적폐청산-좌파광풍 '프레임 전쟁' 누가 이길까

2017. 12. 17. 15: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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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한용 기자의 정치 막전막후 176]

'적폐청산', 당장은 위력적이지만 지속 가능성엔 한계
전임 정권 비리 규명 미흡..지방선거 전 고비 맞을듯
'좌파광풍', 설득력 없어도 기득권 세력이 확대재생산
오래된 색깔론이 뿌리..비논리적 믿음의 영역에 기반

[한겨레]

지난해 12월24일 저녁 서울 광화문광장에서 산타클로스 복장을 한 ‘박근혜정권 퇴진 청년행동’ 소속 청년들이 청운효자동주민센터 앞까지 행진해와 박 대통령 모형에 대형 수갑 모형을 건 뒤 환호하는 모습. 김정효 기자 hyopd@hani.co.kr

정치가 어려운 것은 이중성 때문일 것입니다. 일상에서 작동하는 정치의 원리는 대화와 타협입니다. 모든 것을 정치적 거래로 결정합니다. 명분을 얻으려면 실리를 내줘야 하고 실리를 얻으려면 명분을 양보해야 합니다. 당연히 일방의 완승도 없고 완패도 없습니다.

그러나 정치의 또 다른 원리는 승부입니다. 승부는 선거로 가려집니다. 선거는 전쟁보다 더 지독합니다. 전쟁은 휴전이라도 있지만, 선거에는 당선과 낙선이 있을 뿐입니다. 원숭이는 나무에서 떨어져도 원숭이지만 정치인은 선거에서 떨어지면 사람도 아니라는 비유가 있습니다.

겉으로는 평온해 보여도 정치에는 늘 지난 선거의 여파와 다가올 선거의 긴장이 깔려 있습니다. 땅속 깊은 곳에서 용암이 부글부글 끓는 휴화산처럼 말입니다.

프레임 전쟁에서 이기기 위한 조건

선거는 표를 많이 얻는 사람이 이깁니다. ‘우리’가 이기면 세상이 좋아지고 ‘상대’가 이기면 세상이 나빠질 것이라고 선동합니다. ‘우리’를 선으로, ‘상대’를 악으로 규정합니다. 이른바 프레임 전쟁입니다. 프레임은 세상을 보는 시각입니다. ‘틀’이라는 우리 말이 있습니다. 그러나 틀보다는 프레임이라는 단어를 훨씬 많이 사용합니다. 저도 프레임이라고 하겠습니다.

프레임 전쟁에서 이기려면 매우 중요한 조건이 있습니다. 프레임이 진실에 근거해야 합니다. 박정희-전두환 정권에서 야당이 내세웠던 ‘민주 대 반민주’ ‘독재 타도’ 프레임은 위력이 막강했습니다. 박정희 전두환 정권이 실제로 독재 정권이었기 때문입니다.

반면에 허구의 프레임은 효과가 없습니다. 오히려 역효과를 가져오기도 합니다. 1980년 신군부 쿠데타로 집권한 전두환 정권은 통치이념을 ‘정의사회 구현’이라고 했습니다. 불의한 방법으로 정권을 찬탈한 사람들이 정의를 세우겠다고 나선 것입니다. ‘정의사회 구현’은 전두환 대통령 재임 기간 내내 정권을 조롱하는 구호였습니다.

지난 9월19일(현지시간) 제72차 유엔총회 참석차 미국 뉴욕을 방문한 문재인 대통령은 세계시민상 수상자로 시상식에 참석해 “우리 국민들이 촛불혁명으로 세계 민주주의의 역사에 새 희망을 만들었다”며 국민들에게 공을 돌렸다. 청와대사진기자단

현재 문재인 대통령과 더불어민주당은 ‘적폐청산’ 프레임을, 야권에서 홍준표 대표의 자유한국당은 ‘좌파광풍’ 프레임을 사용하고 있습니다. 안철수 대표의 국민의당은 프레임 전쟁에 좀처럼 끼지 못하고 있습니다. 살펴보겠습니다.

문재인 대통령은 ‘적폐청산’을 외치며 집권했습니다. 적폐청산은 정치학자들에 의해 ‘반민주적 언어’라고 비판을 받았습니다. 그러나 문재인 대통령은 집권 이후 적폐청산 프레임을 더욱 강하게 밀어붙였습니다. 대통령 선거를 치른 지 7개월이 지났는데도 ‘적폐청산’ 프레임이 효율적으로 작동하고 있습니다. 왜 그럴까요?

‘적폐청산’ 프레임이 건재한 이유

국민의 인식 때문입니다. 국민은 이명박 박근혜 정부에서 벌어진 정권 차원의 비리와 범죄를 ‘적폐’로 인식하고 있는 것입니다. 과거 정권의 비리와 범죄가 아직 충분히 청산되지 않았다고 생각하는 것입니다.

박근혜 정부의 국정농단과 정권 차원의 비리는 그래도 실체가 어느 정도는 밝혀지고 있습니다. 그러나 이명박 전 대통령의 재산 은폐 및 거짓말 의혹은 실체가 거의 드러나지 않았습니다. 자유한국당이 ‘정치보복’이라고 아무리 크게 외쳐도 국민은 ‘적폐청산’이라고 받아들이는 이유입니다.

적폐청산 프레임은 언제까지 유효할까요? 그리 오래가지는 않을 것 같습니다. 정치적 흐름에 밝은 사람들은 내년 지방선거 국면이 본격화하는 3~4월이면 적폐청산 프레임의 유효기간이 끝날 것으로 예상합니다. 그때쯤이면 문재인 정부가 출범한 지 1년 가까이 시간이 흘렀기 때문에 지난 정권의 비리와 범죄를 국민이 ‘적폐’로 인식하지 않을 가능성이 크다는 것입니다.

어차피 선거 국면에서는 ‘누가 이기냐’는 승패의 논리 자체가 가장 강력한 프레임으로 떠오르게 됩니다. 선거 이후에는 각 정당이 선거 결과에 대한 정치적 책임을 묻는 등 몸살을 앓게 됩니다. 지금 문재인 정부와 더불어민주당은 6·13 지방선거 자체를 적폐청산 프레임으로 치를 생각인 것 같은데 그렇게 될 것 같지는 않습니다.

이런 측면도 있습니다. 적폐청산은 제도개혁으로 완성해야 합니다. 따라서 이명박 박근혜 정권의 비리와 범죄를 어느 정도 밝혀낸 뒤에는 제도개혁으로 넘어가는 것이 당연합니다.

하지만 제도개혁은 국회에서 116석을 차지하고 있는 자유한국당 때문에 사실상 불가능합니다. 다음 국회의원 선거는 2020년입니다. 그 전에 의석 분포가 바뀔 가능성은 거의 없습니다. 적폐청산 프레임은 제도개혁이라는 완성 단계로 넘어갈 수 없는 태생적 한계를 안고 있다는 얘깁니다.

‘좌파광풍’ 프레임이 밀리는 이유

이번에는 ‘좌파광풍’ 얘기를 해보겠습니다. ‘좌파광풍’은 홍준표 대표가 대선에 출마하며 쓰기 시작한 단어입니다. 미칠 광(狂)자를 붙여서 자극적인 효과를 한껏 높이고 있습니다. 전 세계적으로 우파 정권이 집권하고 있는데 우리나라만 탄핵으로 우파가 무너지는 바람에 좌파광풍이 불고 있다는 논리입니다.

홍준표 대표의 좌파광풍 프레임은 색깔론입니다. 본인은 색깔론이 아니라 ‘본질론’이라고 강변하지만, 그냥 색깔론입니다.

1945년 해방 국면에서 친일파와 기득권 세력은 ‘좌익 대 우익’ 프레임을 내세워 우익 뒤로 숨었습니다. 일제 경찰의 하수인들이 반공투사가 됐습니다. 일제 강점기에 독립투쟁을 하던 사람들의 다수는 졸지로 좌익으로 몰렸습니다.

1950년 북한의 남침으로 일어난 한국전쟁은 ‘좌익 대 우익’ 프레임을 강화했습니다. 분단국가의 남쪽에서 ‘좌익’ ‘좌파’ ‘진보’라는 단어는 곧 죽음을 의미했습니다. 이승만 정권은 진보당 사건으로 죽산 조봉암을 사형시켰습니다.

쿠데타로 집권한 박정희 전두환 정권은 독재에 맞서 싸운 민주세력에 바로 이 좌파 프레임을 뒤집어 씌웠습니다. 수십 년 동안 남한에서는 민주주의를 위해 싸운 사람들이 빨갱이로 몰려 목숨을 잃고 감옥에 갔습니다.

그렇다면 홍준표 대표와 자유한국당이 지금 사용하는 ‘좌파’ 프레임, ‘좌파광풍’ 프레임의 타당성은 얼마나 될까요?

거의 없습니다. 좌파광풍 프레임의 핵심 논거는 촛불혁명으로 들어선 문재인 정부가 좌파 정부요, 문재인 정부의 정책 노선은 사회주의 정책 노선이라는 것입니다. 그런가요? 말이 되지 않습니다.

길게 따질 필요가 없습니다. 박근혜 전 대통령은 경제 민주화, 복지국가를 앞세워 집권했습니다. 박근혜 정부가 좌파 정부였나요?

홍준표 대표는 12월 5일 관훈토론회에서 패널이 ‘문재인 정부가 친북좌파라면 자유한국당은 반북정당이냐’고 묻자 “우리는 그냥 보수 우파 정당이다. 북한은 통일의 대상이다. 남북통일의 대상이다”라고 대답했습니다. 문재인 정부의 남북관계 개선 정책은 친북이고 자유한국당은 북한을 통일의 대상으로 삼고 있기 때문에 반북은 아니고 그냥 보수 우파 정당이라는 주장입니다. 오락가락하고 논리도 없는 궤변입니다.

김성태 의원이 지난 12일 홍준표 대표의 지원을 받아 자유한국당의 새 원내대표로 선출됐습니다. 홍준표 대표는 “온몸으로 좌파광풍의 시대를 막아야 한다”고 주문했습니다.

김성태 원내대표도 “우리 당은 강력한 제1야당으로 문재인 정권의 극단적인 좌파포퓰리즘, 그리고 무차별한 퍼주기 복지를 통한 인기영합주의 국정운영, 전방위적으로 이뤄지고 있는 정치보복, 안보무능 포기, 이런 국정운영 방식에 대해 강력하게 저항하고 앞으로 저지해 나가겠다”고 다짐했습니다. 그러면서도 “자유한국당은 그동안 금수저, 웰빙, 가진 자들의 정당으로 잘못 인식된 오명의 굴레를 벗어던지고 서민·노동자·농민이 함께 어우러져서 잘 사는 대한민국을 위해서 함께 하겠다. 특히 자유한국당은 경제 성장 발전 과정에서 소외되고 치우친 사회적 약자들을 보듬고 그 사람들의 입장을 적극적으로 대변·옹호하고 그 사람들의 삶의 질을 개선해 그 사람들의 인권과 인격을 존중하는 그런 자유한국당이 되도록 하겠다”고 했습니다. 문재인 정부의 복지는 나쁜 복지고 자유한국당의 복지는 좋은 복지라는 얘긴데, 도대체 무슨 말인지 알기 어렵습니다.

‘좌파광풍’ 프레임을 사용하는 사람들은 홍준표 대표와 자유한국당 말고도 많이 있습니다. 최순실씨는 자신에 대한 재판을 ‘인민재판’이라고 주장했습니다. 최후진술에서는 "제가 사회주의보다 더한 국가에서 살고 있다는 생각을 했다. 1천억원대 벌금을 물리는 건 사회주의에서 재산을 몰수하는 것보다 더하다"고 말했습니다. 전형적인 색깔론입니다.

수백년 기득권과 이제 겨우 탄생한 새정부의 대결

11월 초 극도로 보수적인 인사들이 모여 창립한 자유민주국민연합이라는 단체가 있습니다. 결성 선언문에 이런 대목이 나옵니다.

“현재 대한민국은 아마추어 좌파정권에 의해 자유민주주의?대의제?법치주의?시장경제·안보 등 총체적 위기상황에 직면했다.”

“지난 2016년 촛불의 선동적 광장정치와 사상 초유의 대통령 탄핵사태, 연이은 대통령 선거에서 좌파의 집권과 좌파 정권의 사회주의 정책 실험으로 대한민국의 자유민주주의와 대의제, 법치주의와 시장경제라는 헌정적 가치와 질서가 위협받고 있다.”

표현이 살벌하고 선동적인 데 비해 내용은 터무니없을 정도로 비논리적입니다. “박근혜 전 대통령 탄핵, 촛불집회, 문재인 대통령 당선이 그냥 싫다”고 할 수 없으니 공연히 ‘좌파’ ‘사회주의’라는 프레임을 끌어들여 악을 쓰고 있는 것입니다.

‘좌파광풍’ 프레임의 영향력은 얼마나 될까요? 수명은 얼마나 길까요? 진실에 기반을 두지 않고 있으니 효과가 전혀 없거나 오히려 역효과가 나야 정상입니다.

하지만 색깔론 프레임의 특징은 진실 부합성이나 논리성에 있지 않습니다. 오히려 맹목성과 비논리성에 있습니다. 색깔론을 받아들이는 사람들은 ‘좌파’가 왜 나쁜지 잘 알지 못합니다. 그냥 ‘좌파’는 나쁘다고 생각합니다. 아니 나쁘다고 믿는 것입니다. 사실의 영역이 아니라 믿음의 영역에 근거한 프레임을 무너뜨리기는 쉽지 않습니다.

더구나 ‘좌파광풍’ 프레임의 배후에는 치밀한 계산으로 색깔론을 끊임없이 확대 재생산하는 기득권 세력이 도사리고 있습니다. ‘좌파광풍’ 프레임은 그래서 무섭습니다.

지금 당장은 적폐청산 프레임이 좌파광풍 프레임을 이기고 있습니다. 하지만 시간이 한참 흐른 뒤에도 계속 그럴 것인지는 의문입니다. 이번 프레임 전쟁은 어쩌면 촛불로 이제 겨우 탄생한 문재인 정부와 수십~수백년간 권력을 누려온 기득권 세력의 대결인 것입니다.

성한용 선임기자 shy99@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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