망중립성, 국내서도 '뜨거운 감자'로

서동철 입력 2017. 12. 17. 17:26 수정 2017. 12. 17. 21: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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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연방통신위원회(FCC)가 2년 만에 망중립성 폐지 결정을 내린 가운데 국내 통신업계와 인터넷기업들이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특히 미국 정부의 이번 결정이 통신회사와 미디어업체 간 갈등의 불씨를 다시 지필 수 있는 '뜨거운 감자'라는 점에 국내에서도 만만찮은 파장이 예상되기 때문이다.

네이버와 카카오 등 국내 포털 기업들이 주축인 한국인터넷기업협회는 17일 성명을 통해 FCC의 망중립성 폐지 결정이 "인터넷기업들의 혁신과 향후 산업을 주도할 스타트업의 의지를 꺾어 인터넷 생태계 전반을 위협하게 될 것"이라며 전 세계 인터넷에 미칠 영향에 깊은 우려를 표명했다. 협회는 "망중립성 원칙은 향후 치열한 경쟁이 예상되는 4차 산업혁명 시대 스타트업들의 탄생과 성장을 이끌 기반"이라며 "인터넷 산업의 육성과 한국 스타트업들의 글로벌 시장 진출을 위해 정책당국이 망중립성을 더욱 공고하게 유지하고 강화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날 협회가 성명까지 낸 배경에는 우리 정부가 망중립성 유지 입장을 표명하고 있지만 앞으로 통신정책에 변화가 생길 가능성까지 염두에 둔 것으로 보인다.

망중립성이란 통신망을 갖고 있는 사업자가 망에서 서비스하는 사업자들을 차별해서는 안 된다는 개념이다. 예를 들어 SK텔레콤이 유튜브나 넷플릭스와 같은 특정 서비스의 전송 속도를 늦추거나 반대로 SK텔레콤과 특수 관계에 있는 옥수수의 서비스 속도를 높여서는 안 되는 것이다. 네이버, 카카오 등 인터넷사업자들의 이해를 대변하는 협회 우려와 달리 국내 이동통신업체들과 인터넷통신업체들은 내심 미국의 망중립성 폐기 결정을 계기로 한국의 통신정책에 변화가 생기기를 희망하고 있다. 특히 이동통신업체들은 앞으로 수년간 5G 네트워크에 천문학적인 투자를 해야 하는 입장에서 요금 인하 압박까지 받고 있어 수익자 부담 원칙을 강화해야 한다는 입장을 갖고 있다.

최근 들어 구글, 페이스북, 넷플릭스 등 인터넷 콘텐츠·플랫폼기업들이 제공하는 동영상 서비스는 모바일 데이터 용량을 폭증시키고 있다. 트래픽이 폭증하면서 통신사들은 원활한 서비스를 제공하기 위해 '울며 겨자 먹기' 식으로 투자를 해야 했고 이는 통신사들의 비용 부담으로 전가됐다. 대용량의 데이터를 한꺼번에 실시간으로 전송할 수 있는 5G 시대에는 트래픽에 대한 이슈가 더욱 커질 것이고, 5G 인프라 투자에 막대한 비용이 들어가는 만큼 통신사 입장에서는 인터넷 콘텐츠· 플랫폼기업들도 비용을 분담해야 한다는 입장인 셈이다.

이통사 관계자는 "스마트폰 확산에 따른 모바일 데이터 트래픽 폭증으로 합리적인 트래픽 관리에 대한 필요성이 높아지고 있다"며 "망중립성이 네트워크 사업자의 투자 유인을 저해하고 산업 경쟁력을 약화시키는 측면이 있어 미국 FCC의 결정은 5G 시대 도래를 앞둔 국내 산업에도 긍정적 영향을 미칠 것으로 본다"고 설명했다. 통신업계 관계자는 "자율주행차의 본격적인 도입을 위해선 자동차만 필요한 게 아니라 자동차와 도로 주행시스템 간 통신 등 사물인터넷을 기반으로 한 막대한 데이터 트래픽이 발생한다"며 "대한민국이 통신 강국이 되기 위해서는 통신회사와 수혜 기업 간에 적절한 수익 분배 구조가 갖춰져야 한다"고 밝혔다.

당장 국내에서 망중립성이 폐지될 가능성은 낮다. 과학기술정보통신부가 최근 통신사들의 기간통신사업자 법적 지위에 근거한 국내 망중립성 정책에는 변화가 없을 것이라고 발표했다. 또 문재인 대통령의 네트워크 기본권 확대 공약 역시 망중립성 강화와 맥락을 같이한다.

하지만 망중립성 폐지와 유사한 규제 완화 조치인 '제로레이팅'이 활성화될 가능성이 높다. 제로레이팅은 망 사업자가 망에서 서비스를 하는 제휴 서비스의 데이터 요금을 감면하는 것이다. 올 상반기에 SK텔레콤이 자사 가입자에게만 인기 모바일게임 '포켓몬고' 이용 시 데이터 비용을 전액 무료로 제공한 것과 같은 서비스다. 이통 3사는 OTT(인터넷 동영상 스트리밍) 서비스를 비롯해 내비게이션, 음원 서비스에 대해 자사 고객에게 데이터 사용료를 받지 않는 제로레이팅 서비스를 대거 도입한 상태다. 일부에서는 제로레이팅이 망중립성 원칙에 위배된다는 지적도 있다. 하지만 미국의 망중립성 정책 폐기로 제로레이팅은 더 활성화될 기반이 갖춰진 셈이다. 정부도 제로레이팅에 대해서는 탄력적인 입장이다. 물론 제로레이팅 활성화가 관련 분야 군소업체나 스타트업들의 탄생과 성장을 저해할 것이라는 우려의 목소리도 제기되고 있다. 막대한 데이터 비용을 감당해야 하는 만큼 자본력이 막강한 사업자만 시도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인터넷업계 관계자는 "네이버나 구글과 같은 사업자가 이통사와 제로레이팅 계약을 맺게 된다면 군소업체나 스타트업들은 밀릴 수밖에 없을 것"이라고 지적했다.

■ <용어 설명>

▷ 망중립성 : 인터넷망 서비스를 전기·수도와 같은 공공서비스로 분류해 콘텐츠사업자가 인터넷에서 데이터를 주고받을 때 데이터 내용이나 양에 따라 데이터 속도와 망 이용료를 통신사업자가 차별하지 못하도록 하는 원칙.

[서동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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