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년간 '이종범 아들'이었다..올해 비로소 '이정후'가 됐다

2017. 12. 16. 09: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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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요판] 김양희의 야구광
넥센 히어로즈 이정후

[한겨레]

넥센 히어로즈 타자 이정후가 7일 오후 서울 구로구 고척스카이돔 불펜에서 <한겨레> 인터뷰에 앞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이정후는 이날 오전 열린 ‘2017 레전드 야구존 한국프로야구 은퇴선수의 날’ 시상식에서 신인상을 수상했다. 백소아 기자 thanks@hani.co.kr

아기 때부터 손에 쥐고 논 것이 야구공. 다른 장난감을 사달라고 조른 적은 단 한 번도 없었다. 공과 방망이만 있으면 하루가 뚝딱 지나갔다. 그럴 수밖에 없는 환경이었다. 아버지는 현역 시절 ‘야구천재‘, ‘바람의 아들’로 불린 이종범( 해설위원). 때문에 그가 ‘진짜 야구’를 하려고 했을 때 그의 이름 석자보다 ‘이종범의 아들’, 혹은 ‘바람의 손자’로 더 자주 불렸다.

2017년 말, 상황은 역전됐다. 그의 이름이 여러 시상식장에서 호명됐다. 이. 정. 후. 케이비오(KBO)리그 최우수신인선수상 외에 연말에 받은 신인상만 모두 6개. 경쟁자 없이 독보적이다. 고교 졸업 뒤 입단 첫해 신인상을 받은 것은 2007년 임태훈(두산), 야수로는 2001년 김태균(한화) 이후 처음이다. 연봉 또한 2700만원(프로 최소연봉)에서 억대(1억1000만원·307.4% 인상)로 수직상승했다. 그는 어떻게 ‘이종범의 아들’에서 신인 최고 선수 ‘이정후’가 됐을까.

고졸 신인 최초로 시즌 전 경기 출전
신인 최다 득점·최다 안타 신기록
신인상 싹쓸이…연봉 수직상승
타고난 체격에 선구안·콘택트 능력 탁월

넥센 내야수 입단 뒤 외야수로 변신
지난달 아버지와 함께 태극마크 달아
“내 야구 롤모델은 스즈키 이치로”
“아버지가 못 이룬 200안타 치고 싶다

“신인이 마치 베테랑처럼 야구 한다”

이정후(19·넥센 히어로즈)는 올해 고졸 신인 최초로 전경기에 출장(144경기)하며 타율 0.324, 2홈런 47타점 111득점을 기록했다. 신인 최다 득점과 더불어 역대 신인 최다 안타 신기록(179개)도 작성했다. 지난 7일 고척스카이돔에서 만난 이정후는 “원래 9월 확대 엔트리 때 1군 합류가 목표였는데 운 좋게 개막 엔트리에 들었다”며 “1군 분위기만 경험하고 내려갈 줄 알았는데 (장정석) 감독님이 계속 꾸준하게 기회를 주셔서 ‘계속 잘해야겠구나’ 싶었다”고 말했다. 이정후의 어머니인 정정민씨 또한 <한겨레>와 한 통화에서 “남편(이종범)과 ‘1~2년 동안 2군 경기에 많이 출전해서 경험 쌓고 3년 차에 1군 무대에서 성공했으면 좋겠다’고 말하고는 했는데… 지금도 믿기지는 않는다”고 했다.

전문가들이 꼽는 이정후의 최대 강점은 좋은 선구안과 함께, 스스로 “아버지에게 물려받았다”고 말하는 콘택트 능력에 있다. 김성근 전 에스케이(SK) 감독은 “나쁜 공에 방망이가 잘 나가지 않고 어느 쪽으로 공이 오든지 당황하지 않는다. 어린 선수답지 않게 볼 카운트가 불리해도 흔들림이 없다”고 평했다. 그는 이어 “플레이에 적당히 하는 것도 없다. 시즌 초에는 주루·타격 등에서 미숙한 점이 보이기도 했는데 한 시즌 치르면서 성장하는 모습이 보였다. 경기 관찰 능력이 뛰어난 꽤 영리한 선수”라고 칭찬했다.

김태형 두산 감독은 고졸 신인의 대범함에 아주 후한 점수를 준다. 김 감독은 “고졸 신인이 경기하는 모습을 보면 놀랄 정도로 포커페이스였다. 자기 타격에 대한 확신이 있다. 19살이 마치 베테랑처럼 야구 한다. 놀랄 ‘노’자”라며 혀를 내둘렀다.

마무리훈련 캠프 때부터 이정후를 곁에서 지켜본 강병식 넥센 타격코치의 생각은 어떨까. 강 코치는 “이정후는 좋은 타격 자질을 갖고 있었다. 훈련 자세도 좋았고 마인드도 열려 있었다”며 “타격 기술적으로는 볼을 잘 볼 수 있는 안정적인 자세인데다가 스윙을 하더라도 볼을 쫓지 않고 끝까지 자기 스윙을 한다”고 평했다. 야구 자세에 대해서는 “애국가가 나오기 전까지는 더그아웃에서 동료 선후배와 웃고 떠들다가도 경기장 안으로 들어갈 때는 표정이 변한다. 눈빛도 달라지고 말수도 없어지는데 야구장 밖에서는 19살 나이답게 활달하지만 야구 할 때만큼은 진지하고 어른스럽다”고 말했다.

일본 출국 전 이종범 해설위원과 이정후. 정정민 제공
이정후의 어린 시절. 정정민 제공
이정후의 어린 시절. 정정민 제공

이정후는 우투좌타다. 오른손잡이인데 타석에서만 왼쪽으로 친다. 이정후는 “부모님이 처음에 골프를 시키셨는데 하기 싫었다. 야구 선수가 되고 싶다고 하니 아버지께서 ‘(타격할 때 유리한) 왼손으로 치라’고 하셨고 야구 시작 때부터 왼손으로 방망이를 쳤다. 어차피 처음부터 0(제로)에서 시작하는 것이니까 오른쪽으로 치든, 왼쪽으로 치든 크게 상관은 없었다”고 했다. 야구에서 왼손타자는 1루 베이스와 가까워 내야안타를 기록할 확률이 높다. 이정후는 “아버지는 가끔 ‘내가 왼손타자였다면 200안타를 쳤을 것’이라고 말씀하신다. 언젠가 아버지가 이루지 못한 200안타를 꼭 쳐보고 싶다”고 했다. 이종범 해설위원은 현역 시절 프로 최초 200안타를 노렸으나 4개(196안타·1994년)가 모자랐다.

2009년 기아가 정규리그 우승했을 때 이종범 해설위원과 아들 이정후의 모습. 정정민 제공

야구를 시작하고 끈덕지게 이정후를 따라다닌 것은 ‘이종범의 아들’이라는 꼬리표였다. 원하건 원치 않건 주위 시선이 몰렸다. 휘문고 1학년 시절 주전으로 나서면 “이종범 아들이니까 1학년이 벌써부터 경기에 뛴다”는 말이 들려왔고 경기 성적이 안 좋으면 “이종범 아들인데 못한다”는 말이 귓가를 맴돌았다.

정정민씨는 “야구인 2세들이 야구 하는 것에 대해 부정적인 시각들도 있었고 다른 선수 아빠들이 조금 거칠게 직설적으로 말하는 점도 있었다”며 “아빠 때문에 힘들 것이라는 사실을 알면서도 정후 스스로 택한 길이었기 때문에 그때마다 달래주지 않고 강하게 단련시켰다. 야구를 도중에 그만두고 다른 길을 가더라도 조금 더 책임감 있는 아이로 자랐으면 하는 바람이 있었다”고 했다. 남편(이종범)을 내조하면서 선수들의 희로애락을 직간접적으로 겪었기에 아들에게 더욱 엄했던 점도 있었다. 이종범 해설위원은 “나는 경기 쉬는 날 정후 데리고 목욕탕에 가는 정도였다. 밤낮으로 기도하고 아들을 안팎에서 챙긴 아내의 노력이 지금 정후 야구 인생 최고의 선물이 됐다”고 밝혔다.

이정후와 이종범 해설위원. 정정민 제공

넥센 1차 지명…“팀 운이 좋았던 것 같다”

이정후 스스로 아버지의 그늘에만 머물지 않았다. ‘야구 선수 이정후’를 증명하기 위해 온 힘을 다했다. 당일 경기 성적이 좋더라도 일부러 내색하지는 않았다. “튀는 게 싫어서” 세리머니 또한 자제했다. 이정후는 “의도적인 것도 없지 않았다”고 고백한다. 아버지의 이름 아래 최대한 자신을 낮춘 것. 나이답지 않은 평정심, 포커페이스는 그렇게 만들어졌다. 강병식 타격코치는 “아마 어렸을 적부터 이정후는 수많은 야구계 사람들을 만났을 것이다. 그들이 얘기하는 것을 듣고 야구 하는 것도 직접 보면서 본인이 의식하지 못하는 사이 더 성숙해졌을 것”이라고 했다.

이정후의 고교 1학년 때 성적은 타율 0.352(71타수 25안타). 괜찮았으나 삼진(13개)이 많았다. 주말리그 경기에서 3타수 무안타를 기록한 뒤부터 자발적으로 아파트 앞 주차장에서 방망이를 돌렸다. 고교 졸업 때까지 3년간 매일 방망이를 200번을 휘둘렀다. 이정후는 “그때 연습했던 게 올해 도움이 많이 됐다”고 돌아봤다.

2학년 시절 타율 0.521(장타율 0.667)를 기록했던 이정후는 3학년 때 야구 시작 뒤 처음 당한 부상으로 주춤했다. 황금사자기 때 왼손 약지가 부러졌고 회복이 채 되지 않은 상태로 무리하게 경기에 나섰다가 성적이 곤두박질쳤다. 주위에서 “고3병이냐”(프로 지명회의 전후에 성적이 떨어지는 것)며 수군댔으나 자신의 성적보다는 팀이 지는 게 견디기 힘들었다. 봉황대기 결승 때 자신의 잇단 실책 때문에 역전을 허용당해 벼랑 끝에 몰렸다가 연장 끝에 우승했을 때는 그 자리에서 펑펑 울어버렸다. “그날 6타수 1안타에 실책 2개를 했어요. 동료들은 ‘괜찮다’고 위로해주는데 너무 미안했어요. 평소에 진짜 안 우는데….”

지난 4월21일 오후 넥센 홈구장 고척스카이돔 구장에서 배팅 연습 중인 이정후 선수. 신소영 기자 viator@hani.co.kr

넥센 히어로즈에 1차 지명된 것은 이정후에게 행운이었다. 넥센은 신인, 베테랑 가릴 것 없이 선수 능력치에 따라 공평하게 기회를 준다. 이정후 또한 “팀 운이 좋았던 것 같다”고 했다. 내야수로 입단했으나 수비가 다소 불안했던 이정후는 스프링캠프 동안 외야수로 변신했다. 더불어 “수비 스트레스 받지 말고 타격에 집중하라”는 격려도 받았다. 넥센 코칭스태프는 아마추어 때부터 갖고 있던 타격 폼을 억지로 바꾸라고 하지도 않았다. 다만 타격이 잘 안 풀릴 때 강병식 타격코치가 적절하게 조언을 해줬다. 그런 과정 속에서 이정후는 자신만의 야구 루틴을 만들어갔다. “제 야구 롤모델은 스즈키 이치로예요. 루틴 안에서 더 큰 선수가 되고 싶어요.”

이정후와 이종범 해설위원. 넥센 히어로즈 제공

아버지로부터 야구를 배운 적은 없었다. 이정후는 “야구가 잘 안 될 때도 기술적인 부분이 아니라 ‘지금 실패하는 게 나중에 가서는 도움이 된다’는 식으로 멘탈적으로만 말씀을 해주셨다”고 했다. 아마추어 시절에도 “학교 코치, 감독들께 배워라”라고만 했던 아버지다. “야구를 잘하거나 못하거나 아버지는 매일 ‘잘했다고 칭찬만 해주세요. 원정 가서도 문자로 응원을 많이 해주시죠. 못하고 오면 오히려 엄마 목소리가 싸늘해져요.” 올 시즌 내내 홈경기 때 고척돔 출퇴근을 어머니가 해줬던 터라 성적이 안 좋은 날은 어머니께 많이 미안해지기도 한다.

이정후는 지난 11월 도쿄에서 열린 아시아프로야구챔피언십에서 이종범 해설위원(대표팀 외야·주루코치)과 함께 태극 유니폼을 입었다. “아버지와 함께 태극마크를 달고 싶다”는 어릴 적 꿈이 일찍 실현됐다. 이정후는 “정작 야구장 안에서만 아버지를 봤다. 도쿄 숙소 내 방에 단 한 번도 안 오셨고 카톡으로만 이야기를 주고받았다”며 웃었다. 신인으로 대표팀에 승선한 데 대해서는 “프로에서 제일 잘하는 선수와 함께 훈련하고 경기하다 보니까 운동 방법 등에서 많이 배웠다”고 의미를 뒀다.

걸그룹 레드벨벳 좋아하는 19살

개막 엔트리 진입과 신인 최다안타 신기록 작성, 그리고 대표팀 발탁까지 화려한 데뷔 시즌을 보낸 이정후는 내심 ‘2년 차 징크스’가 걱정되기도 한다. 하지만 팀 선배 김하성으로부터 조언을 들은 뒤 자신감을 얻었다. “하성이 형이 곁에서 많은 말을 해주는데 2년 차 징크스는 변명밖에 안 된다고 하더라고요. 안 되더라도 올해처럼만 하면 된다고. 자기 마음먹기에 달렸다고요. 힘이 많이 됐어요.” 김성근 감독은 “야구 체형(키 185㎝)은 타고났으니까 웨이트로 체중을 늘리고 스윙을 조금 더 간결하게 가져가면 큰 선수가 될 것”이라고 조언했다. 이정후 또한 “1월부터 몸무게를 차근차근 늘려갈 것”이라고 했다.

어린 시절 이정후의 모습. 정정민 제공

야구장 밖에서 친구들과 어울릴 때면 이정후는 오롯이 걸그룹 레드벨벳을 좋아하는 ‘19살 이정후’로 돌아간다. “친구들은 저를 그냥 ‘이정후’로 봐줘요. ‘이종범 아들? 그래서 뭐 어쩌라고’ 하지요. 그래서 진짜 마음이 편해요.” 친구들과 맛집 다니기 취미가 새로 생기고 같은 또래처럼 “어머니가 한달 용돈(70만원) 올려줬으면 좋겠다”고도 투정하는 이정후는 말한다. “솔직히 아마추어 때는 아버지의 아들로 불릴 수밖에 없었잖아요. 하지만 프로에 와서는 그냥 내 이름 하나로 평가받으니까 좋은 것 같아요. 내가 잘하면 잘하는 것이고, 못하면 못하는 것이니까요. 내년에는 올해보다 모든 면에서 한 단계 더 발전하는 선수가 되고 싶어요. 가을야구도 하고. 야구 선수 이정후로 내년 시즌도 당당히 도전해 보겠습니다.”

이정후·이종범 해설위원 가족 모습. 네 식구는 다음주 하와이로 모처럼 가족여행을 떠난다. 정정민 제공

덧. 이번 야구광 글은 한때 ‘야구 선수 아내’였고 지금은 ‘야구 선수 엄마’가 된 정정민씨의 말로 갈음한다. “야구 시작하고 정후는 ‘야구를 그만두고 싶다’는 말을 단 한 번도 한 적이 없어요. 엄마 눈에는 아직도 아이 같은데 야구장에서 보면 ‘이제 프로 선수구나’ 싶죠. 아빠와 걸음걸이까지 비슷한데 복잡한 것 싫어하는 성격은 진짜 닮았어요. 아이에게서 점점 아빠의 모습이 보이죠. 정후 아빠는 가족들 안 굶게 하려고 야구 했는데 정후는 자신이 진짜 꿈꿨던 거니까 좋아하는 야구 마음껏 하면서 야구에 공헌할 줄 아는 좋은 선수, 좋은 사람이 되었으면 좋겠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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