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용덕 감독 "한화 이글스 우승 했을 때 진정한 1인자 완성"

이영미 스포츠 칼럼니스트 입력 2017. 12. 16. 13: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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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영미의 生生토크] 한화 이글스 새 사령탑 '연습생 신화' 한용덕 감독 "이글스 레전드들이 친정팀에서 제대로 날개 달고 날아오르길 소원했다"

한화 이글스의 11대 사령탑으로 취임한 한용덕 감독은 참으로 사연이 많은 야구인이다. 1987년 빙그레(한화) 이글스 신고 선수로 프로 유니폼을 입었던 그는 이듬해 정식 선수가 됐고 2004년 은퇴할 때까지 482경기에 출전해 120승을 올렸다. 2006년 친정팀 한화 투수코치로 지도자 생활을 시작한 이후 2012년 후반기 한대화 감독의 중도 사퇴로 공석이 된 감독직을 대행했다가 미국 연수를 거쳐 2014년에는 구단 단장 특별보좌역을 맡았다. 2014년 10월 김성근 감독 부임으로 팀을 떠날 수밖에 없었던 그는 두산 베어스 김태형 감독의 제안을 받고 두산에서 투수코치와 수석코치를 역임했다.

28년을 이글스맨으로, 이후 3년을 베어스맨으로 살다 다시 고향으로 돌아간 한용덕 감독. 부임하자마자 일본 미야자키에서 마무리 훈련을 실시했고, 캠프를 마친 후에는 잇단 시상식 참석으로 정신없는 스케줄을 소화하고 있는 한 감독을 12월7일 서울 모처에서 만났다. 

한용덕 감독 © 시사저널 임준선

 

11월1일부터 26일까지 일본에서 마무리 훈련을 마치고 돌아왔다. 20여 일 정도의 시간이었는데 그동안 선수들 전력을 모두 파악한 건가.

“솔직히 말해 너무 정신이 없었다. 두산 베어스가 한국시리즈를 치렀고 한국시리즈 끝난 다음 날 감독 선임 발표가 된 터라 두산 코칭스태프와 이별주를 하는 등 정신없는 시간을 보내다 미야자키로 들어갔다. 처음에는 나조차 마음의 정리가 안 돼서 그런지 선수 명단이나 훈련 스케줄이 눈에 들어오지 않더라. 며칠 지난 뒤에야 머리가 정리되면서 선수들이 보이기 시작했다. 가능성 있는 젊은 선수들을 찾아냈다는 게 마무리 캠프의 수확인 것 같다. 자칫했으면 그냥 묻혀서 선수 생활을 그만둘 뻔했던 선수들도 발견해 냈다. 그런 부분이 꽤 재미있었다.”

(한화 이글스는 정규시즌 종료 후 한용덕 감독 선임을 발표한 10월31일까지 사령탑이 공석이었다. 차기 감독과 관련해 다양한 소문들이 쏟아졌지만 구단은 오직 한 감독한테만 시선을 고정했다는 후문이다. 문제는 한 감독이 속해 있는 두산 베어스가 포스트시즌을 치르고 있어 접촉 자체가 조심스러웠다는 점이다. 결국 박종훈 단장이 비밀리에 한 감독을 만나 구단의 뜻을 전했고, 플레이오프가 끝난 후 최종 결정이 났다는 내용의 전화를 걸었다고 한다. 두산이 한국시리즈라는 중요한 경기를 앞둔 상황에서 한 감독은 자칫 자신의 일로 팀에 민폐를 끼칠까봐 노심초사할 수밖에 없었다. 언론에서도 이미 알고 있을 정도로 한 감독의 한화행은 공공연한 비밀이었다.)

한 감독이 이글스로 돌아가면서 옛 이글스맨들이 헤쳐 모였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장종훈 수석코치, 송진우 투수코치, 강인권 배터리 코치 등이 독수리 군단에 합류했는데 이런 코칭스태프는 사전에 이미 구상된 내용이라고 들었다.

“사실 장종훈 코치와는 오래전부터 내가 감독이 되면 장종훈이 수석코치를, 장종훈이 감독이 되면 내가 수석코치를 맡기로 약속했었다. 내가 먼저 감독이 됐기 때문에 롯데 코치로 있었던 장 코치에게 수석코치 자리를 제안한 것이다. 이 부분은 박종훈 단장이 나를 영입하려 했을 때 이미 말씀드린 부분이고, 다른 건 몰라도 장종훈·송진우는 꼭 함께 가야 한다고 강조했다. 미야자키 캠프에서 코치들과 식사할 때 송진우 코치가 이런 말을 하더라. ‘장 코치는 감독님과 함께할 줄 알았지만 자신에게 연락이 올 줄은 생각지 못했었다’고. 오랫동안 코치 생활을 하면서 그렸던 꿈이 있었다. 장종훈·송진우 등 이글스맨들과 함께 팀을 이끌어가는 꿈을. 누가 감독이 되든 이글스 레전드들이 친정팀에서 제대로 날개를 달고 날아오르길 소원했다. 이런 모습들이 우리 팀 선수들에게 분명한 메시지를 전했다고 생각한다.”

어떤 메시지를 의미하는 건가.

“그동안 한화는 재능 많은 선수들이 많았음에도 단합된 모습을 보이지 못했다. 이글스 출신 감독, 코치들이 모인 만큼 앞으로 더 하나 된 팀으로, 서로 믿고 믿어주는 팀으로 성장·발전해 나가길 바란다는 메시지다. 한화를 떠난 지 3년이나 됐지만 그 시간을 느낄 수 없을 만큼 선수들이 반갑게 맞이해 준다는 느낌을 받았다. 선수들도 그립고 갈증 났던 무언가가 있었을 것이다. 그걸 서로 느꼈으면 했는데 선수들의 밝은 표정을 보니 서로 충분히 교감했다는 생각이 든다.”

공교롭게 두산과 미야자키 캠프에서 연습경기를 치렀다. 불과 얼마 전까지만 해도 두산 수석코치였던 이가 한화 감독으로 두산을 상대한다는 게 아이러니했다. 흥미롭기도 하고.

“원래는 2차례 연습경기를 치를 예정이었지만 비가 오는 바람에 한 번은 취소되고 두 번째 일정으로 두산을 만났다. 두산은 자신의 야구장에서 경기를 치르길 바랐고, 난 우리가 사용하는 야구장이 좋으니 두산한테 우리 쪽으로 오라고 부탁했다. 별다른 반응이 없는 것 같아 내가 직접 김태형 감독에게 전화 걸어서 우리가 사용하는 야구장으로 오라고 다시 부탁했다. 그때 김태형 감독이 ‘선배님이 부르면 가야죠’라고 말해 한참을 웃었다(한용덕은 52세, 김태형 감독은 50세다). 연습경기를 위해 두산 선수단이 야구장으로 들어오는데 선수들이 다 아는 얼굴들이라 전혀 낯설지가 않고 모두 우리 팀 선수들 같았다. 김태형 감독과 미야자키에서 식사한 적이 있었는데 김 감독이 ‘선배님 모시느라 힘들었다’고 말해 또 웃음을 터트렸다. 내가 김 감독보다 나이가 많은 수석코치였지만 서로 선을 넘지 않으려고 노력한 덕분에 좋은 관계를 유지했던 것 같다.”

2002년 4월16일 한화 이글스 투수 시절 © 사진=뉴스뱅크이미지

 

그런데 마무리 캠프 동안 선수단에 좋지 않은 일들이 터졌다. 외야수 김원석이 SNS 파문을 일으켜 방출 통보를 받았고, 내야수 이창열은 성추행 혐의로 체포돼 미야자키 북부경찰서에서 구금 조사 중이다. 이창열은 혐의를 완강히 부인하고 있는 것으로 알고 있는데 선수단에 잇단 악재들이 나타나면서 불안한 모습도 보였다.

“아직까지 팀을 완벽히 파악하지 못했는데 생각지도 못한 일들이 터지니까 정신이 없더라. 선수들의 일탈 행위를 막기 위해 구단에서도 많은 교육을 하고 있는 중이다. 올해가 다 가기 전에 한화의 좋지 않은 일들이 마지막으로 몸부림치는 듯싶었다. 마음 같아선 선수들을 24시간 쫓아다니며 그들을 좋은 방향으로 이끌고 싶지만 현실적으로 불가능한 일 아닌가. 스무 살 넘으면 성인이고 성인의 행동은 책임이 뒤따른다. 이번 일로 선수들이 경각심을 갖고 자기 관리에 더욱 신경을 썼으면 좋겠다.”

그동안 스토브리그 ‘큰손’으로 군림했던 한화가 지난해에 이어 올해도 외부에서 FA 수혈 없이 내년 시즌을 치른다고 밝혔다. 감독 입장에선 이 부분을 어떻게 받아들이고 있나.

“그건 이미 박종훈 단장과 얘기가 된 내용이라 이견은 없다. 그러나 올해 FA 시장에 나온 선수들의 면면을 보면 욕심이 나는 선수들이 있다. 마음 같아선 그들을 다 데려오고 싶지만 구단이 내세운 선이 무너지면 지금까지의 과오가 되풀이되기 때문에 욕심을 앞세울 수도 없다. 정말 필요하다면 한두 명 정도는 영입하고 싶은데 내가 결정할 수 있는 부분이 아니다.”

내부 FA 선수들과의 협상은 어떻게 되는지 궁금하다. 현재 정근우·박정진·안영명 등의 계약 상황이 지지부진한 것으로 알고 있다.

“구단도 선수도 조금씩 양보해야 협상이 진척되지 않을까 싶다. 얼마 전 (정)근우한테서 전화가 왔더라. 방송사 골프대회 때문에 괌에 간다며 인사를 하는데 순간 ‘아, 근우가 우리 사람이구나’ 싶더라. 근우가 나한테 전화했다는 건 한화랑 계속 함께 가고 싶다는 걸 의미하는 게 아닌가. 다른 팀으로부터 영입 제안을 받지 못한 것일 수도 있고. 잘 마무리되었으면 좋겠다.”

지금 한화의 전력을 냉정하고 정확하게 평가한다면 어느 정도인가.

“주전으로 뛴 선수들은 뛰어난 실력을 갖고 있다. 반면에 주전으로 뛰지 못한 선수들이 성장해 팀에 도움이 되려면 시간이 필요하다. 강한 팀은 주전, 비주전의 편차가 크지 않은 팀이다. 그 편차를 얼마나 줄이느냐가 중요하다. 한화가 우승 전력을 갖추려면 어느 정도 시간이 필요하다고 본다. 감독 계약기간이 3년인데 3년 안에 승부를 봐야 하지 않겠나.”

감독 선임될 당시 한 감독이 기자에게 이런 얘기를 했었다. 구단은 육성을 중심에 두지만 감독은 성적을 무시할 수는 없다고. 그건 팬들에 대한 예의가 아니라고 강조했는데 지금도 그 생각에는 변화가 없나.

“박종훈 단장은 내년 시즌을 육성·리빌딩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나도 전적으로 동의하기 때문에 팀을 맡을 수 있었다. 그러나 막상 시즌 들어가면 분명 성적에 욕심을 낼 수밖에 없을 것이다. 리빌딩에만 초점을 맞춰 시즌을 이끌어가는 건 매우 어려운 부분이다. 난 육성에 신경 쓰면서 이기는 야구를 하고 싶다. 선발 로테이션도 가용 폭을 넓게 가려 한다. 중간에 나이 어린 선수들을 기용하면서 말이다. 일단은 두 마리 토끼를 다 잡고 싶다. 그게 어려우면 변화를 줘야 하겠지만 처음부터 육성에만 초점을 두고 싶진 않다.”

얼마 전 지역사회를 위해 1억원이란 거금을 기부했다. 좋은 뜻의 기부였는데 다른 감독들에게 부담을 줬다는 뒷얘기도 들린다.

“하하, 내가 그것까진 생각지 못했다. 오래전부터 감독이 되면 꼭 하고 싶은 일 중 하나였다. 나 혼자 잘해 여기까지 온 게 아니지 않나. 주변 사람들의 도움을 받았기 때문이다. 그 고마움을 이렇게라도 표현하고 싶었다. 선수 때도 시간 날 때마다 장애인들을 위해 차량봉사를 하는 등 어렵고 소외된 이웃들을 살피는 일에 관심이 많았다. 아내도 흔쾌히 동의했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었다.”

한 감독은 한화 연습생 신분으로 입단해 프로 통산 120승을 기록한 레전드다. 그리고 모든 야구인들이 꿈꾸는 감독직에도 올랐다. 자신을 성공했다고 말할 수 있겠나.

“아직은 섣부른 얘기다. 우리가 강팀이 되고 나서 기대한 만큼의 성적을 낸다면 그런 생각이 가능할 것 같다. 내가 뭔가를 이뤄냈다는 생각이. 지금은 아니다.”

(한용덕 감독은 이전 기자와의 인터뷰를 통해 “난 이글스에 큰 신세를 졌다”고 말한 적이 있었다. 한 감독은 대학에서 야구를 하던 도중 경제적인 어려움 때문에 야구부를 벗어나 공사판과 트럭운전사 보조로 일하며 생계를 책임졌던 시절이 있었다. 그러나 야구를 잊지 못한 나머지 다시 야구를 시작했고, 당시 자신에게 도움을 준 이가 김영덕 전 한화 감독이었다. 그를 배팅볼 투수 겸 신고 선수로 한화에 입단시켜줬기 때문이다. 한 감독은 그때부터 한화에 충성을 맹세했다고 말한다. 선수 시절은 물론 코치 생활을 하면서도 여러 차례 팀을 떠날 위기가 있었지만 그때마다 자신이 처음 이글스 유니폼을 입었던 순간을 떠올리며 참고 견뎌냈다는 말도 덧붙였다.

한 감독은 지도자 생활을 시작한 이후 매번 한화 이글스 차기 감독 후보군에 머물렀다. 그도 나름 기회를 얻고자 노력한 부분이 있다. 그러나 한화는 프랜차이즈 스타에게 기회를 주기 보단 김응용·김성근 전 감독에게 팀을 맡기며 우승을 기원했다. 김성근 감독의 부임은 한 감독이 팀을 떠날 수밖에 없는 상황으로 연결됐다. 김 전 감독의 구상에 그가 존재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는 당시 한화를 떠나면서도 반드시 돌아올 것이라고 자신과 약속했다고 말한다. 그 약속을 지키기까지 3년의 시간이 걸렸다.)

2005년 4월5일 두산-한화 경기. 한용덕이 은퇴식에서 자신의 대형 사진을 들어 보이고 있다. © 사진=뉴스뱅크이미지

 

최근 KIA 타이거즈 수석코치였던 조계현 코치가 KIA 신임 단장에 선임됐다. 양상문(LG), 염경엽(SK), 박종훈(한화), 유영준(NC), 고형욱(넥센), 김태룡(두산) 단장까지 포함하면 10개 팀 중 7명이 야구인 출신 단장이다. 이런 현상을 어떻게 보고 있나.

“기업 관계자보다는 야구를 오래 했고, 야구계가 어떻게 돌아가는지 아는 사람이 단장을 맡는다면 감독은 좀 더 선수단에 집중할 수 있을 것 같다. 그리고 야구인 출신 단장들이 늘어나는 건 선수들에게 은퇴 후 또 다른 길을 제시해 준다는 의미도 있다. 이전에는 감독이 최고 목표였다면 지금은 감독에다 단장까지 꿈꿀 수 있는 세상이 됐다. 야구 발전을 위해서도 긍정적인 변화를 보이고 있다고 생각한다.”

지금까지 한 감독의 야구 인생은 ‘2인자’로 머물렀다. 감독이 되면서 이젠 1인자로 전면에 나서고 있는데 그 차이를 실감하고 있는지 궁금하다.

“감독이라고 해서 1인자가 됐다고 생각하진 않는다. 우리 팀이 우승을 차지했을 때가 진정한 1인자다(한 감독은 이 대목에서 검지 손가락을 치켜세우며 ‘1’을 표시했다). 아직은 진정한 의미의 1인자가 아니다.”

3년 동안 다른 팀 코치 입장에서 본 한화는 어떤 팀이었나.

“그냥 좀 짠했다.”

그렇다면 지금은.

“선수들이 마음껏 야구할 수 있도록 토대를 만들어주고 싶다. 그런 토대가 뒷받침된다면 짠했던 마음도 없어지리라 믿는다.”

인터뷰 말미에 “한 감독의 야구는 어떤 색깔인가요?”라고 물었다. 한 감독은 “그건 내년 시즌에 직접 보여 드릴게요”라고 답했다. 

두산 베어스에서 3년 동안 코치 생활을 하면서도 가족들은 대전에서 서울로 이사하지 않았다고 한다. 서울에선 한 감독 혼자 지낸 셈이다. 굳이 그 이유를 묻지 않아도 알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는 자신이 다시 대전으로 돌아가게 될 것임을 믿고 있었던 것이다.   ​ 

이영미 스포츠 칼럼니스트 sisa@sisajournal.com <저작권자 ⓒ 시사저널,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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