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작용 덕분에 대박 난 약 이야기

김진구 헬스조선 기자 2017. 12. 15. 08:00
음성재생 설정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약 뒷담화

새로운 약은 많은 돈과 긴 시간, 인간의 노력으로 개발된다. 그러나 다른 약을 개발하다가 우연히 개발된 약도 있다. 뒷걸음치다가 대박난 약 이야기를 봤다.

비아그라: 협심증 치료하다 발기부전 치료 효과 발견

1998년 전 세계 남성들의 환호가 터져 나왔다. ‘불치병’으로만 여겨지던 발기부전을 치료하는 약이 출시된 것이다. 이 파란색 알약은 전 세계 남성뿐 아니라 글로벌 제약사 화이자의 운명까지 바꿨다. 발매 후 1년 만에 전 세계 매출 10억달러 이상을 기록하는 블록버스터 의약품으로 자리 잡았다. 출시 후 지금까지 전 세계에서 20억 정 이상 판매됐다.

애당초 화이자가 개발하던 것은 협심증치료제였다. 임상시험은 만족스럽지 않았다. 기대했던 효과는 크지 않고, 두통·소화불량 등의 부작용만 부각됐다. 임상시험에서는 특이한 부작용도 나타났다. 중년 남성들의 발기력 향상이었다. 발기부전은 성기에 몰리는 혈액이 부족해 생기는 질환이다. 협심증치료제였던 이 약은 말초혈관을 확장시키고 확장된 혈관으로 피가 몰리게 하는 효과가 있었다. 이 효과가 엉뚱하게 성기에 가서 나타난 것이다. 개발진은 부작용을 적극 부각하는 방향으로 연구를 진행했다. 결국 ‘블루 다이아몬드’라고 불리는 비아그라를 세상에 내놓았다.

삭센다: 당뇨병 치료하려 했더니 살이 빠졌다

당뇨병 환자는 비만 관리가 매우 중요하다. 비만이 당뇨병을 유발 혹은 악화시킬 수 있기 때문이다. 이런 점에서 덴마크 제약사 노보노디스크의 자가주사형 당뇨병치료제 ‘빅토자’는 비만인 당뇨병 환자에게 특히 좋다. 임상시험에서 당뇨병과 비만을 동시에 관리할 수 있는 것으로 나타났기 때문이다.

우리 몸에는 포만감을 느끼게 하는 호르몬이 있다. GLP-1이라 불리는 이 호르몬은 혈당 농도에 따라 소장 세포에서 분비된다. 몸에 필요한 양보다 많은 음식이 들어오면 혈당 농도가 높아지고, 이 호르몬이 분비돼 포만감을 느끼게 한다. 빅토자는 혈당 농도에 따라 인슐린 분비를 늘리는 원리로 개발됐다. 그러나 이 약을 주사한 당뇨병 환자에게서 체중 감소 효과가 꾸준히 관찰됐다. 결국 ‘삭센다’라는 이름의 비만치료제로 최근 재출시됐다. 성분은 같지만, 투여 용량이 1.5~2배로 늘었다. 미국에서는 2014년에, 한국에선 올해에 각각 허가를 받았다.

프로페시아: 전립선비대증 치료약이 탈모 치료약으로

비아그라가 모습을 드러내기 1년 전, 남성들의 또 다른 고민인 ‘탈모’에 도움이 되는 약이 미국 식품의약국(FDA)의 허가를 받았다. 피나스테라이드 성분의 치료제 ‘프로페시아’다. 그러나 피나스테라이드 성분의 치료제가 처음 출시됐을 때는 큰 관심을 받지 못했다. 출시 당시인 1992년에는 탈모치료제가 아닌 전립선비대증치료제로 허가를 받았기 때문이다. 이름도 프로페시아가 아닌 ‘프로스카’였다.

이 약을 복용하는 중년 일부에게서 탈모 개선 효과가 부작용으로 나타났다. 해당 제약사인 MSD는 임상시험 단계에서 이런 부작용을 발견했지만, 탈모 치료 목적으로 개발을 지속하지는 않았다. 비아그라 사례와 달리 본래 개발 목표였던 전립선비대증 치료 효과가 좋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실제 환자들의 탈모 개선 효과가 전립선비대증 치료 효과만큼 좋게 나타나자, 탈모치료제로 다시 개발하기에 이른다. 그리고 5년 뒤, 전립선비대증치료제는 용량을 줄여 탈모치료제로 다시 나타났다. 이후 프로페시아는 MSD의 효자 노릇을 톡톡히 하고 있다. 무수한 복제약이 생산됐음에도 여전히 전 세계 매출 1위를 달리는 중이다.

한편, 또 다른 탈모치료제인 ‘미녹시딜’ 역시 최초에는 고혈압약으로 개발됐다는 점이 흥미롭다. 이 치료제를 투약하던 한 환자가 혈관 확장 부작용으로 다모(多毛)증이 나타나자, 해당 제약사는 바르는 약으로 개량 출시했다.

보톡스: 생화학무기를 투여하자 젊음이 돌아왔다

‘보톡스’라는 이름으로 더 유명한 보툴리눔톡신은 원래 군사적 목적으로 연구됐다. 치명률은 북한이 김정남 암살에 사용한 VX보다 100배 이상 강하다. 1급 생화학무기로 악용될 수 있어 ‘생물무기금지협약’에 따라 수출 제한 품목으로 분류된다. 이 치명적인 독(毒)은 그러나 1000분의 1 정도로 희석하면 의료 목적으로 매우 유용하게 쓰인다.

보툴리눔톡신이 처음부터 주름 개선, 사각턱 교정에 사용됐던 것은 아니다. 근육을 마비·수축시키는 원리로 주로 근육병 치료에 동원됐다. 1989년 미국의 성형외과 의사 리처드 클락도 마찬가지였다. 안면근육 이상 환자에게 희석된 보툴리눔톡신을 주사했다. 그러자 예상치 않은 증상이 나타났다. 웃을 때 생기던 주름이 사라진 것이다. 이후 보톡스는 주부부터 대통령까지 누구나 쉽게 찾는 미용주사가 됐다.

무기가 약으로 사용된 예는 또 있다. 다이너마이트의 원료인 니트로글리세린이 협심증 치료에 이용된 것이다. 니트로글리세린을 발명한 노벨의 화약 공장에는 협심증을 앓는 근로자가 있었다. 문제는 공장에서는 멀쩡하다가 집에만 오면 협심증이 심해진다는 것이었다. 이후 노벨 일가는 니트로글리세린이 급성협심증 발작에 효과가 있다는 사실을 발견했고, 소량의 니트로글리세린을 약으로 출시했다. 니트로글리세린 약제는 베타차단제, 안지오텐신 전환효소억제제, 칼슘통로억제제 등 새로운 의약품과 함께 협심증 치료에 사용된다.

- Copyrights 헬스조선 & HEALTHCHOSUN.COM,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

Copyright © 헬스조선.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 기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