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재파일] 백제 귀부인도 뇌수술 받았다?
1994년 12월, 지금으로부터 딱 23년 전 일입니다. 충남 부여군이 능안골 일대에 공설운동장을 짓기 위해 진입로 공사를 할 때였습니다. 포크레인으로 땅을 걷어내는데 갑자기 여기저기서 석재가 나오기 시작했습니다. 무덤을 덮었던 뚜껑돌이었습니다. 서기 538년 백제 성왕이 사비성(부여)으로 수도를 옮긴 뒤 조성했던 귀족들의 집단 무덤이 세상에 나온 순간이었습니다. 공사는 중단되고, 2차에 걸쳐 고분 60기가 발굴됐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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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덤에서 인골 나온 게 뭐 그리 대수냐 생각하겠지만, 흔히 있는 일은 아닙니다. 우리나라 땅은 대부분 산성 토양입니다. 여름철에 습한데다 흙이 산기까지 품고 있으니 유물이든 인골이든 금세 삭아서 없어집니다. 땅 속에서 인골이 잔존할 수 있는 기간은 150년 정도라고 합니다. 물론 김해 예안리에 있는 가야 고분군처럼 매우 예외적인 경우도 있습니다. 조개무덤에서 나온 칼슘성분이 고분의 산성 토양을 중화시켜 인골이 삭지 않도록 했기 때문입니다.
53호분 석실은 외부 공기와 전혀 통하지 않을 정도로 완벽하게 밀폐돼 있었습니다. 발굴 당시 “폐쇄석을 열었을 때 석실 내부에서 시신 썩는 냄새가 어찌나 심했던지 조사원들이 피신해야 했을 정도였다”고 국립부여문화재연구소가 발간한 보고서는 전합니다.
발굴 당시 내부를 찍은 사진과 스케치입니다. 동편(도표의 오른쪽) 유골은 두개골과 위턱뼈, 갈비뼈, 치골과 대퇴부, 정강이 뼈가 보존돼 있었습니다. 실측해보니 170cm, 남아 있지 않은 발목뼈까지 넣어 추정해보니 키가 175cm는 됐습니다. 훨씬 후대인 조선 시대 사람들의 평균 신장이 남성은 161, 여성은 149cm 정도로 추정되니까 당시로선 굉장히 큰 키였습니다.
부인으로 추정되는 서편(도표의 왼쪽)의 유골은 전반적으로 보존상태가 동편 보다 못했지만, 두개골과 위턱, 아래턱 뼈가 잘 남아 있었습니다. 신장이 160cm 이상으로 추정됐습니다. 역시 키가 컸던 여성입니다.
그런데 이 여성의 흩어진 두개골 조각을 모아서 보존 처리하는 과정에서 흥미로운 사실이 발견됐습니다. 숨골이라고 불리는 정수리 위 왼쪽에서 지름 0.8cm 크기의 구멍이 발견된 겁니다. 창이나 칼에 찔리거나 사고를 당한 두개골은 대개 상처 주변부가 불규칙하고 들쭉날쭉 깨진 흔적이 남게 되지만 이 구멍은 잘 다듬어진 형태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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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두술 주장이 아직 학계에서 정식으로 인정받고 있지는 않습니다. 연구된 사례가 드물고, 어떤 역사서에도 기록돼 있지 않기 때문입니다. 물론 그렇다고 사실이 아니라고 잘라 말할 근거도 없습니다. 오히려 조 소장의 문제 제기는 앞으로 고분 발굴작업을 통해 살펴봐야 할 과제 하나를 제시했다고 할 수 있습니다.
백제고도문화재단과 부여군은 그동안 발굴을 중단했던 능안골 일대를 시굴 조사한 끝에 백제 귀족층 무덤 34기를 추가로 찾아냈다고 이번 주초 발표했습니다. 그중에는 암반을 굴처럼 판 뒤 시신을 안치한 횡혈묘, 무덤방과 배수로가 갖춰진 길이 13.3m의 대형 석실묘도 확인했다고 합니다. 다행히 도굴의 흔적도 발견되지 않았습니다.
이번 발표를 기점으로 능안골 고분군 발굴에 다시 시동이 걸릴 태세입니다. 백제고도문화재단 이명호 연구원 말로는 "능안골 일대의 10% 정도만 발굴 조사가 이뤄진 상태"라고 합니다. 앞으로 발굴이 완료되면 이 보다 훨씬 더 많은 고분이 발견될 것으로 예상됩니다. 어떤 유물이 더 나올지, 천두술 두개골이 더 있을지, 무덤 주인의 신분이나 조성 시기를 알 수 있는 지석이나 목간이 나올 수 있을지 등등…. 벌써 가슴이 두근거립니다.
김명진 기자kmj@sb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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