에 수리를 하는 것이었지만, 차츰 궤도를 이탈해가며 빠르게 회전하고 있는 Salyut-7에 도킹을 하는 것부터가 불가능한 임무로 보였다.

▲ 샬류트-7호의 수리 임무 당시의 자료 화면들

영화는 그런 상황에서 Salyut-7을 정상화시키기 위해 목숨을 건 수리 작업을 성공적으로 마무리함으로써 소련의 국민적인 영웅이 된 우주 비행사 블라디미르와 빅토르를 주인공으로 하고 있다. 영화 중간중간에 다소 과장된 설정들이 눈에 거슬리기도 하지만, 최악의 상황에서 주인공들이 예상치 못했던 이슈들을 하나하나 해결해 나가는 과정 자체는 매우 흥미진진하다.

그런데 이 시점에서 할리우드에서 만들어진 ‘그래비티’와 같이 더 세련된 영화들보다, 이 영화가 이 시점에서 더 주목을 받아야 하는 명백한 이유가 하나 있다. 인류의 과학적 성과를 완전히 무시하고 ‘평평한 지구’(Flat Earth)를 믿는 사람들이 빠르게 늘어나고 있기 때문이다.

평평한 지구를 믿는 사람들이 그린 지구의 모습

그렇게 평평한 지구를 믿는 사람들이 있다는 사실이 본격적으로 주목을 끈 것은 지난해부터였다. 미국을 중심으로 10만명이 넘는 사람들이 ‘평평한 지구 학회’(Flat Earth Society)라는 모임을 만들고 홈페이지를 운영하며, 유튜브나 소셜 미디어에 지구가 평평하다는 억지 주장을 편다는 것이 미디어를 통해 가십거리로 다루어지기 시작했던 것이다.

그러다 올 해 중반부터 미국의 다양한 유명인들이 평평한 지구설을 지지하는 듯한 발언을 쏟아내고, 이를 증명하기 위해 독자적으로 위성을 쏘겠다는 계획까지 밝히면서 더 많은 주목을 끌었다. 그리고 결정적으로 지난 11월 미국 노스캐롤라이나에서 평평한 지구 학회의 첫번째 콘퍼런스가 열리면서, 그들을 바라보는 시각이 우려에서 공포로 변한 상황이다.

지난 11월 있었던 평평한 지구 학회의 컨퍼런스를 알리는 홈페이지

그런데 이런 일이 “지구의 나이가 1만년 미만”이라고 믿는 사람이 44%나 된다는 미국에서만 벌어지고 있는 것이 아니다. 우리나라에서도 평평한 지구를 믿는 이들이 상당수 존재한다는 것이, 지난 12월 8일 SBS에서 방영한 ‘궁금한 이야기 Y’를 통해 드러났기 때문이다. 전기공학 박사과정과 대기업을 그만두고 평평한 지구를 알리는데 집중하는 우리나라 사람들을 보는 것은 가히 충격적이었다.

그런 면에서 우주에서 바라본 둥근 지구의 모습을 배경으로, 불가능해보였던 임무를 완수한 실화를 담은 영화 ‘스테이션7’이 던지는 메시지는 매우 묵직하다. 오랜 기간 어렵게 축적해 놓은 과학적 성과들이 한 순간에 무너지도록 내버려 둬서는 절대 안 된다는 것이다. 지구가 평평하다고 믿었던 어두운 시대를 벗어나기 위해 바쳐야 했던 수많은 이들의 노력과 희생을 헛되게 할 수 없기 때문이다.
 

※ 필자소개
이철민. 학부에서 계산통계학을 전공하고 국내 IT기업들에 재직하다 미국 유수의 MBA과정에서 경영 석사 학위를 취득했다. 그 뒤 세계적인 경영컨설팅 회사에서 일했으며, 현재는 국내 사모펀드(PEF)에서 M&A 전문가로 활동 중이다. 『씨네21』, 『동아일보』, 『한겨레신문』등에 다양한 칼럼을 연재한 바 있으며, 저서로는 『인터넷 없이는 영화도 없다』, 『MBA 정글에서 살아남기』 등이 있다.

[이철민 인터넷 칼럼니스트 chulminlee@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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